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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개 읍·면·동을 찾아서 - (16) 금남동남고문, 정수루, 목사내아 등 나주 역사·문화의 중심지
김현정 기자  |  hj2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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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호] 승인 2007.12.3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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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지역민들과 향우들에게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그리고 살았던 각 지역마다의 특성과 유래 등을 알리고, 나아가 각각의 특색을 살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가야 하는가를 함께 고민해보기 위해 매주 19개 읍·면·동을 찾아가 본다.<편집자 주>

영산강역사문화축제의 주무대로 다양한 문화유산 산재

나주의 역사·문화 중심지로 남고문을 비롯해 목사내아, 정수루 ,나주향교 등이 자리잡고 있는 금남동. 이곳은 국도 1호선과 13호선, 호남선이 관통하고 금성산과 영산강이 흐르는 도·농 복합도시이다.

지난 1981년 나주읍과 영산포읍이 나주군에서 분할돼 금성시로 승격하면서 '금성'과 '남내'의 지명을 합쳐 '금남동'으로 불리어지기 시작했으며, 1998년 읍·면·동 통폐합에 따라 향교동, 금남동, 남산동을 합해 현재의 금남동이 되었다.

관할 법정동은 교동, 산정동, 경헌동, 보산동, 금계동, 금성동, 남내동, 남외동, 죽림동, 삼도동 등 11개이다. 나주시 마을유래지에 따르면 '금계동'은 1789년 나주목 서부면 금계동으로 처음 나타났다가 그 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나주군 금정에 편입되었었다.

   
▲ 나주의 역사·문화 중심지로 남고문을 비롯해 목사내아, 정수루 ,나주향교 등이 자리잡고 있는 금남동.
1929년 나주면, 1923년 나주읍에 속하다가 1981년 금성시로 승격되면서 금남동의 관할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금성동'은 천변리 일부와 동부면 학교리, 우변리, 영촌외 각 일부를 병합해 '금성정'으로 불리어지다 1946년 일본식 마을명을 고칠 때 금성동이 되었으며, '남내동'은 남고문의 이름을 본 따 '남문정'이라고 하였다가 이 역시 일본식 마을명을 변경할 때 남내리로 바뀌었고 1981년 금남동의 관할이 되어 오늘의 남내동이 된 것이다.

'남외동'은 남고문의 밖에 위치하고 있어서 '남밖에'라고 불리어져 오다가 1946년 일본식 마을을 고칠 때 남외동이 되었으며 1998년 인구 5천 미만 읍·면·동 통폐합에 따라 금남동의 관할이 되었다.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열람에 내도리와 외도리로 나타났던 '삼도동'은 1981년 삼도마을이 되었다가 남외동과 같이 인구 5천 미만 읍·면·동 통폐합에 따라 금남동의 관할이 되었다.

'죽림동'은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 나주군 동부면 죽림리로 기록돼 있으며, 남산동의 관할이 되었다가 1998년 금남동 관할에 이르러 현재 죽림동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나주목 서부면 서원천으로 나타났던 '경헌동'은 당시 경현서원이 있었던 데서 유래된 것으로 경현리에 편입되어 향교동 관할이 되었다가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교동'은 나주향교가 있는 곳이라 하여 향교몰, 향교촌, 교촌이락으로 불리어졌었다.

'서내동'은 나주읍성 사대문 중 하나인 서성문의 안쪽에 해당되어 서문내의 지명으로 나타나다가 1912년 서문정으로 바뀌었다가 1946년에는 서내리로 불리어졌으며, '산정동'은 명당거리, 뒷논간, 산정밑, 성갓이라 불리는 자연취락들이 합쳐져 이루어진 지명으로 1946년 산정동으로 변경됐다.

'보산동'은 문헌상 마을이 처음 보이는 것은 1789년 호구총수에 나주목 서부면 '보현'으로 나타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나신면 보산리에 편입, 1998년 금남동 관할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11개의 법정리별로 다양한 마을유래를 가지고 있는 금남동은 총 면적 11.57㎢로 나주시 면적의 1.9%를 차지하고 있으며, 현재 8천55명(남 3천992명, 여 4천63명)이 거주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가 361세대 702명, 모부자 가정이 32세대 90명이며 홀로 사는 노인이 185명이다. 동사무소는 금계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초대 박기문 동장 이래 현재 6대 신영희 동장과 10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영산강역사문화축제의 주무대로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이곳은 나주 역사·문화의 정체성을 지닌 다양한 문화유산도 산재해 있다.

동·서·남·북  4개의 성문을 설치하고 성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 외적의 침입에 대비한 나주읍성 중의 하나인 '남고문'은 1993년 12월에 복원됐다.

이후 2002년 3월 발굴조사를 통해 거의 완벽한 상태의 유구가 확인되기도 해 조선시대 읍성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나주의 관아문으로 선조36년 나주목사로 부임한 동계 우복용이 건립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정수루'도 자리잡고 있으며, 조선시대 때 목사가 정무를 보던 동헌의 근처에 있던 살림집이던 '목사내아'도 유명하다.

한편 보현마을과 전답이 국도 1호선으로 분리돼 있어 농사철과 일상 생활에서 국도 횡단 중 교통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어 금남6통 농기계 전용도로 설치가 필요한 실정이며, 주차장 부족과 도로협소 등으로 청소차량의 진입이 어려워 쓰레기 수거가 지연되고 있는 등 산정동 공용 주차장 설치가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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