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연재 | 사진으로 보는 영산포의 어제와 오늘
사진으로 보는 영산포의 어제와 오늘 ①
김민주 기자  |  minjukk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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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호] 승인 2007.12.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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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침탈의 전초기지였던 영산포의 옛 모습 가운데 1930년대 사진은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본지가 입수한 사진들 가운데 한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선창포구의 모습과 신사, 식산은행지점, 금융조합, 대흥전기영산포발전소, 영산고등보통학교, 경찰관주재소, 경종대, 농협창고 등을 현재의 모습과 비교해 본다.(편집자주)

영산포선창포구는 일제강점기에 호남 침탈의 전초기지로서 쌀과 군수물자 등을 실어내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 1930년대 영산포 선창의 모습
윗 사진이 바로 1930년대 영산포 선창의 모습이다. 고려시대 이후 수운제도가 발달하면서 천년이상의 영화를 간직한 영산포구가 이제는 배가 드나들지 않는 이름 없는 곳이 되어가고 있다.

영산강을 무대로 발전한 영산포는 나주읍성과는 전혀 다른 맛을 풍기는 도시다. 1910년대 일본인들이 이곳으로 들어오면서 많은 배들이 드나들게 되는데 이때의 포구는 지금의 자리가 아니라 저 위쪽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때의 다리는 나무다리로서 부산 영도다리처럼 배가 통할 수 있도록 다리 일부를 들어 올리는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사람이 다닐 때에는 돈을 받았다고 합니다. 
 
   
▲ 2007년 현재의 영산포 선창의 모습
그러나 이 다리는 홍수가 나면 부서지고 해서 다시 튼튼한 나무다리를 가설하였지만 이 또한 홍수를 이겨내지 못하게 되자 일본인들의 주도로 1930년대 초반에 철근콘크리트 다리를 가설하게 됐다.

또 등대 모형의 건축물은 흔히'영산포 등대'라고 불리어 왔지만, 실제로는 1915년에 일제가 영산강의 수위를 측정하기 위하여 설치한 시설이다. 지금까지는 내륙하천에 남아있는 유일한 등대라고 하였지만 영산포지역에 전기가 들어온 것은 1925년경이므로 등대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그러나, 지금은 배가 드나들지 않기 때문에 수위를 측정할 필요도 없어졌지만 저녁이면 불을 밝혀 영산포구의 역사를 음미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영산포로 들어오는 돛단배와 통통배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도 운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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