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을 파고 고기를 기르며 정자 세워

관약재(觀躍齊)는 세지면 벽산리(碧山里) 산계(山溪)부락에 있는 정자로 이곳은 광산김씨(光山金氏) 사국(思國)의 장리지소(杖履之所, 그의 지팡이와 짚신을 놓아두었던 곳이란 의미로 말년의 은신처를 이르는 단어이다)이다.

옛날 처사(處士) 김사국은 벽류동(碧流洞)의 천석(泉石)에 은거하여 그곳에 못을 파고 고기를 기르며, 그 위에 정자를 세워 그 편액(扁額)을 관약(觀躍)이라 하고 스스로 호(號)를 관약제재觀躍齊)하였다.

관약재가 오래되어 정자가 퇴락(頹落)하기 일보직전에 그의 현손(玄孫) 김원석(金元錫)이 1924년에 이를 중수하여 정자의 옛 모습을 유지케 하였다. 여기에는 1927년 여름에 김영기(金永冀)의 중수기(重修記)를 위시하여 1940년에 쓴 김문옥(金文鈺), 김영한(金寗漢) 등의 중수기만이 전하여 이 정자가 언제 창건되었는지 확실치 않다.

그러나 이 관약재에는 김사국의 정자원운(亭子原韻)이 아직까지 남아 있고, 이 누정이 중수된 후 여러 사람들의 차운시(次韻詩)가 걸려 있다.

1927년 관약재 중수기를 쓴 김영기는 김사국의 족증손(族曾孫)이다. 관약재와 같은 마을에 있는 벽류정(碧流亭)도 광산김씨 운해(運海)의 소유로서 그가 만년에 휴식하던 곳인데, 방손(傍孫)인 김영기는 벽류정중수기까지 쓰는 등 누정기의 제작에 관심이 컸던 인물이다.

함께 관약재중수기를 쓴 김문옥도 김사국의 족생(族生)으로 한문장(漢文章)으로 한말 내지 현대에 이르는 명류인사이다. 김문옥은 구례사람으로 달문(達文)의 인사(人士)로 누정시문은 물론 비문(碑文)에 이르기까지 도처에 그의 글이 있다.

무안에 전하는 비문만도 忠武衛司直公祭壇碑記, 然隱鄭公紀行碑, 寢郞鄭公紀行碑, 雪軒鄭公紀行碑  등이 있으며, 전남 각처의 누정에 기문(記文)이 있는데 이 중 다시면 문암리 방산정(方山亭)에도 기문이 있다.

전남 각지의 누정기를 볼 때 그는 한문장(漢文章)에 자유자재로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작시(作詩)에도 비범하여 많은 누정시가 전하는데, 세지면에 있는 벽산정시(碧山亭詩)는 다음과 같다.

脩竹環山水?沙(수죽환산수양사)
名亭高出白雲涯(명정고출백운애)
名場早識江湖趣(명장조식강호취)
不獨龍灣故宣華(불독용만고선화)

관약재중수기를 쓴 김영한도 김문옥처럼 유명한 한시문인이다. 한말에 비승(秘丞, 承旨를 가리키는 말)으로 나아갔던 인물로 한문장에 능하여 호남지방에 많은 누정기를 남겼다. 「文苑」,「湖南樓亭總攬」,「務安文苑」등에 그의 누정기가 기록되어 있다.

화순군 도곡면 월송에 소재한 취월정(醉月亭)에 승지(承旨) 김영한의 유명한 취월정가(醉月亭歌)가 현액되어 있다.

月谷마을에 정자를 지어놓니, 달은 어찌 정자 위에 떠오는고
인적도 없이 적막한데, 홀로 정자에 앉아 술잔을 드네
시원한 바람 머리카락 날리고, 싸늘한 이슬 옷을 적시네
밤이면 나타나는 달 새벽이면 밤을 몰고 되돌아 가네
산중에 사는 이몸 이미 늙어지니, 알아주는 사람 거의 없네
덧없는 세상 언제 그칠런고, 醉한 인생 다시 醉할 뿐이네
원컨대 10년의 긴긴 세월 술잔에 감긴 달빛 길리 비춰나 주오

관약재에는 누정제영으로 12명의 누정시가 전한다. /다음 호에는 관약제의 누정시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