『 ‘자랑스런’ 공익광고 』

차를 타고 가다가 시내버스에 붙어 있는 광고를 봤다. 공익광고협의회와 한국방송광고공사에서 같이 만든 그 광고, 두 가지가 놀라웠다.

첫째, 무엇을 광고하는지가 모호했다. 주된 카피는 '이 버스는 타임머신입니다'였고 '자랑스런 문화유산, 우리 가까이 있습니다'라는 글귀가 뒤를 이었다. 또 그 아래에는 '가자, 역사 속으로'라는 글 옆에, '범어사 대웅전→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팔만대장경→석남사 부도'라고 씌어 있었다. 같이 본 여러 사람과도 내용에 대해 이야기해 봤지만, 솔직히 아직도 무엇을 광고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둘째, 짧은 광고 안에 틀린 내용이 수두룩했다. '범어사'를 '금정구 청륭동(→청룡동)'에 있다고 소개하는가 하면 석남사 소재지는 '울산 울주군 상복면(→상북면)'이라 밝히고 있었다.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 틀린 광고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만 그래도 한 가지 더 빼놓을 수 없는 오류는 '자랑스런' 이라는 말이다.

흔히 '부끄러운'을 줄여 '부끄런', '사랑스러운'을 줄여 '사랑스런'이라고도 하지만 이는 모두 잘못이다. 이렇게 '우'를 마구 생략할 수 있다면 '정다운'을 줄여 '정단'으로, '도운, 고운, 누운'을 줄여서 '돈, 곤, 눈'으로 쓸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이렇게 쓰면 이상한 사람 취급당하기 십상이니 줄이면 안 되는 걸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구운 고구마'를 줄여 '군고구마'로 쓰지 않느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군고구마'나 '군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렇게 변한 것이니 적절한 예가 될 수 없다. '바깥다리, 바깥사돈, 바깥주인'을 '밭다리, 밭사돈, 밭주인'으로 줄여 쓸 수 있지만 '바깥양반, 바깥일'을 '밭양반, 밭일'로 줄일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장 '군감자'나 '군옥수수'도 허용되지 않으니….

어쨌거나 명색이 '광고'를 한다면서, 그것도 공익광고라면서, 맞춤법 자문도 하지 않고 지명조차 확인하지 않은 무신경이 놀라웠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그 광고에서 공익광고협의회와 한국방송광고공사가 광고하는 것은 첫째가 무성의요, 둘째는 모호함이었던 셈이다.

(이진원의 '우리말에 대한 예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