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광범위한 ‘포퓰리즘’ 압축해 설명”

이번 주는 좀 딱딱하지만, 20년 전 ‘포퓰리즘의 이념적 위상’이란 논문으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포퓰리즘 논의의 장을 마련했던 서병훈 숭실대 교수가 펴낸 《포퓰리즘-현대 민주주의의 위기와 선택》이란 단행본을 소개한다.

일반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형태를 흔히 말하는 포퓰리즘(popullsm). 지난 수년동안 한국정치현상을 규정하는 용어로 가장 많이 동원된 것 가운데 하나가 포퓰리즘이라는 말이었다. 그동안 국내에서 통용된 포퓰리즘이란 말은 ‘대중영합적 인기전술’을 뜻했다. 부정적 뉘앙스가 들어있는 이 용어는 일종의 낙인찍기 효과를 노린 정치용어였다.

▲ 서병훈(지은이)

하지만 이렇게 자주 쓰이는 중요 용어임에도 그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러한 가운데 서 교수가 이번에 펴낸 《포퓰리즘》은 한국사회에서 정치적 욕설에 가깝게 사용된 포퓰리즘이란 말의 개념을 명료하게 한정하고 그 함의를 밝히려는 이론적 시도로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포퓰리즘 개념의 모호성은 우리뿐 아니라 세계적 현상으로서, 포퓰리즘은 현대 민주주의 체제가 숙명처럼 끌어안고 있는 난제라는 것이다. 특정 사회의 후진적 현상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즉 유럽이나 미국 등 이른바 선진국에서도 포퓰리즘은 계속 재생산되고 있고, 또한 좌파나 우파 어느 한쪽만의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다.

서 교수는 이처럼 개념이 모호한 포퓰리즘의 이해를 위해 고전적 포퓰리즘의 양대 기둥이 된 1870년대 러시아의 ‘브나르도(인민 속으로)’ 운동과 1892년 미국 인민당 운동 등을 출발점으로 전 세계적으로 위력을 발휘해온 포퓰리즘의 과거와 현재를 더듬는다.

아르헨티나의 페론,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프랑스의 르펜, 일본의 고이즈미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역사적 실례를 바탕으로,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민주주의의 한계를 거름 삼아 그 위력을 과시하고 있는 포퓰리즘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현대 민주주의의 특징을 두루 살피고 있는 이 책은 포퓰리즘이 현대 민주주의와 어떤 점에서 대척되는지, ‘인민에 영합’하는 포퓰리즘과 ‘인민에 의한 정치’를 표방하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고찰하면서 포퓰리즘에 대한 비난이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나아가 한국정치에서 포퓰리즘이 논의되고 소비되는 양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우리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길을 제안한다.

서 교수는 “사람마다 다른 현상을 염두에 두고 포퓰리즘을 사용하는 바람에 포퓰리즘은 신발은 있으나 신발에 맞는 발은 어디에도 없는 신데렐라 유리구두 신세가 됐다“며 ‘인민에 대한 호소’와 ‘선동 정치인에 대한 감성자극 정치’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포퓰리즘을 정의 할 것을 제안한다.

이 두 기준에 따라 서 교수는 포퓰리즘을 “기성질서 안에서 신분상승을 꾀하는 정치지도자가 인민의 주권회복과 이를 위한 체재개혁을 약속하며 감성적인 선동전술을 바탕으로 전개하는 정치운동”으로 정의를 하고 있다.

서 교수는 “현대민주주의가 주권자 인민과 겉돌고 있는 현실에 실망하고 있는 사람들이 포퓰리즘에 환호한다.”며 포퓰리즘 극복을 위한 유권자의 깨어있는 의식, 시민단체와 언론의 감시기능 회복을 강조한다. 특히 4·9 총선 기간 중 정치인들이 반대파를 몰아세우기 위해 포퓰리즘이 단골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이 책은 포퓰리즘의 새로운 개념 정의와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어 관심 있는 이들이 한번쯤은 꼭 읽어볼 만한 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