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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의 나주이야기-45.남간의 계정에서 읊었는데 강남곡을 본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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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호] 승인 2008.03.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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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磵翁          남간 늙은이
風流誰與肩      그 풍류를 누가 비견할까 ?
亂代縱違金窟桂  어지러운 시대에 비록 금굴의 계수와는 어긋났으나
明時早折玉池蓮  태평시대에 일찍이 옥지의 연꽃을 꺾었네
今作酒中仙      지금 술독에 빠진 신선이 되어
저天奧          하늘의 비밀을 엿보며 (엿볼저 한자가 없어서)
經營第數椽      서까래 몇 개의 집을 지었네
枕溪謀耳背城市  시내를 베고 귀를 추구하고자 도시를 등지고
種藥蒔花分後前  약을 심고 꽃을 키우며 전후로 나뉘었지만
與我許忘年      나에게 나이를 잊는 사귐을 허락 하였네

여기서 나오는 남간은 나해봉(1584 ~ 1638)선생이다. 선생은 시서선생보다 16년 늦게 태어나 시서김선 선생보다 4년 먼저 돌아가신 분이다. 시 내용을 보면 남간선생이 즐겨 생활하는 곳의 하나가 계곡가에 지은 계정임을 알 수 있다. 그럼 계정이 어디에 있었는가 ?

궁금하지만 적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추측컨대 지금의 나주천 당시의 대곡과 완사계곡의 어디에 있었지 않을까 추측만 해볼 뿐이다. 왜냐하면 남간선생이 모셔진 계간사가 최초에는 서문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 1971년 유지를 옮겨 나주시 석현동에 복원하여 현재에 이른다.
또한 시서선생이 과거가 정거된 이후로 세상사에 분개하여 공명에 대한 생각을 끊고 성 서쪽의 대밭 속에 오락정(형제, 처자, 시, 술, 빈곤)을 짓고 생활하였는데 남간선생의 정자도 인근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시서선생이 남간선생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시의 마지막 구절에도 표현되었다.

한편 계간사는 1709년 나주목사를 지낸 계곡 장유(1587~1638)와 남간 나해봉을 배향하기 위해 두선생의 호를 따서 세웠다.

이후 금은 홍적(1595~1647)과  계수 나준(1608~1677)을 추배하여 모시다 1868년 훼철된 후 복설되지 못하다가 1971년 유지를 옮겨 나주시 석현동에 복원하여 현재에 이른다. 계곡선생과 남간선생은 사계 김장생의 문하생으로 남간을 변론하다 나주목사로 죄천되어 나준 등에게 학문을 전수하는 등 나주나씨와 깊은 인연이 있었다. 

강남락은 사(詞)의 하나인데 사란 시의 변형이다. 시는 원래 길게 노래하는 것인데 시대의 변천에 따라 재래의 시형에다 어느 부분은 한자를 빼고 더하기도 하여 사람의 음악적 감각에 합치하도록 발전된 것을 사(詞)라 한다. 당나라 말년에 시작되어 송나라에 와서 극성한 시대를 이루었다.

12월 9일 세 자루의 인검을 만들고 읊어서 기문의 아래에 붙이다
(十二月初九日 作三寅劍 ? 付于記下)

庶人天子與諸侯  서민과 천자 그리고 제후가 있어서
此是尋常摠一流  이것은 보통 모두 일류의 것일세
?鋏莫論資聖傑  칼에 잇어서 성스럽고 걸출한 자질을 논하지 마소
持行何必待春秋  가지고 행함에 하필 봄과 가을을 기다릴까 ?
靑天露出虹?泣  푸른 하늘에 드러나면 무지개가 울고
黑地潛藏鬼魅愁  검은 땅에 묻어 놓으면 귀신이 근심하네
寅劒至神人莫識  세자루의 인검은 지극히 신묘한데 사람들은 알지 못하니
獨摩霜刃倚床頭  홀로 서리같은 날을 갈면서 평상에 기대네

여기서 나오는 삼인검은 일종의 벽사용 의장용 보검이다. 인검은 인(寅)자 들어가는 해 즉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에 만든 검으로 사인검이 가장 권위와 벽사 호신용의 기운이 강한 것으로 보았다.

   
▲ 김종순 고대문화TF팀장
이 가운데 한 개의 인이 빠진 검을 삼인검 두개가 겹치면 이인검이라 하였다. 호랑이는 무를 상징하니 인(寅)이 여러 개가 겹치면 벽사의 기운이 뛰어난 것으로 믿어 이런 검을 제작하곤 하였다. 시 내용을 보더라도 삼인검이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고 막아내는 힘이 있다는 것은 5, 6구절에서도 말하고 있다.

시서선생이 살아계시는 동안 5번의 인년이 오는데 1578, 1590, 1602, 1614, 1626년이다. 시에 나오는 삼인검은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1614년 또는 1626년에 제작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김종순  고대문화T/F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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