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현대사에 위기가 한두 번이었겠냐마는, 1980년대 들어서도 아찔한 때가 여러 번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머리끝을 쭈뼛 서게 만드는 일은 5공 말기인 1986년에 있었던 전두환 정권의 친위 쿠데타 시도였다.

당시 전두환은 안기부장 장세동, 육군참모총장 박희도, 안기부장특보 박철언 등을 불러 국회 해산과 계엄령 선포를 포함한 계획을 밝혔다고 한다.

지금이야 미국이 저렇게 욕을 듣고 있지만, 그때 정보를 얻은 미국의 견제가 없었더라면 아직도 우리는 군 출신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지난 어느 시절에 ‘쿠데타’는 우리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래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말을 정확하게 발음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쿠테타’라고 하는 사람이 많았고 ‘구테타’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쿠데타’라고 해야 옳다. 철자가 ‘coupd'Etat'이니 ’쿠테타‘가 될 이유도 없고, 근거도 없다.

그런데 ‘쿠테타’보다 더 많이 보이는 잘못이 ‘바리케이트’다. 심지어 신문에도 이렇게 틀린 표현이 자주 나온다. 그리고 방송에서는 더 많이 나온다.

하지만 역시 거센소리(격음)로 쓰는 것은 잘못이다. 철자가 ‘barricade' 이므로 ’바리케이드‘라고 해야 한다.

쿠데타의 정서가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것이라면 바리케이드의 목적은 ‘일단 막고 보자’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쿠데타와 바리케이드는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것들처럼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쿠데타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습관적으로 새벽의 도시에 진주해 온 탱크와 주요 시설물 앞에 서 있는 군인들, 그리고 그들 앞에 있는 바리케이드를 떠올리게 되니, 참으로 묘한 일이다.
 
(이진원의 ‘우리말에 대한 예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