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숙

한 생애의 사랑이 달게 여문 배를 깎는다. 배는 사르르 부드럽게 깎이다가 뒤꼍에 들어서자 칼이 뒤뚱거리고 눈부시던 속살이 흠칫 어두워지고 만다. 칼도 받지 않는 시간들이 어둠에 뭉쳐있다. 그곳에는 뒤적거리며 되새김질할 달디 단 추억이 없다. 햇살은 늘 반대쪽으로 고이고, 옷깃 한번 스치지 못한 사모의 시간은 시나브로 조각나 사금파리로 박히고 말았을까. 풀린 적 없는 옷고름을 곱씹으며, 벽장 속에서 찾아낸 누렇게 뜬 흑백사진 속에서 소박데기였다는 대고모님의 시간을 더듬어본다. 아프게 찔리는 사금파리들을 대고모님의 심장에서 조심조심 들어내었다. 한줄기 햇귀가 밀어올린 더운 길이 고흔 가르마처럼 건너오고, 뭉친 어둠에서도 달짝지근한 추억이 살풋 우러나는 듯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