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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윤영근의 소설표해록 - 8. 바다를 지키는 도저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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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호] 승인 2008.10.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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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중국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표해록

 1488년 1월 2일 조선의 올곧은 선비이자 관리였던 최부는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된다. 효심이 지극했던 그는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그를 포함한 43명은 근무지인 제주를 떠나 고향땅 나주로 떠났다. 부친상을 치르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러나 누가 태풍의 악천후를 예상이나 했겠는가? 바다에서 돌연 폭풍과 거대한 파도를 만나 타고 가던 배는 작은 낙엽과 같았다.

어떤 때는 파도 꼭대기에 던져지고 어떤 때는 깊은 산골짜기 같은 노도에 처박혔다. 돛대는 부셔지고 배는 마치 고삐 풀린 말과 같아서 억제할 수가 없었고 배위의 모든 사람들은 폭풍과 파도에 의해 토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게 되었다.

의지가 강한 최부는 위기를 당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정면으로 승부하며 돌파해갔다. 먼저 그는 돛대를 잘라 배가 전복되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흔들리는 난간에 서서 외친다.

  “내가 선체를 돌아보니 아직까지 견고하다. 우리가 이대로 수장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족들은 우리가 살아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각자 배를 지킬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도록 말했다. 고장 그 곳을 찾아 수리하고 물이 차오른 곳에서는 물을 퍼냈다. 그리고 당황하거나 혼란에 빠지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모두가 최부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려 용기를 잃지 않았다. 풍랑의 죽음으로부터 맞서 싸운 것이다. 배가 바다에서 보름 동안이나 길을 잃고 헤맸다. 최부일행은 더 이상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여겨 절망에 빠졌다. 먹을 음식도 없는데다 마실 물도 떨어진 상태였다. 배에 차오르는 바닷물은 배가 바닥에 가라앉기만을 기다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 최부가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모두 조선 사람들이다. 살면 모두 살고 죽으면 모두 죽어야 한다. 일치단결해서 난관을 이겨내도록 하자!”

아무리 배가 고파도 허기를 의지로 이기며 버텼다. 물이 없어 목이 타면 오줌을 받아 마시며 갈증을 견뎠다. 사람들은 열흘이 넘게 물을 마시지 못해 입술이 깨지고 혀가 찢어져 피가 흘렀다. 인명은 제천이라고 했던가! 때마침 하늘에서 비가 내려주었다.

모두가 바닥에 두러 누워 머리를 쳐들고 빗물을 받아먹었으나 해갈이 되지 못했다. 강철 같은 의지의 수호신 최부는 모든 옷을 배에 모으도록 했다. 빗물에 흠뻑 적신 옷을 그릇에 짜서 병에 담아 물을 저장할 수 있었다. 어렵게 구한 물은 피로에 지친 목마름을 해결하고, 살고자 한 인간의 본능과 의지를 북돋게 했다.

난파선은 어려운 고비를 벗어날 줄을 몰랐고 날이 갈수록 사람들은 희망을 잃어갔다.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은 좁은 선실로 차오르는 물뿐이다. 아무리 퍼내도 차오르는 물은 목줄을 조여 오며 죽기를 재촉한다. 최부는 죽기를 기다리지 말라고 독려하고 자신이 직접 선실바닥으로 내려가 물을 퍼내며 죽음의 신과 피 말리는 투쟁을 계속했다.

몇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난 다음 이번에는 해적을 만나 배안의 모든 물건들을 약탈당하고 말았다. 피로에 지친 극한 상황에서도 필사적으로 버티며 견디어냈다. 결국은 배에 탄 모두가 살수 있었던 것이다.

최부는 보름간의 난파선에서 바른 판단으로 배를 살리고 살 수 있는 길로 통솔했다. 최부의 총명함과 지혜, 강한 기백이 궁지에 몰린 일행을 광명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결국은 죽음의 신을 이겨냈으며 마침내 거듭 태어남을 얻었던 것이다.

날씨가 흐리고 불순했지만 북경행의 걸음은 그칠 수 없었다. 빗물에는 흙탕물이 들어 있었다. 흰옷을 입은 옷에는 핏물이 든 것처럼 벌겋게 물든 옷이 볼만했다. 중국대륙의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황토바람이 비와 버물려 내리는 황토 비다. 그러니까 오늘날 말하는 황사가 그때도 있었던 것이다. 한반도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과 태평양을 건너 미국의 동부해안까지 흙먼지 바람을 날리는 황사였던 것이다.


도저성에서 북경으로 향하는 최부 일행

이앙, 허청, 왕광, 장씨, 윤씨 등은 부두에까지 나와서 최부 일행을 전송해 주었다. 그중에서 이앙은 최부에게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어선지 손을 맞잡고 흔들며 말했다.
 
 “우리는 정말로 어렵게 만났는데 이제 멀리 헤어지게 되었으니 다시는 만나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 참으로 안타깝소.”

배에 올라탄 최부는 작별하는 그들에게 말했다.

  “내가 여기에 올 때 장군은 수많은 무장 병으로 하여금 성을 둘러싸고 있었고 깃발은 성문을 뒤덮였으며 징과 북을 크게 울리며 군마까지 동원해서 우리 일행은 겁먹고 움츠려 들었습니다. 전쟁포로처럼 끌려 다니는 신세였지만 내가 관사에 이르렀을 때는 예의에 어긋남이 없었고 따뜻한 음식을 대접해 주었습니다. 더욱이 마음을 열고 나를 대한 것은 오랜 친구와 같았습니다. 진심어린 감사를 전합니다.”

최부 일행이 왜구가 아니라고 밝혀지고 상호 우호적인 조선의 관리에게 애정이 넘치게 대해준 그들은 어쩌면 당연한 행위였을 것으로 믿어진다. 나중에는 기름기 넘치는 따스한 음식으로 접대했던 것이다.
 
도저성의 장군은 다른 나라사람들에게도 관대했다. 또 장군은 최부 일행이 떠날 때 멀리 바다까지 나와 전송해 주었고 그들이 배에 오를 때에는 부축까지 해주면서 후의어린 송별사로 작별해 주었다.
 
최부는 멀리 떨어진 타국인이며 전쟁포로와 같은 신세로 목숨을 구걸해야하는 처지였지만 관용으로 접대해 주고 후한 정으로 전송해 준 온정은 진심이 넘쳤다.
 
장군은 황제의 신하고 바다에 빠진 최부는 조선의 신하라는 차이가 있을 뿐 지극하게 환대해준 것이 곧바로 충(忠)이라 하겠다. 마음과 마음을 열어 가슴을 잇대었으니 하늘이 알아본 것이다. 더구나 불과 하루도 못되는 시간이지만 장군과 장씨, 윤씨 등 두 관리와 더불어 편안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게 되어 마음껏 회포를 풀 수 있었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흐른다 해도 또 세상의 어디에 있다 해도 오늘의 정은 결코 잊지 못할 것만 같았다.
 
최부는 곁에 서있는 왕광에게도 섭섭한 하직인사를 했다.

 “왕광 선생은 장군과 함께 포봉리에서 만났을 때 먹지 못해 배고파하는 일행에게 배불리 먹을 수 있게 해서 죽음직전의 우리들을 구해주었습니다. 도독장과 도저성에 대려다 주었으며 이 성에 이르는 동안 험한 수백리 길을 7?8일 동안이나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그 독실한 은정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고맙습니다. 이제 헤어지면 다시 만나기 어려우니 슬프기만 하군요.”
 
눈물을 글썽이던 왕광은 말했다.
 
 “팽형(烹刑)을 조심하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들과 헤어져 바다를 지날 때였다. 최부 일행을 인솔하며 함께 배를 탄 적용이 말했다.

 “이곳 바다를 지나면 서쪽으로 천태산을 볼 수 있는데 오늘은 마침 구름과 안개가 짙게 뒤덮여 직각으로 뻗어 오른 돌기둥을 볼 수 없어서 아쉽기만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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