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숙

영산포 옛 역사에 가설무대가 세워졌다
어쩌다 불려나온
잊혀진 시간들이 두레상 앞에 앉았다
모처럼 상에 오른
자반고등어에 몰린 젓가락처럼
무대 위에 뭇시선이 꽂히면
막다른 길에서 방황하던 기차가 기적을 울린다무너진 시간의 흙담 위로
아련히 내다보이는 초라한 굴뚝
모두들 떠나보낸 시절에
등 돌리고 있다가
매콤한 추억 자욱한 옛길을 두리번거린다
기차는 아직 되새김질할 것이 남았는가
멈춘 바퀴에 걸린 앙금을 소화시키겠다는 듯 
그렁거리는 과거를 오물거리고 있다
허구한 날 하품만 하던 오래된 느티나무
엿장수 가위장단에
구멍 난 양은냄비, 찢어진 고무신짝
마루밑창까지 여수고
지화자, 얼~쑤, 좋다! 추임새에
여윈 잔등이 들썩인다
잎잎이 어우러지는 잔치마당
슬그머니 지나치려는 보름달
귓불을 잡아당겨 한잔하자고 속닥이는 밤
달도 못 이긴 척
나무어깻죽지에 불그레 걸터앉아
세상에서 가장 멋진 조명을 비춰준다
먼지 자욱한 상가 문틀에도
기웃거리던 사철가 한 가락 사뿐히 내려앉으면
웅크린 옛 역사도 오랜만에 마음 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