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르름'은 예찬할 수 없다 』

아카시아꽃 향기 속에 신록이 날로 푸르러 가는 철이면 많은 시인들은 나무와 숲의 '푸르름'을 예찬하느라 바쁘다. 5월의 하루하루는 확실히 미당 서정주의 말마따나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이다.

하지만 '푸르른'이나 '푸르름'은 즐겨 써서는 안 될 말이다. 주로 시인들이 운율이나 이미지 때문에 많이들 쓰지만, 시라고 해서 '시적 허용'을 마냥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푸르른'이나 '푸르름'으로 잘못 쓰는 버릇은 사실 문법을 잘 몰라 생긴 경우가 많기에 하는 말이다.

어간에 '름'을 붙여 명사나 명사형을 만드는 방식은 우리말엔 없다. '푸르다'의 어간 '푸르-'에 '름'자를 붙여 '푸르름'을 만들 수 있다면, '가파르다'의 명사형은 '가파름'이 아니라 '가파르름'이 돼야 하고, '구르다'의 명사형은 '구름'이 아닌 '구르름'이 돼야 한다. 관형사형이 '푸르른'으로 될 수 있다면 '휘두르른'이나 '나르른', '서두르른'도 될 수 있어야 한다.

관형사형은 '-ㄴ', 명사형은 '-ㅁ'이나 '-음'을 붙이면 된다. 그래서, '푸르른, 푸르름'은 '푸른, 푸름'이 아무래도 허전하고 이상하다면, 그건 바로 이제까지 잘못된 말을 익숙히 써왔다는 증거이니 더욱 반성해야 하리라. 입말보다 글말에 훨씬 더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 반성은 말보다 글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더욱더….

(이진원의 '우리말에 대한 예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