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강요하는 닫힌 질서를 거부하고
새로운 질서를 앞서 모색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 책은 한겨레21의 ‘이덕일의 시대에 도전한 사람들’에 연재했던 역사칼럼을 묶은 책이다.

당대에 버림받았던 이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재조명한 책으로서, 당대가 아닌 다음 시대와 의 대화를 시도했던 역사 속의 선각자들을 이 책 속에서 만나볼 수 있다.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 불평등하고 차별과 억압의 구조를 타파해나가고자 하는 행동. 계급사회에 있어서 지배계급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외치는 소리. 그리고 시대의 상황과 역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은 많은 이들. 이들의 모습이 이 책에 담겨져 있다.

루이 16세를 단두대에 올려 처형한 프랑스 혁명을 빗대어 곧잘 하곤 하는 ‘한번도 왕의 목을 베어보지 못한 민족’이라는 표현은 오늘날의 한국사회가 온전한 아래로부터의 혁명, 아래로부터의 근대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로 형성되지 못했음을 이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본다면, 우리의 역사에서도 마침내 억압을 뚫고 상식이 되어버린 요구들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인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는 경종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노론이 지배하는 영조가 즉위하면서 첫 번째로 사형 당한 소론의 강경파 김일경이 죽음을 앞두고 영조에게  내 뱉은 말이다. 시원함을 넘어서 서늘한 비장미를 풍기는 일갈이다.

김일경을 회상하며 책을 시작했기 때문인지 이 책에서 저자가 다루고 있는 25명의 인물들은 그 시대와는 불화했던 사람들이다. 그 중에는 정도전이나 최치원, 허난설헌, 홍경래, 김시습과 같이 역사서를 통해 익히 그 이름을 들어왔던 인물도 있지만, 이경석, 정하상, 유몽인, 이광사와 같이 낯선 이름도 있다.

송시열과 노론이 지배했던 그들의 나라와 사상에 맞섰던 윤휴, 그는 서인들로부터 사문난적으로 몰렸으나 기득권층의 지배논리를 제공했던 기성집단의 아집을 거부했던 선각자였다.

개국공신 정도전은 조선 태조 이성계와 나라를 세우고 기틀을 다지며 명나라와의 전면전을 불사할 각오로 고구려의 옛 땅 요동을 회복하려 했으나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이방원의 칼에 죽임을 당했다. 과히 백성이 나라 땅의 주인임을 알고 개혁적 토지제도를 시행하고 기득권의 사병을 혁파하려 했다가 아스라이 역사 속으로 묻혀버렸다.

기득권력이 선비를 무참히 죽였던 사화의 시대에 죽는 날까지 출사를 거부했던 조식. 그가 추구했던 의지 속에는 임금도 세상도 선비가 벼른 단칼에 날리우며 굴종의 시대를 거부했다. 사대부에 맞서 주화론을 제기했던 이경석, 시대의 지배적 사상이었던 주자학파에 대항해 양명학자로 사대부의 시대를 종결지어야 한다고 주창했던 정제두. 서얼 출신으로 정조의 신임을 받았던 유득공은 기득권 세력인 노론을 향해 발해의 역사를 앞세워 그들의 아집을 비판했다.

이밖에도 시대의 모순을 시(詩)로 맞서 싸운 선각자 허난설헌. 과거를 포기한 후 지역의 차별에 맞서 붓 대신 칼을 들었던 홍경래, 박재가, 이긍익. 이익, 유수원…김창숙 등 혁명가이고, 개혁가였고, 시대를 꿰뚫어 버린 지식인이자 선각자였던 그들의 이야기다.

이 책은 역사의 음지 속에 묻혀버린 인물들의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당대와는 불화를 겪었으나 지금까지도 유효한 의미를 던져주는 시대정신을 가진 인물들의 삶을 통해, 시대와 개인, 그리고 역사라는 긴 지평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갖도록 해준다.

기득권층의 보수를 깨뜨리는 이 시대의 메시지로 우리시대로 걸어 나온 그들의 길은 당대에 버림받았으나 현 시대에 이르러 진정한 지성인의 숨결로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

저자 이덕일은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를 필두로 객관적 사료에 근거하여 역사의 미스터리와 의문에 대한 문제제기로 새로운 형태의 역사서를 집필해왔다. 그는 최근 정치사 위주의 서술에서 벗어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통해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그 시대의 역사적 사건들을 입체적으로 복원하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으며, 재야사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