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연재 | 신광재 기자의 근·현대 나주인물사
1. 한국광복군 주력부대 제5지대 지대장 나월환 ③
신광재 기자  |  sjs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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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호] 승인 2007.12.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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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보통학교 1회 졸업

 나월환이 일본으로 건너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유년시절과 양산 보통학교 입학 시기 등을 추적해 보면 대략 알 수 있다.  
 
나월환의 누나(지금은 고인이 되었음)와 지인, 그리고 후배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그는 왕곡 양산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의 조카 이동흠씨는 “어머니(나월환의 누나를 가리킴)가 살아 계실 때 삼촌이 10-11살때 양산 보통학교에 입학하고 졸업을 했으며, 1회 졸업생 모임에서 회장을 했다”고 전해 들었다.

그리고 당시 양산 보통학교를 함께 다녔던 친구들(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었음)과 그를 알고 있는 후배들 또한 나 장군이 학교를 졸업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양산초등학교 1회 졸업생들의 제적이 1945년 전후로 유실되어 양산 보통학교를 졸업했다고 단정지을 수 없지만 그의 가족과 친구, 그리고 후배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양산 보통학교를 졸업했을 가능성이 크다. 나월환이 양산 보통학교를 졸업했다고 가정하면 졸업연도는 1928년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1927년 9월 3일(음력) 광주지방법원에서 나월환의 호적정정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아들이 일본으로 건너간 뒤라면 아버지가 굳이 법원에 호적정정신청을 낼 이유가 없었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겠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아버지는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에 잘못된 아들의 출생일을 바로 잡아 주려고 법원에 정정신청을 냈을 것이다.

그가 중국 남경 중앙군관학교에 입학했을 때 입학당시 이력서에 정정된 출생일이 적혀 있다. 1927년 이전에 일본에 갔다면 아마 1909년 2월 25일로 적었을 가능성이 컸을 건인데, 중앙군관학교 이력서에는 1912년 10월 14일로 기록되어 있다.       
 
   
▲ 지금의 양산초등학교
반면 인천에서는 나월환이 1924년 3월17일에 인천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면서 인천의 인물로 선전하고 있다.

그의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 인천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관계로 그의 출신 초등학교가 인천 공립보통학교로 잘못 알려지고 있다.
 
1924년이면 나월환의 실제 나이는 13살로 보통학교를 졸업할 연령이다. 실제 인천 공립보통학교(지금은 창영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뀜)를 졸업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인천 공립보통학교 졸업생 명단에서 나월환의 이름을 찾아보았다.
 
1907년에 개교한 이 학교는 1910년에 1회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1922년 이후 4년제에서 6년제로 바뀌었다.

1924년에 졸업했다는 주장에 따라 1924년 3월 17일 14회 졸업생 명단을 뒤져보았지만 나월환의 이름은 없었다. 혹시 1-2년 잘못되었을까하는 생각에 1회부터 시작해 20회까지, 1930년에 졸업한 졸업생들의 명단을 모두 확인했으나, 그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인천 공립보통학교의 졸업생 명부에는 졸업생 각자에게 졸업대장 번호와 졸업자 총순번을 매겨두고 있어 한명이라도 빠질 경우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1924년 졸업생 대장번호를 면밀히 확인해 보았지만 빠진 번호는 없었다. 나월환이 인천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그리고 나월환이 11살 때인 1922년에서야 양산 보통학교가 문을 열어 3학년인 1924년에 인천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할 수가 없다.       
 
양산 보통학교에 나월환의 졸업을 증명하는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그가 인천 공립보통하교가 아닌 양산보통학교를 졸업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친인척과 제적등본, 당시 정황을 다각적으로 종합해 보면 나월환은 1922년, 11살 때 양산 보통학교에 입학한 뒤 1928년에 졸업한 것 같다.

졸업 후 얼마 뒤 인천 둘째형 집에서 잠시 머무르다 1928-9년 전후로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인천 둘째형 집에서 머물렀던 게 마치 인천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오인된 것이 아닌가 싶다.

따라서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야만 학력부분과 출생,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간 시기 등을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월환이가 일본으로 떠난 뒤 그의 가족은 1940년 왕곡면 송죽리에서 영산포 영산동으로 이사하였다.

당시 신협 건너편 영산강라이온스 사무실 골목으로 이사 온 나종성씨는 얼마 후 장승배기, 지금의 강남상회 인근, 윤춘만씨 집으로 다시 이사한다.

 나씨는 농사일을 그만두고 목포에서 올라오는 어물선에서 고기와 소금을 받아 소매업자에게 판매하는 중간상인 일을 시작하게 된다.

1928년경 일본 세이조중학교 입학

 일본으로 건너간 나월환은 동경 세이조중학(成城중학교)에 입학했으며, 그 시기는 대략 1928년으로 추정된다. 성성중학교는 「운수 좋은 날」의 작가 현진건과 농촌문학의 선구자 이무영 등이 다녔던 일류학교였다.

강한 민족의식을 견지하면서도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기보다 낭만적인 소설을 썼던 현진건은 1917년 성성중학교를 졸업했으며, 농촌을 주제로 본격적인 농촌문학을 쓴 이무영(1908년생) 또한 성성중학교를 입학하고 나서 중퇴하였다.
 
성성중학교를 입학할 때쯤 그의 가정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학업을 중단할 위기에 처하자 나월환은 새벽에 청국장 장사를 하면서 자신이 학비를 벌어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성성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일본에서도 천재들이 다녔다는 아오야마학원(靑山학원)에 입학한다.

청산학원 또한 ‘모란이 지기까지’를 지었던 시인 김영랑(본명 김윤식)이 영문과에 입학했지만 관동대지진 때문에 학업을 포기했던 학원이다. 개신교 최초의 여성목사 전밀라 목사를 비롯해 애국 시인 용하 박용철이 다녔던 학원이다.
 
중국으로 건너간 1931년까지 그는 4년가량 일본에서 성성중학교와 청산학원을 다니면서 아나키즘(무정부주의) 단체에 들어가 항일 민족운동에 눈을 뜨게 된다.
 
나월환이 관심을 가졌던 일본의 조선인 아나키즘은 어떤 단체였을까?.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일본에서 전개된 조선인 아나키스트들의 사상은 반일, 반제국주의 이념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그들은 민족주의 부르주아적 속성과 공산주의의 중앙집권주의 경향도 강력히 비판하면서, 이의 대안으로 반제평화사상과 자유연합주의를 실천하였다.
 
나월환이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던 1930년대 초에 조선인 아나키스트들은 사상단체와 노동단체를 중심으로 항일운동 선전을 비롯해 친일세력 응징과 노동단체 후원, 민족행사 주관 등으로 독자적인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30년대 일본에서 전개된 조선인 아나키스트들의 활동은 그 역사나 규모 면에서 매우 짧지만 그들의 다양한 활동이나 이념은 공산주의 세력이나 민족주의 진영보다 비교적 분명한 노선과 독특한 색깔을 갖고 있었다.

1936년경에 흑우연맹을 비롯해 대부분의 아나키스트 단체들이 모두 해산되자 일부 잔류회원들은 소그룹의 비밀결사를 펼치거나 중국으로 망명해 광복군에 참여하는 등 꾸준히 일제에 저항하였다.
 
나월환을 소개하는 모든 책이나 자료에는 ‘일본에서 박열(朴烈) 등과 교류하면서 무정부주의에 참여하고 있다’라고 적고 있으나, 이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 그가 1924년을 전후해서 일본으로 갔을 것이라는 추측 때문에 잘못 기재한 것이다.
 
최초의 무정부주의 단체인 '흑도회'(黑濤會)를 조직한 박열은 1923년 10월 일본 왕자 히로히토[裕仁]를 암살하려 한 이른바 '대역사건'(大逆事件)으로 검거되어 해방 때까지 징역을 살았다.

나월환이 1928년경에 일본으로 건너갔을 때 박열은 이미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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