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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목사이야기27 - 이욱
신광재 기자  |  sjs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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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호] 승인 2006.05.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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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과 춤추다 간통죄에 몰린 이욱

 

전라도 절제사(全羅道節制使) 이각(李恪)과 나주목사 이욱(李勖)이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각의 부하로 있던 나주사람 전 첨지(僉知) 염이는 이를 눈치 채고 어느 날 이각에게 나주목사 이욱이 기생과 간통한 듯하다고 보고한다.

염이는 "본주(本州)의 목사(牧使) 이욱이 품관(品官)을 거느리고 잔치를 차려 술을 마시며 기생과 마주 춤을 추는데 그 형세가 서로 간통한 듯하였으며, 또 관노(官奴) 호병(胡甁) 등 세 사람을 곤장을 쳐서 죽였습니다”라고 이각에게 은밀히 말한다.

이각의 진무(鎭撫) 이귀생도 덩달아 "이욱이 이웃 고을의 관기(官妓)를 관아(官衙) 안으로 불러들인 일이 있다"라고 이각을 부추긴다. 염이와 함께 나주사람인 이귀생은 이각의 눈에 들기 위해 이욱의 과실을 보고한 것이다.

이각은 이 내용을 즉시 감사(監司)에게 공문(公文)을 보내어 조정에 보고한다. 조정에서는 의금부 지사(義禁府知事) 이축(李蓄)에게 명하여 이를 국문(鞫問)하게 하였다.

의금부에서 조사한 내용의 실상은 이욱이 기생을 간통했다는 것은 염이가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으며, 다만 이욱이 기생과 춤을 춘 일로 인하여 이를 의심한 것으로 판명났다. 나주목사 이욱이 염이를 볼 때마다 업신여기고 꾸짖는 일이 자주 발생하자 염이가 이를 꾸며 이각에게 보고한 것이다.

조정은 이 사건을 형조에 내려 형률에 의하여 처단하도록 지시한다.
세종 12년 3월26일 형조에서 아뢰기를 "염이는 사건을 은근히 꾸며서 목사를 고소하였다는 죄로 장 1백 대와 도(徒) 3년에, 이귀생은 목사의 과실을 폭로하였다는 죄로 장 1백 대에 처해야 한다고 보고한다. 절제사 이각에 대해서도 마땅히 무고(誣告)로써 논죄하여야 한다.

절제사 이각은 이욱이 기생을 간통하고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하면서 다만 염이와 이귀생의 말만 듣고 감사(監司)에게 공문을 보냈으므로 염이와 함께 장 1백 대와 도 3년에 처해야 한다. 

나주목사 이욱은 관기를 거느리고 잔치를 벌였으며, 이웃 고을 관기를 불러 술판을 벌였다는 죄로 태형(笞刑) 50대를 쳐야 한다"고 보고한다.

 형조로부터 보고를 받은 조정에서는 염이와 이귀생은 각각 2등(等)을 감형(減刑)하고, 나주목사 이욱은 외방(外方)에 부처(付處)하고, 절제사 이각은 직첩(職牒)을 거두고 외방(外方)에 부처(付處)하게 하였다.

 이욱은 관기를 거느리고 연회를 베푼 죄로 외방(外方)에 부처(付處)되었다가 이듬해 석방되었고, 다시 1433년 양민을 억압하여 종을 삼아  압량위천(壓良爲賤)죄로 직첩을 박탈당하였다.

이각과 이욱이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유가 궁금해진다. 12년 전으로 시계 바늘을 뒤돌려 보자.
태종이 왕위를 세종에게 물려주고 군사권만 가지고 상왕으로 물러난 지 보름 후 병조판서 박습을 비롯해 참의 이각, 정랑 김자온, 이안유, 좌랑 송을개, 이숙복 등이 의금부에 압송되었다.

이날 박습과 이각을 제외한 나머지 정랑과 좌랑들은 모진 고문을 당해야 했다. 당시 군사권을 가지고 있던 태종에게 병조참판 강상인이 순찰업무에 관해서만 보고하고 나머지 중요한 군사문제는 보고하지 않았다.

이에 분노한 태종은 배후세력이 있을 것이라며 병조에 대한 대대적인 감찰을 지시한 것이다. 의금부에서 이들에 대한 조사 결과 특별한 의도가 없었고 사리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불찰 때문이라고 변명을 하며 판서 박습과 참의 이각도 고문을 해야겠다고 건의한다. 이에 대해 태종은 "마땅히 단단히 고문을 하되 죽지 않을 한도까지 하라"고 지시하였다.

일단 이 사건은 박습과 강상인을 용서하고 강상인을 고향으로 내치는 선에서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한달 뒤 태종은 조말생, 원숙, 하연 등을 불러 "장차 뒷날의 준비를 하기 위해서"라며 유배가 있던 박습과 강상인을 불려 들여 사건의 뿌리를 밝히는 게 어떠냐고 의견을 구한다. 결국 단천에 있던 강상인, 고부에 있던 박습, 무장에 있던 이각 등이 다시 붙들려 온다. 이들에 대한 국문이 시작됐다.

국문 1주일이 지난 가운데 태종은 "강상인이 이각을 보고서 빙긋이 웃었다는 보고를 들었다"면서 "반드시 다른 뜻이 있을 것"이라며 고문의 종류까지 지시한다. 장형을 하지 말고 바로 무릎이 으깨지는 압슬형을 하도록 한 것이다.

이각을 보고 웃었던 강상인은 끝까지 실수일 뿐 태종을 깔보고 그렇게 한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하지만 군사보고에 대해 "국가의 명령은 한 곳에서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서 상왕에게 아뢰지 않았다"고 말했다.

심지어 "새로 왕이 된 세종에게 덕을 보려고 그랬다"고 실토한다. 그러나 정작 태종이 듣고 싶어 하던 이야기, '배후'에 대해서는 일정이야기가 입밖으로 나오지 않자 압슬형을 계속 지시했다. 압슬형이 이어지자 강상인은 마침내 의미심장한 사실을 털어 놓는다. 당시 태종과 세종을 함께 경호하느라 병사들이 나뉘어 경계근무를 서야 했다.

이것이 군부의 책임자들에게는 여러 가지로 불편한 일이었다. 그래서 강상인은 어느 날 군사 문제를 잘 아는 세종의 장인 심온을 찾아가 "군사는 마땅히 한 곳으로 돌아가야 된다"고 말했고 심온도 이에 찬성했다는 것이다.

당시 사은사로 명나라에 가 있던 심온은 조선의 일은 전혀 모른 채 금릉을 출발해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세종 즉위년 11월 25일 태종은 전의감 판사 이욱을 의금부 특사로 임명해 병사들과 함께 의주로 가서 압록강을 넘자마자 심온을 잡아오라고 명했다.

다음날 태종은 나주출신인 좌의정 박은을 불러 강상인과 심온의 대질문제를 논의한다. 그런데 태종의 뜻을 잘 아는 박은은 이미 정상(情狀)이 드러났으니 대질할 필요 없이 강상인을 처형해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속전속결, 바로 이날 강상인은 백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열형을 당했고 박습은 참수되었다.

의금부에서 이각은 상인의 모의를 알고도 고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곤장 1백대에 처해지고 3천리 밖으로 귀양 보낼 것이라고 보고했다. 이에 태종은 이각과 채지지 등 7인은 죄가 경하니 본인들이 원하는 곳으로 귀양 갈 수 있도록 조치했다. 운 좋게 이각은 그해 12월 26일 사면되었다.

심온 체포 특명을 받고 의주로 떠난 이욱은 약 한 달 만인 12월 22일 심온을 체포해 한양으로 압송해 왔다. 다음날 세종의 장인 심온은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이각은 죄인으로 이욱은 의금부 특사라는 신분으로 만남을 갖게 되었다.

병조참의 이각은 귀양을 떠나게 되고 이 사건으로 이욱은 의금부 특사로 임명되어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사소한 사건의 연결 끈으로 이욱과 이각의 관계가 맺어지게 된 것이다.

귀생과 춤추다 외방에 부처된 나주목사 이욱은 이후 양민을 억압하여 종을 삼아 압량위천(壓良爲賤) 죄로 직첩을 박탈당하는 불운이 이어졌지만 이각은 2년 후 사면되어 59세로 강계절제사가 되어 파저강(婆猪江)일대에서 변환(邊患)을 야기하던 야인들의 마을을 정벌하고 그 일대에 조선의 국력을 과시하였다. 이러한 공로로 1434년 평안도절제사로 전임되었다.

그러나 2년 뒤인 1436년에는 야인의 기습공격을 제어하지 못하였다 하여 결성지역으로 귀양간 일도 있었다. 65세 때인 1438년에 또다시 그의 무공이 인정되어 경상좌도 처치사와 전라도 처치사를 역임하였다.

이각은 젊은 시절인 태종 7년 영광군사로 있을 때 나주판관 조혼과 친분이 깊었다. 하루는 조혼에게 글을 보내 나주 관고(官庫)에 저장한 면포 6필을 그가 좋아하는 김성에게 주도록 부탁하였다. 이 일이 한참 후에 발각되어 이각은 양성으로 조혼은 해주로 귀양가게 되었다.

이각의 아버지 이시백은 북인인 안륵이 탄 말을 건드렸다 해서 안륵의 종에게 수십 대의 볼기를 맞자, 이각이 "죽을 때가지도 원통함을 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상소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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