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년(1632) 3월 9일 시길의 무리와 뒷산의 고정(姑井)에서 고사리를 삶아 먹다.

1)
聞說春歸盡  봄이 다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杖藜登後山  지팡이 짚고 뒷산에 오르네
韶光猶未了  봄빛은 아직 다 없어지지 않았으니
老興固難刪  늙은이의 흥취 진정 없애기 어렵네
薇蕨烹撑鼎  고사리를 삶으려고 솥을 지탱하고
冠童坐作環  학생들은 빙 둘러서 앉았네
人間此眞樂  인간 세상에선 이것이 참된 즐거움이니
共帶夕陽還  함께 석양을 끼고서 돌아오네

2)
遺却人間事  인간세상의 일을 버려버리고
過從物外天  사물 밖의 세상과 왕래하네
淸遊及今日  맑은 놀이는 오늘에 해야하나니
此老小餘年  이 늙은이의 남은 날이 많지 않으니
飢煮石間蕨  배고프면 돌 사이의 고사리를 삶고
渴飮松下泉  목마르면 소나무 아래의 샘물을 마시네
隨陰屢移席  그늘을 따라 누차 자리를 옮기며
忘返暫成眠  돌아감을 잊고 잠시 잠을 이루네

3)
處處花如海  곳곳마다 꽃은 바다와 같고
家家酒似江  집집마다 술은 강물과 같네
錦城豪俠窟  금성은 호걸들의 고장이니
湖右更無雙  호남에선 이에 짝할 곳이 없으리

이 시는 시서선생 나이 64세 때 쓰신 시입니다. 총 7수의 시를 지었으나 3수만 소개합니다.

당시에 아들인 시길과 함께 여러 학동들을 데리고 뒷산에서 고사리를 삶아 먹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시 내용을 살펴보면 학동들이 빙둘러 앉아 있는 것으로 보아 대여섯명은 된것 같습니다. 당시 시길의 나이는 34세였습니다. 추측컨대 친구 아버님을 따라 새봄에 자란 고사리를 삶아먹는 봄놀이를 아들친구들이 주선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두 번째 소개 시를 보면 고사리를 즐기면서 배부르면 그늘을 찾아서 낮잠도 자고 참편안한 휴식을 즐기고 있습니다.

마지막 시는 나주의 자긍심을 표현하면서 나주는 집집마다 꽃이 만발하고 집집마다 술이 가득하니 영웅호걸이 많은 곳으로 호남에서 으뜸이다 라고 자신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사리는 궐채, 궐기근, 고사리근 등으로 불리우며 비빕밥과 특히 육개장의 필수재료로 우리나라 국민의 사랑을 받는 나물입니다. 서귀포에서는 고사리 축제를 하기도 하고 “고사리는 귀신도 좋아한다” “고사리도 꺾을때 꺾는다”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 김종순 고대문화T/F팀장

고사리와 관련하여 가장 많이 알려진 내용은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나오는 백이숙재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상나라 말기 주나라 무왕의 학정을 피해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만 먹고 살자 수양산의 고사리도 주나라것인데 먹는냐 하자 그마저도 먹지 않아 굶어 죽었다는 내용으로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충신의 모습을 즉 청절지사(淸節志士)의 기개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산에서 채취한 고사리를 넣은 조기 매운탕을 이주에는 한번쯤 요리하여 드시는 것도 멋진 봄을 보내는 방편이 아닌가 합니다.  

김종순  고대문화T/F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