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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윤영근의 소설표해록-6.무정자로 태어난 여인국(38) 오줌을 마시며 항해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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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호] 승인 2007.12.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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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호에 있던 결로기(結露器)도 이미 부셔져 어디론가 사라졌다. 바닷물을 끓여 증발할 때 이슬처럼 대롱에 매달린 물방울을 모아 식수로 쓰던 용기를 말한다.

갑판에 설치를 해보지도 못하고 사라진 것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물을 달라고 외치던 소리도 내지 못한다.

비극 중에서도 상비극인 것이다. 먼바다 항해를 많이 해왔던 정실(鄭實)이 식수의 비상대책을 외쳤다. 몇 해 전에 자신이 겪었던 경험이라고 했다.
 
“오줌을 모아 마시도록 하세요.”
 
오줌을 모아 마시는 것도 잠시 동안 뿐이었다. 소량의 수분도 마시지 않았으니 오줌도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 까마귀 똥도 약에 쓸려면 구하기 어렵다더니 오줌이 나와야 마시거나 말거나 하지.
 
최부는 아래층 공구함 옆에 있는 창고를 부수고 들어갔다. 비상용 식량이 있는 곳이다. 제주에서는 구하기 힘든 쌀을 숨겨둔 곡간이다. 생쌀을 씹어 먹어야만 했다. 허기를 이기기 위해서다.

여태까지 단 한차례도 대변을 본 사람이 없었다. 먹은 것이 없으니 똥이 나올 턱이 없다. 아사지경(餓死之境)이란 이런 경우에 이르는 말이다.
 
이렇게 되고 보니 바람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마실 수 있는 비가 오기를 더 기다리게 되었다. 누구나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절박한 심정으로 비를 기다렸다.

다행이 비가 오면 배의 꼭대기 층 선장실 지붕아래 처마에 그릇을 받쳐 물을 받았다. 어떤 이들은 두 손을 모아 떨어지는 빗방울을 받아 긴 혀를 늘어뜨리고 맨바닥을 핥았다. 견디다 못한 총무 안의가 물었다.
 
 “경차관님! 옷을 빗물에 적신 다음 그 옷을 짜면 많은 물을 얻을 수 있는데, 입고 있는 옷이 모두 짜디짠 바닷물에 적셔 있으니 탈입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한참만에 최부가 대답했다. 상자 속에 넣어둔 자신의 모든 옷을 가져오게 했다. 상복을 입으면서 벗어두었던 평상복과 나라님을 배알할 때 입을 조복까지 가져왔다. 제주에서 근무할 때 입었던 관복도 가져왔다. 아껴둔 속옷까지 빗속에 널었다.
 
옷이 젖어 망쳐버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먼저 물을 얻어 마시고 목숨을 구해서 사는 것이 더 급한 일이다. 옷은 바닷물을 먹지 않았으니 까슬까슬하고 깨끗했다.
 
 “비에 젖게 한 후 짜도록 하라.”
 
빗물에 젖은 옷을 짰다. 마실 수 있는 물을 세 병이나 저장할 수 있었다. 현명한 처신이다. 극적인 위기 탈출의 순간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 구하고자하면 반드시 얻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어떤 날의 비에는 붉은 흙가루가 날라 와서 빗물을 흐려놓아 받아봤자 마실 수 없는 물이 되고 만다. 그런 날은 빗물을 받는 그릇을 얼른 치워야 했다. 배가 중국본토에 가까이 갈수록 흙탕비가 더 많이 쏟아졌다. 황사 때문이다.

이름 모를 섬에 도착 모처럼 배를 불리고

  흙먼지 바람이 없는 날 받은 물은 병에 담는다. 유일한 식수인 병 속의 물은 김중에게 명하여 골고루 나누어 먹도록 했다.
 
 오늘은 날이 몹시 흐렸다. 이른 새벽이라 매운바람이 쌀쌀하고 한기가 몸을 감싼다. 어느 섬에 도착했는데 깎아지른 듯한 돌 벽이 높이 솟아 고개를 쳐들고 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두렵고 무서웠다.
 
저녁 무렵이 되자 수정호는 전혀 다른 섬에 도착했다. 처음에 보았던 섬보다 더 큰 섬이다. 그러나 이 섬도 역시 깎아지른 절벽 때문에 높이 솟아있어서 배를 댈 수가 없었다. 여러 명이 배를 섬에 대보려했지만 불가능했다.

  고이복과 김석귀가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줄을 잡아당겨 가면서 배를 섬의 가장 자리까지 끌고 갔다. 다행이 해안가의 작은 나무에 줄을 묶고 배를 댈 수 있었다. 소나무 사이에서 물을 발견한 그들이 큰소리로 불렀다.
 
  “물이다 물.”
  “빨리 빨리 오시오. 여기 물이 있소.”

  “물을 마시자.”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물은 너무도 깨끗하고 맑았다. 산 속에서부터 흘러온 물은 잡티 한점 없이 순수했다. 배에서 뛰어내린 사람들이 바짓가랑이를 걷어올리고 첨벙거리며 물이 있다는 곳으로 미친 듯 달려들었다.
 
“풍덩풍덩.”
 
 튀어 오른 바다 물이 옷을 직시든 말든 먹을 물이 있다는 말에 기뻐 날뛰며 쫒아 간 것이다. 너무 좋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식수가 없어서 당해왔던 고통을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물을 본 그들은 오랜만에 몸도 씻고 실컷 마셨다. 앞이 보이고 하늘이 열린 듯 밝았다. 세상을 몽땅 차지한 듯 저절로 배가 불러왔다. 빈 병에 가득 담은 물은 배로 짊어지고 돌아갔다.
 
아흐레만에 밥을 지어볼 판이다. 여태까지 굶주린 배를 체울 양으로 벌써부터 허리띠를 풀어 제치고 풍선처럼 헛배를 불려 크게 해서 앞으로 내밀며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9일 동안이나 먹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어서 기력이 쇄잔 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에서 포식을 하는 것은 극히 위험한 처사다. 보나마나 포식을 할 텐데 설사를 하거나 배탈이 날것은 자명했다. 여러 날을 굶은 다음 갑자기 밥을 먹는 것은 소화불량에 걸린다.
 
“그만 하라. 밥을 짓지 말라!”
 
지혜로서 그들 일행을 무사히 지켜내는 일은 번번이 최부의 몫이다. 그는 큰소리로 말했다.
 
“굶주림이 최악에 이르러 오장육부가 등짝에 달라 붙어버렸는데 갑자기 배부르게 먹으면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천천히 먹으면서 소화력을 회복시켜야 한다. 오늘은 미음을 끓여 먹도록 하자.”
 
최부의 간곡한 당부에 밥하는 것은 금하고 대신 죽 같은 미음을 끓여 배불리 먹었다. 배가 부르자 부러울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고 넉넉하기만 했다
   
 “곡간에서 인심 난다.”
 
 잠시 동안 배를 묶어두었지만 오랫동안 그럴 수는 없었다. 줄이 약하고 해안으로 몰아치는 파도가 높아지면 배가 출렁거리며 암초에 부딪쳐 깨지거나 석벽에 닿아 난파되고 만다. 시장 끼를 털어 내고 허기를 매웠지만 바람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두운 밤인데도 배를 띄워 운항을 계속해야만 했다.

-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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