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연재 | 소설 표해록
청산 윤영근의 소설표해록 - 8.바다를 지키는 도저고성
나주투데이  |  minjukkr@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307호] 승인 2008.06.27  00:00:0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58. 팽형(烹刑)과 선비정신

최부는 숙소로 돌아갔다. 왕광(王匡)이라는 중국관리가 이미 와있었다. 그는 체면불구하고 남의 것을 착취하는 두더지 같은 성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만큼 허청의 주구노릇을 하면서 그에게 아부아첨하며 간사한 짓을 일삼는 자였던 것이다. 염치없이 남의 것을 빼앗기도 했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없는 것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부는 가진 것이 없어서 맨손의 입장인데 왕광의 비위를 억지로 맞추기 위한 청을 들어줄 수가 없는 딱한 처지다. 그런다고 전적으로 그를 무시할 수도 없었다. 보자마자 먼저 고맙다고 말했다.

“우리 일행은 대인의 크나큰 은혜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최부는 그에게 줄만한 것이 없어서 입고 있던 솜옷을 벗어서 허청의 아들 융(隆)에게 주었다. 친근함을 나타내는 방법으로 입고 있는 옷이지만 벗어서 줄 테니 입으라고 한 것이다.

입고 있던 옷을 벗어서 다른 사람에게 입혀주는 것은 매우 친근하고 가까움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왕광 곁으로 다가간 최부는 조선의 팽형에 대하여 말해주었다.

너무 눈에 보이게 노골적으로 부정을 강요하는 그의 작태가 어이도 없고 한심스러웠기 때문에 은근 슬쩍 그의 태도를 고쳐주고 싶었던 것이다. 먼저 최부는 왕광에게 물었다.

“조선에서는 개인의 사리사욕에 눈멀거나 부정을 일삼으며 뇌물을 탐내는 관리에게 내리는 벌로는 팽형이라는 것이 있는데 혹시 그런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자신의 이야기인줄을 이미 알아차린 그는 뜨끔했지만 이내 정색을 하며 되물었다.

“삶아 죽인다는 팽(烹)자로 보아 죄인을 뜨겁게 달군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펄펄 끓는 가마솥 속에 탐관오리를 삶는 것을 말합니다.”

최부는 그에게 탐관오리에게 내리는 조선의 벌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부정부패를 막고 일벌백계의 표본으로 삼고자 사람이 가장 많이 다니는 종로 거리에서 시행했던 벌인데 사실상 조선사대부의 대쪽같은 곧은 심지가 살아난 원천이었던 것이다. 팽형이 있는 날은 많은 구경꾼들이 거리로 모여들었다.

민초들을 들볶고 뇌물에 눈먼 관리는 곧장 잡아들인다. 종로 사거리에 커다란 가마솥을 걸어놓고 장작더미를 솥 주변에 가득 쌓아 일촉즉발의 위험한 순간을 만든다. 솥 안에 갇힌 죄인은 불만 붙인다면 뜨거운 솥 안에서 죽게 되는 것이다.

뜨겁게 달구어진 무쇠 솥 속에서 펄쩍뛰며 뜨거움을 견디지 못해 결국은 죽어갈 모습을 상상만 해도 끔직하다. 연탄불위에 놓여진 오징어 신세라 하겠다. 아무리 몸을 비틀며 비비꼬고 피해봤자 불덩이 같은 가마솥을 벗어나 살아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다만 불을 붙이는 시늉만 했던 것이다.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면 죄인에게 묻는다. 재판 석에 앉은 포도대장이 큰 소리로 말한다.

“내 죄를 알겠느냐?”

“예.”

혼 줄이 난 죄인을 다시 꺼내 그의 가족에게 인계한다. 대부분 독직 관원들을 다룰 때 팽형으로 다스렸다. 이때 그의 가족은 그를 그냥 데려가지 못하고 사람이 죽으면 관에 담아 상여에 매고 가듯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을 상여에 들쳐 매고 가야만 했던 것이다.

두 눈을 말똥거리며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람이 상여 속에 갇힌 채 여러 사람들이 들쳐 매고 가다니 참으로 우스꽝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죄인을 살아있는 그대로 세상 속에서 생매장을 시켜버린 샘이다.


북경으로 호송되는 43명의 최부일행
 
한번 팽형을 당한 자는 두 번 다시 벼슬길에 오를 수 없었다. 공민권을 박탈당하고 공식적으로는 친척을 만나서도 안 된다. 육체적으로 온전한 자를 고려장시켜 산송장이 되게 만들어 버리는 형벌이 팽형이었던 것이다.

조선사대부 최부의 올곧은 선비정신은 이런 제도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꼿꼿하게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벼룩의 간을 빼먹을 일이지 난파선속에서 지옥문을 들락거리다 천재일우의 운세로 살아난 자들이 무엇을 가졌다고 그들을 괴롭히다니 비정한 현실이다. 웃으며 듣는 왕광의 표정으로 보아 반성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태주는 옛날 동구국으로 옛 민나라의 동쪽이며 월나라의 남쪽으로 우두외양이 있는 임해현을 관할하고 있다. 그리고 태주 동남쪽 끝 변방의 기후는 온난했지만 비가 오는 날이 많고 맑은 날이 적으며 더운 기후로 인하여 괴질이 유행하는 지방이었다.

최부 일행이 도착한 시점이 윤달이라고 하지만 정월이었는데도 기후는 3 ?4월과 같아서 막 보리이삭이 패려하고 죽순이 한창이었으며 복숭아꽃과 살구꽃 등이 만발해 있었다.

물론 나주지방이 북위 35도 지역이고 도저성 일대는 그보다 한참 남쪽인 30도 지역으로 적도지역의 열대기후에 가깝다. 너무 많은 차이가 나는 기후에 얼떨떨하다.

나주에서는 보도 듣도 못했던 야자수 잎의 너풀거리는 소리가 남방지방임을 증명해 준다. 시도 때도 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이 지겨운 여름 장마처럼 열대기후를 보여준다.

다만 최부 일행의 성가신 마음은 가라앉을 줄을 모른다. 행여나 잘못되어 귀국길이 막히면 어떨 건지 걱정이 앞선다. 처음 보는 풍경이 생소해서 어리둥절하지만 앞날이 어떻게 전개될지 두렵고 불안해서 도무지 답답하다. 북경으로 출발한다고 했으니 수월한 여행이 되기를 바랄뿐이었다.

산은 높고 크며 울창한 수풀이 하늘을 가렸다. 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살고 있었으며 사는 집들이 웅장하고 높았다. 화려하게 치장한 집들은 근사하고 멋이 넘쳤다. 조선에서는 보지 못했던 별천지였다.

조선으로 다시 돌아간다니 이게 생신지 꿈인지 믿을 수가 없었다. 가픈 숨을 몰아쉬며 파총관이 최부에게 뛰어왔다.

“지금즉시 떠날 테니 인원점검을 하도록 하시오.”

최부 일행 43명은 한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다함께 출발했다. 이들을 호송해주는 인솔자로는 천호 적용 (翟勇)이하 군인으로 20여 명이 앞장섰다. 최부와 그를 따르던 배리는 가마를 탔다.

잔꾀가 심한 양달해는 병을 핑계로 지팡이를 짚고도 서지를 못하자 보다 못한 파총관이 그를 가마에 태웠다. 가마를 탄 사람이 여덟 명이나 되었다.

적용, 허청, 왕광 등은 최부 일행과 함께 마을 산길의 산장(山場)과 오두(烏頭)등 두 고개를 넘었다. 고갯길 사이에는 커다란 내가 있었는데 오두재 밑에도 감계라는 냇물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계곡물이 맑고 깨끗했다. 시냇가에 짐을 푼 일행은 인가에서 밥을 시켜 먹고 다시 출발했다. 산골이라서 잡곡으로 지은 밥으로 쌀은 한 톨도 들어있지 않았지만 밥맛은 꿀맛이었다.

당두포(唐頭蒲)와 봉화(峯華)를 지날 무렵 이미 날이 어두워졌다. 길가에 있는 절을 찾아들어가 하룻밤을 유숙했다. 그곳의 앞마을이 바로 선암리였다. 도저소에서 이곳까지는 이미 한번 지나갔던 길이라 낯설지 않았다.

어두운 밤에 선암리 마을을 지나갈 때 도둑을 만나 물건을 빼앗긴 아픈 상처의 기억이 남아있던 곳이다.

나주투데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나주시장 후보 지지도 여론조사…강인규 후보 오차범위 밖 우세
2
‘손가락 혁명군’인가, ‘손가락 살인자’인가
3
강인규, 김병주 무소속 나주시장 후보 단일화 전격 선언
4
[독자기고] 전라도인에게 민주당은 무엇일까요?
5
민주당 윤병태·무소속 김도연 ‘사실상 단일화’
6
‘강인규 나주시장 후보 진심선대위’ 입장문 발표
7
6·1 나주 지방선거 후보자 40명 등록
8
상식을 바로 세우는 지역정치를 만나고 싶다
9
나주시장 무소속 단일화…강인규 후보를 단일후보로 결정
10
김선용 도의원 후보 선거사무실 개소식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전남 나주시 예향로 3803 (이창동) 2층 나주투데이  |  대표전화 : 061)334-1102~3  |  팩스 : 061)334-1104
등록번호 : 전남 다00334   |  발행인 : 윤창화  |  편집인 : 이철웅  |  e-mail : njt2001@hanmail.net
Copyright © 2013 나주투데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