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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절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
인솔책임자 허청과 적용은 캄캄한 밤인데도 동네 이장을 불러들였다.
“최부 일행이 마을 앞을 지날 때 도둑질한 놈들을 잡아 오너라!”
벌벌 떨며 무서워한 이장은 마을로 들어가더니 전에 빼앗았던 말안장을 되찾아왔다. 그러나 그때 빼앗긴 갓과 망건 등은 찾지 못했다. 대개가
도적들은 국경을 넘어온 자들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는 난폭한 행동을 자행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더구나 해안 지방에서는 잦은 왜구의 침략으로 의심이 드는 자는 먼저 죽이고 상금을 받는 해금(海禁)정책으로 더 광폭했던 것이다.
최우선적으로 바다를 꽁꽁 막아버리는 것으로 왜구의 침략을 막아야 했던 것이다.
누구라도 바다를 건넌 자는 먼저 죽이고 보았던 것이 바다봉쇄정책이다. 그래서 양자강 이남사람들 중에는 탐욕의 노예가 되어 도적질하고 죄
없는 자를 일단 죽이고 보는 자들이 많아졌다.
최부가 보름간의 난파선에서 지지리 고생하다 최초로 밟은 땅인 하산(下山)에서는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으며 단지 물건만 약탈해 갔다.
선암리 사람들의 경우에는 훔쳐간 물건을 숨기지 않고 안장을 다시 돌려주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심정이 유약한 편이다. 표독스런 자들이 아님을
말해준다. 아무튼 도둑당한 물건을 다시 찾을 수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황제의 도시 북경(北京)를 향해 출발한 후 처음으로 날씨가 맑았다. 새벽에는 천암(穿岩)를 지나게 되었다. 이름이 말하듯 구멍이 크게 뚫린
바위가 신비롭다.
동네의 서쪽에 있는 산위로는 바위절벽이 깎아지른 듯한 석벽이 높이 솟아있고 활모양으로 가운데가 높게 펑 뚫린 구멍이 유별났다. 멀리서 볼
때는 산에 구멍이 있는 줄 알았지만 가까이서 보니 바위에 난 구멍이었다. 하늘이 마치 벌어진 구멍처럼 보였다.
다시 들을 지나 고개를 넘었는데 고개위에는 절이 있었다. 절이 도로를 가로질러 있었기 때문에 절 안을 가로질러 가야만 했다. 평지에서는
가마를 타고 갔지만 좁은 산길이나 비탈진 곳에서는 가마에서 내려 걸어가야만 했다.
절 앞에 이르러서는 다리에 힘이 빠지고 지쳐서 절뚝거려야 했다. 이를 본 스님들이 따뜻한 차를 내왔다. 절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차 한
잔 마시는 동안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나무에서는 땀을 식혀주는 맑은 향기가 끝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다시 출발해서 포구에 도착했는데 무장한 군함이 포구주위를 순시하고 있는 모습은 마치 해군 사열을 보듯 기압이 탱탱하게 들어있고 기율이
엄격하고 반듯했다. 최부일행은 작은 거룻배로 강을 건너 건도소(健跳所)에 도착했다.
이곳의 성(城)도 역시 바다를 배경으로 포구를 둘러쌓아 천혜의 요새에 다시 자물쇠를 잠군 격으로 이중으로 방어 막을 친 편이었다.
건도소의 천호 이앙(李昻)은 체구가 늠름하고 훤칠한 키에 용모가 출중했다. 더구나 반짝이는 쇠붙이를 갑옷에 붙였고 큼직한 투구를 써서
대장군처럼 보였다.
성문은 모두 이중으로 되어 단단했다. 성안에서는 북, 각, 총소리가 바다와 산을 진동시킬 듯 하였고 날라리 등 대소 각들은 그 끝이 모두
위를 향해 구부러져 있어서 그것을 부는 자들의 볼기가 풍선처럼 부풀었고 눈썹이 아래로 찢어진 모습이 가관이었다.
건도소는 도저성보다 모든 물자가 풍부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걸음걸이를 하고 있었다. 함께 온 이앙은 최부를 대리고 공관 안으로
들어갔다. 같이 왔던 적용, 허청, 왕광, 왕해 등도 뒤따랐다.
그곳에는 나이 지긋한 두 노인이 앉아있었다. 성씨가 장(庄)과 윤(尹)이었는데 위엄을 갖추고 하얀 수염을 나풀거리며 엄숙한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그들은 탁자에 둥그렇게 모여서서 표해과정을 물어왔다.
최부는 표류의 전 과정을 빠른 글씨로 공술했다. 여러 차례를 써본 것이라 거의 다 외워졌다. 바쁘게 움직이는 붓끝을 쳐다본 그들은 최부의
글씨에 감탄한 모습으로 읽어갔다.
이앙이 최부에게 말했다.
“마루에 편히 앉으시오.”
그는 손님으로써 주인의 예를 다했다. 이앙은 서쪽 계단에 최부는 동쪽 계단으로 올라가 마주서서 절을 했다. 술을 금하고 있는 최부에게는
다과를, 다른 일행들에게는 술과 고기를 내주어 매우 두터운 정을 보여주었다.
윤씨는 최부와 정보를 자기 집으로 안내하여 대접하는 한편 처와 첩 그리고 자녀들까지도 인사시켜 주었다. 그들의 인심은 후하고 너그러웠으며
순박하고 두터웠다.
장보(張輔)씨는 자기 집으로 들어서자 등과소록을 꺼냈다.
“이것은 내가 과거에 급제한 방록(榜錄)이오.”
거기에는 그가 과거에 급제한 내역을 자세하게 기록해 두었다. 그중 장보라는 두 글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이 나의 성명이오.”
보란 듯이 펼친 종이에는 그의 이름이 선명했다. 최부를 향해 물었다.
“조선에서도 과거에 급제한 사람을 존경하오?”
최부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신바람이 난 그는 장황하게 말했다.
“대명(大明)에서는 선비들이 과거에 급제하면 모두 높은 벼슬을 주고 최저생활을 할 수 있는 록을
내려준답니다.”
합격자의 동네에서는 마을의 입구와 그 집의 대문에 깃발을 세우고 빛나는 문패를 새롭게 달아준다고 했다. 과연 그의 집 앞 돌기둥에는
금박으로 장식한 문패가 자랑스럽게 걸려 있었다.
사 진사급제 모과 모등 인(賜 進士及第 某科 某等 人)』
돌기둥에는 용이 양각으로 새겨졌고 2층 3칸으로 된 대문은 금빛과 푸른빛으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 위에는 작은 문패가 걸렸는데
글씨도 또렷하게 써 있었다.
‘병오과 장보지가(丙午科 張輔之家)’
그의 등과는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이를 본 최부도 공연히 시샘이 나고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 조금은 과장되게 말했다.
“나는 일찍이 두 번이나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한 해 동안 받은 봉록이 쌀로 2백석이나 되고 대문도 3층으로 높답니다. 당신이
아무리 내게 자랑해도 나만큼 따라오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자 그는 최부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 말을 믿을 수 있단 말이오?”
“대문은 조선에 가야 볼 수 있지만 여기에 문과(文科)중시소록(重試小錄)이 있으니 보십시오.”
“아이쿠, 나는 근처에도 따라가지 못하겠소.”
오백여년의 세월이 흘러버린 오늘날 금남(錦南) 최부선생의 사적비가 지나간 시간을 지켜주고 있다. 난파선을 버리고 최초로 밟은 땅!
저장[浙江]성 린하이[臨海]시 도저(桃渚)진에는 탐진 최씨 종친회에서 최근에 세운 사적비가 있다. 사적비와 함께 중국식 정자는 중국
전통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
이곳에서 멀지 않는 희망초등학교에서는 최부의 표해록(漂海錄)을 어린학생들의 교과서로 사용하고 있다. 중국에서 사용하는 그들의 교재내용을
옮겨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