뭍에 오른 이후 험한 모습으로 걷기를 계속한다. 두들겨 맞은 몰 꼴이 엉망진창이다. 길가에서 최부 일행의 끌려가는 모습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팔로 머리가 잘리는 시늉을 한다. 목이 잘려서 떨어지는 소리를 외친다. 

“덜커덩.”

그때는 누구도 당시의 손짓이나 시늉들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단순히 비아냥거리는 정도로 참수 시늉을 하는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쏟아지는 비도 아랑곳하지 않고 걷기를 계속했다. 포봉리(浦峯里)에 도착했는데 그때서야 비가 그쳤다. 이때 한 관리가 군리를 거느리고 와서 최부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들이며,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소?”

최부는 비교적 자세히 대답했다.

 “저는 조선국사람으로 문과에 두 번 급제한 후에 왕명으로 국사를 받들어 제주도를 순시했습니다. 그러는 도중에 부친상을 당하여 급히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폭풍을 만나 표해를 하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갖은 고생과 파도에 부대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상태로 녹초가 된 상태입니다. 더구나 이 동네 저 동네 사람들에게 끌려 다니느라 초죽음지경입니다. 여기서 귀하를 만나게 되니 살길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군요.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관리는 최부에게 먼저 죽을 주었다. 다른 일행들에게는 서로 어울려 밥을 지어먹을 수 있게 했다. 고마운 관리가 누구인지 물어보았다. 최부곁에 서있던  왕괄이라는 사람이 말해 주었다.

 “그는 해문위(海門衛) 천호(千戶) 허청(許淸)이라는 사람이오. 당두채를 경비하고 있다가 왜인이 국경을 침범했다는 말을 듣고 그들을 체포하기위해 온 것이오. 언행을 신중히 하도록 하시오.”
 
여태까지 잘 견디어온 최부는 결국 참아온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걸을 수도 없고 팔다리를 움직일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제자리에 서지도 못할 지경이 되고 말았다. 마음고생까지 겹쳐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고만 것이다. 경비책임자 허청이 말했다.
 
 “지금 대당의 법도는 엄하여 당신과 같은 외지에서 들어온 자들을 여기에 오래둘 수 없게 하고 있소. 더 있다가는 조롱만 당하고 양민을 어지럽게 만들 것이오.”

그는 군리들에게 명하여 최부 일행을 끌고 가도록 했다. 5리쯤 더 가자 관청이 있었다. 그곳은 당두채였다. 십여 리 쯤 되는 기다란 저수지 둑을 따라 가자 멈췄던 비가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최부는 이리 비틀 저리 절뚝거리며 걸음을 옮기다가 더 이상 발을 떼어 놓지 못하고 흙탕물이 질펀한 길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사색이 된 최부는 끙끙대며 신음소리를 냈다.

“아-아, 기력이 없다. 으-음 이제 죽게 되는구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차라리 더 일찍 바다에서 죽는 것만 못하구나. 차디찬 이국땅에서 죽다니 원통하고 분하다.”

바르르 떠는 최부의 입술은 부르터진 상처에 두꺼운 딱지가 지고 짓물렀다. 그의 말이 끝나자 정보를 위시한 많은 사람들이 서로 마주보며 앉아 대성통곡을 했다. 그런다고 시간을 끌거나 쉴 수도 없었다.

이정, 이효지, 허상리, 현산 등 몸이 대체로 성한 사람들이 교대로 최부를 업고 가던 길을 재촉해야만 했다. 거의가 결사적인 사투였다. 어두침침한 산길을 지나 고개를 두 번째로 넘자 매우 번화하고 많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앞 중앙에는 커다란 절이 있었다. 고통을 견디지 못하는 최부의 끙끙 앓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아이고 응-응.”

왜구(倭寇)로 오인 받은 최부 일행

날은 이미 저물어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비는 여전해서 걸음을 계속하기는 불가능했다. 최부는 허청에게 간청했다.

“더 이상 걷기가 어렵군요. 절에서 하룻밤만 쉬고 가도록 해주시오.”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마을사람들이 여기에 머무는 것을 싫어한다고 하면서 말했다.

“이곳 주민들은 당신 일행들이 도적 떼로 의심하고 있기 때문에 허락할 수 없소. 만약 여기에 머문다면 야밤에 흥분한 주민들의 습격을 당해 죽을지도 모르오. 아무리 괴롭더라도 가지 않을 수 없으며 몸을 피해야 할 것이오.”

“여기서 머무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 가지오. 서둘러 갑시다.”

무거운 발길을 다시 걷기 시작해야했다. 큰 고개를 하나 넘어 밤이 깊은 11시경에 작은 냇가에 이르렀다. 최부를 부축하며 함께 걸어온 이정 등도 이제는 힘이 다 빠졌는지 자신들의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게 되었다. 최부를 따르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기진맥진한 일행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초행의 밤길을 그것도 질펀한 진창으로 변해버린 흙탕길을 걷는 것이란 너무 힘들었다. 허청이 최부의 손을 잡아끌며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으나 부르튼 발로는 한발자국도 떼어 놀 수가 없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고이복이 화를 내면서 말했다.

“괴롭다 괴롭다하지만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힘들 바에야 차라리 일어나지 못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최부는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수치스럽기도 했다.

“내가 어찌 배안에서 죽지 못했던고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고 말리라.”

말을 마친 최부는 자리에 누워버렸다. 그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도 덩달아 여기저기에 나자빠져 누웠다. 시간이 급하고 화가 난 허청이 군리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파김치처럼 지리멸렬이요 기진맥진한 최부 일행은 자리에 앉아있는 것도 어려웠다.

“빨리 빨리 가도록 하라. 자리에 누운 자들은 가죽채찍으로 사정없이 두들겨 패도록 하라!”

무지막지하게 몰아세우며 때리자 다시 일어선 일행은 어디로 끌려가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양팔을 땅바닥을 짚으며 부랴부랴 기면서 가야만 했다. 그렇게 얼마만큼을 지나자 한 관리가 횃불을 높이 쳐든 채 병졸들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갑옷과 투구를 걸치고 창검과 방패 따위로 무장한 그들은 요란스럽게 날나리, 바라, 나팔, 장고, 총소리를 내며 최부 일행을 겹겹이 에워 쌓더니 창과 칼로 찌르는 시늉을 해보였다. 심장을 겨누며 찌를 때는 죽이려는 살인자들처럼 핏기가 충혈되고 무서워서 살벌해 보였다. 옴 몸이 부르르 떨렸다.

최부 일행은 혼비백산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힘에 겨운 일행은 기진맥진이다. 그 관리는 허청과 함께 대오를 정돈하고 모두에게 전진을 강요했다. 3 ?4리쯤 더 가니까 성곽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집이 있었다. 도저고성(桃渚古城) 안에 있는 내성이었다.

성안에 있는 절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성안에는 높은 벼슬아치인 듯한 사람이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일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최부는 그가 누구인지 스님에게 물어보았다.

 “도저고성(桃渚古城)천호인데 왜인들이 국경을 침범했다는 보고가 있어서 그들을 잡아들이기 위하여 고문기구를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그는 많은 부하 장졸들을 거느리고 최부일행을 하수인 다루듯 함부로 대했다. 내일쯤이면 병사들이 도저고성에 도착하게 되는데 그때는 고문을 곁들여 심문을 시작할 것이라고 귀띔해 주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