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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개 읍․면․동을 찾아서 - ⑬ 봉황면만호정 등 다양한 문화유산 산재…유서 깊은 역사의 고장
김현정 기자  |  hj2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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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호] 승인 2007.12.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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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지역민들과 향우들에게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그리고 살았던 각 지역마다의 특성과 유래 등을 알리고, 나아가 각각의 특색을 살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가야 하는가를 함께 고민해보기 위해 매주 19개 읍․면․동을 찾아가 본다.<편집자 주>

나주배의 17% 재배…배술과 황토팩 등 지역특산물 각광
한국전쟁 당시 무고한 주민 30여명 희생, 역사적 아픔도

유서 깊은 역사의 고장으로 잘 알려져 있는 봉황면.

이곳은 삼한시대에 마한 땅으로서 54개 부족국가 중 불미지국(不彌之國)이었으며, 백제가 정복해 실어산현(實於山縣)으로 명칭하고 철야마을에 현청(縣廳)을 설치했던 역사의 고장이다. 고려시대에는 12목의 하나인 나주목의 속현(屬縣)으로 덕곡, 죽곡, 욱곡, 다소, 도천 등 5개면을 관할했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영평현과 남평군에 속하게 됐다.

이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덕곡, 죽곡, 옥곡 3개면이 통합해 ‘나주군 봉황면’이 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 나주시․군 통합됨으로써 ‘나주시 봉황면’으로 칭해졌다.

동쪽으로는 다도면과 경계하고 있으며 서쪽은 세지면, 북쪽은 금천면과 산포면, 남쪽으로는 영암군에 접해있는 봉황면은 덕룡산이 면 전역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고, 덕룡산 줄기에서 시작해 영산강을 향해 흐르는 유곡천, 봉황천, 영산천, 만봉천 등 깨끗한 하천이 자리잡고 있다. 또 동남쪽의 산악지대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평야와 구릉지대가 많다.

총 면적은 59.93㎢로 나주시 면적의 9.2%를 차지하고 있고, 6천009명(남자 3천035명, 여자 2천964명)이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1967년에는 3천323세대가 거주하는 등 많은 가구수가 살았으며, 그 이듬해에는 2만266명의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기도 했었다.

전체인구 중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가 585세대 996명이며 모·부자 가정이 14세대 44명, 홀로 사인 노인이 33명이다. 면사무소는 죽석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철천리, 각동리, 송현리, 장성리, 유곡리, 옥산리 등 18개의 법정리를 관할하고 초대 권병국 면장 이래 현재 26대 고병수 면장과 20여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 봉황면은 한국 전쟁당시 철야 뒷산 양민학살 사건은 빨치산과 공비 색출을 명분으로 나주 경찰서 봉황지서에 의해 자행돼 무고한 봉황 철천리 철야마을 주민 30여명이 희생된 역사적 아픔이 남아 있기도 하다.
봉황면에서는 나주배의 17%를 재배하고 있으며, 원료에서 주모(酒母)에 이르기까지 100% 배로 만든 ‘배로와인’은 알코올 농도를 조절할 때 물을 타지 않고 배즙을 활용하기 때문에 독특한 향과 청량미가 일품이다. 특히 맛과 효능을 인정받아 ‘2001 한국전통식품 베스트5 선발대회’에서 알코올 25%미만 전통주류 부문에서 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미생물을 통한 유기물 분해와 인체에 유익한 효소를 생성해 만든 봉황 황토팩도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황토팩은 미량 미네랄 원소를 통해 약리작용을 하고 생체 활성화 이온인 음이온을 발생해 피부미용에 탁월한 효능을 지니고 있다.

주요 성씨는 이천 서씨(利川 徐氏)와 진주 정씨(晋州 鄭氏)로 절천리 철야마을에 살고 있으며, 철야 역시 노안면의 금동리와 왕곡면의 송죽리 등과 같이 향촌을 만들고 동계(洞契)를 조직해 내려오는 전통마을이다.

서씨와 정씨의 관계를 보면 서씨가 정씨 입향조(入鄕祖-어떤 마을에 맨 처음 들어와 터를 잡은 사람 또는 그 조상)의 처가가 될 뿐만 아니라 그 아들이 서씨의 계보를 이어오고 있다.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가 큰 부자가 되었던 서상록(徐相錄)의 일가가 마을의 발전을 위해 상당을 지원을 해 철야마을이 더욱 대촌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기도 했다. 봉황면에는 철천리 석불입상과 칠불석상을 비롯해 만호정, 만봉리 석조여래입상, 용곡리 이팝나무 등 다양한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고려시대에 축조된 철천리 석불입상은 보물 462호로 비만감 또는 괴체화(塊體化) 되어 가는 신체적 조형 등이 보이나 강한 인상과 주름진 활달한 의습이 당대의 저력과 힘을 충분히 살려준 작품으로 고려시대 초기부터 유행하던 거불 양식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또 보물 제461호인 철천리 칠불석상은 옛날에 불상의 동자상을 돌려서 잘 돌아가면(또는 돌가루를 먹으면) 아들을 낳는 다는 속설이 있어 여인들이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도지정 기념물 145호인 만호정은 웅장한 8각 지붕의 골기와 건물로 고려시대 초기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며 이때는 무송정(茂松亭)이라고 불리어졌다. 그후 쾌심정(快心亭)으로 개칭되었다가 현재의 위치(철천리 343-1번지)로 이전, 영평정(永平亭)이라 불리어 졌으나 정자가 퇴폐(頹廢)됨에 따라 1601년(선조 35)에 중수하면서 만호정으로 개칭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울러 봉황면에는 조선조 학자인 서봉령(徐鳳翎, 1622-1687)을 비롯 조선조의 문신으로 예조판서 조형(趙珩,1606-1679)의 아들인 조상우(趙相愚, 1606-1679), 용구(龍邱)의 족손(族孫)인 서응조(徐應祖, 1701-1791) 등 많은 역사적 인물이 배출됐다.

한편 이곳은 한국 전쟁당시 철야 뒷산 양민학살 사건은 빨치산과 공비 색출을 명분으로 나주 경찰서 봉황지서에 의해 자행돼 무고한 봉황 철천리 철야마을 주민 30여명이 희생된 역사적 아픔이 남아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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