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길을 운전하다 보면 경치가 좋은 장소에 어김없이 누정(樓亭)이 우뚝 세워져 있다. 누정을 찾아가 보면, 그곳이 건립된 유래를 알 수 있는 누정기(樓亭記)와 이곳에 출입하던 인물의 제영(題詠)이 걸려 있다.

다시면 죽산리에 있는 장춘정(藏春亭)에 가면 거기에는 고봉(高峯) 기대승의 장암정기를 비롯하여 나주목사를 역임했던 사암(思菴) 박순, 면암정(?仰亭) 송순, 백호(白湖) 임제, 오상, 박복, 박개, 강백년, 박창수, 안위 등의 장춘정제영(藏春亭題詠)이 현판 돼 있다.

이를 보면 장춘정은 당대의 여러 석현문사(碩賢文士)들이 시적(詩的) 교류를 갖고 출입하던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예는 장춘정 뿐만 아니라 여타의 누정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누정의 기능을 보면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학문을 강학(講學)하고 시회(詩會)의 장소가 되고, 시단(詩壇)의 구실을 겸했던 것을 으뜸으로 손꼽을 수 있다. 각 누정에 이와 관계된 제영이 많은 까닭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시단의 형성과 시문학의 발전의 역사를 알려면 누정의 건립과 여기에 오고간 인물, 그리고 이로 인해 생긴 누정 제영 등의 연구가 주요과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누정에서 가사(歌辭)를 짓고, 또 시조(時調)를 옲기도 했다. 이로 인해 제작된 누정 시들은 우리 한국문학의 이해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다.

현존하는 누정 60곳

나주지역의 현존하는 누정수는 약 60곳이다.

그러나 나도선(羅燾線, 조선 고종 때 시문을 좋아하여 나주에 있는 錦城昑社의 일원으로 활동한 인물이다.)이 편한 『나주군지』 등 여타의 문헌을 종합해 보면 새롭게 추가될 누정의 수는 131개에 이른다. 이는 모두 예전에 건립되었던 것으로 현존하지 않는 누정이다.

여기에 『호남문화연구』제15집(輯)에 현존하지 않는 나주지방의 누정이 106곳이 소개되어 있다. 이를 통해 나주지역의 누정 수는 약 300개로 파악된다.

▲ [영모정] 다시면 회진리에 위치한 영모정은 영산강이 흐르는 언덕 위에 위치해 있어 많은 명사들이 이곳에서 시를 지었다.

전남에서 누정이 많기로 흔히 화순을 드는데, 구체적인 조사에 의하면 나주지역도 이처럼 많은 누정이 건립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없어졌던 240개 내외의 누정이 지금까지 현존하였더라면 나주지역 도처에서 눈에 띄는 것이 누정이었을 것이다.

나주지역의 누정은 대개 조선조 이후에 건립된 건물이다. 노안면 금안동에 있는 쌍계정은 고려 충렬왕 때 정가신이 창건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처럼 역사가 오래된 정자는 흔한 편이 아니다.

나주읍의 동쪽 문루(門樓)에 건립되었다는 동루(東樓)도 여말(麗末) 내지는 선초(鮮初)의 누정으로 생각되지만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동강면 백련산(白蓮山)에 있었다는 퇴은정(退隱亭)은 퇴암(退庵) 오세상(吳世相)이 은둔하던 곳으로 매월당 김시습이 누정기를 쓰고 추강(秋江) 남효창이 편액(片額)을 썼다고 전한다.

나주지역의 누정은 이처럼 대부분이 조선 초부터 건립되었으나, 시대의 변천에 따라 역사가 오래된 누정은 자연히 사라지고 후대에 이를 중수(重修)하거나 또는 그 연고지(緣故地)에 새로운 누정을 세우는 일이 계속되어 현존하는 누정이 약 60개 내외로 파악된다.

누정의 소재를 보면 동강면에 가장 많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양지리에 소재한 경모제(景慕薺)만이 현존하고 나머지는 옛날 건립되었다가 없어진 정자들이다. 이는 주로 월송리에 집중되어 있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