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연재 | 소설 표해록
청산 윤영근의 소설표해록-6.무정자로 태어난 여인국(37) 배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나주투데이  |  minjukkr@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280호] 승인 2007.11.19  00:00:0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아래층 선실에 누워있던 자들도 갈매를 보았는지 함성이 터졌다.
 
 "와 갈매기다."
 
 수정호위로 쌍을 이루며 날아다니는 갈매기가 여러 마리였다. 어쩌면 부근에 육지가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가슴을 부풀게 한다. 현재의 위치로 보아 육지와는 너무 멀리 떨어진 대양이라 약간의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행여 섬에 가까워진 것이 아닐까 조바심이 났다.
 
 설마하니 죽지는 않을 것이란 기대가 구겨진 얼굴을 펴준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어두운 터널을 지나 밝은 햇빛을 찾은 듯 파릇한 생기가 돈다.

가라앉았던 배 안의 분위기가 살아나고 활기를 띠었다. 한낮이 되어 남쪽을 바라보니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희미하지만 산처럼 보이는 것이 있었다. 동남쪽으로 밀린 배를 감안해서 계산해본다면 지금 보이는 산이 어디인지 알 수 있다.
 
 최부는 서둘러 선장과 사무장을 선장실로 불렀다. 동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기 저 산이 어디에 속한 산이요?"  "글쎄요. 아마도…"

  자신이 없는지 입을 다물어버린 선장을 대신해서 사무장이 대답했다.
 
"오키나와 군도에 속하는 섬 같군요."
 
뱃사람 모두가 그곳으로 배를 대려고 했다. 오키나와고 중국이고 가릴 처지가 안 된다. 최우선적으로 사람이 먼저 살아야만 한다. 굶주린 배에는 먹을 것이 급했다. 서너 시간만 가면 섬에 닿을 듯하다.

이대로 조금만 참으면 육지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갑자기 배 안이 소란해지며 부산하게 움직이는가 했더니 웬걸 이일을 어쩌지? 모든 이들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서북풍이 불어오더니 지금까지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 선 배가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아-아, 이럴 수가 있을까? 조금씩 바람이 새지면서 배에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어∼어, 배가 돌아간다." 왔던 곳으로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180도 회전한 배가 가느다란 희망을 절망으로 뒤바뀌어 버리는 비극적인 순간이었다. 밤이 되자 강풍이 태풍으로 변하면서 배는 미친 듯이 달렸다. 도대체 감을 잡을 수 없는 바람이 원망스러웠다.

뱃사람들의 인내에도 한계점에 이른 것 같다. 여기저기서 불평불만이 쏟아지고 살짝만 건드려도 터질 것 같은 분위기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다 말다툼을 계속한다. 어제와는 다르게 동풍의 연속이다.

배는 서쪽으로 밀리면서 정처 없는 항진을 계속한다. 오후가 되자 바다 색깔이 제주근해의 색과 같아졌다. 청색으로 변하면서 흐림이 없고 맑게 보이는 것으로 보아 제주도주변의 가까운 해역을 맴도는 샘이라 하겠다.
 
제주에서 출발할 때 경황 중에 그만 거룻배까지 잃어버렸다. 실제로는 어디서 거룻배가 떨어져 나간지도 모른다. 거룻배에는 소중한 식수를 실었는데 선원들의 불찰과 관심부족으로 배까지 몽땅 잃어버렸으니 그 날 그 날의 세수는 물론 단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못했다. 물론 끼니를 이을 수도 없었다. 어이없는 낭패다.

 막걸리로 갈증을 달래보지만

  수정호에는 배 안에 차 오르는 물을 퍼낼 그릇도 하나 없는데 물그릇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식수가 단한 방울도 없는 상태다. 김치를 담지 못했고 밥 한 그릇도 삶아 보지 못했다. 여태껏 굶어온 배에서는 쪼르륵 소리마저 끊어지고 말았다.
 
여드레가 될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 최부 일행은 아사지경에 이르렀다. 극에 다다른 참을성은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다. 스스로 쓰러지기 직전이다. 이 무렵 발 빠른 권송이 다가와 말했다.
 
"누군가 잘 익은 밀감과 막걸리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어른께서 모두 거두어들여 보관하고 있으면서 응급처치로만 이용하면 시급한 기갈은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별도포에서 떠날 때 제주향교의 젊은 학생들이 배에 올려준 꾸러미들이 생각났던 것이다. 오늘날 밀감은 귤이라고 불리며 '대학나무'로 제주인의 사랑을 받는 나무인데 한 그루 귤나무에 열린 열매만 따도 대학생 학비가 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제주의 특산인 귤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황감이나 유감(乳柑)으로 수분과 당분이 많아 배 안에서 먹기로는 최고인 과일이라고 했다.
 
최부는 최거이산과 권송을 시켜 배 안의 모든 짐 꾸러미를 뒤져 귤과 술을 찾아내도록 했다. 노랗게 잘 익은 귤 50여 개와 술 두 동이가 나왔다.
 
술을 한 모금만 먹어도 급한 갈증을 가시게 할 수 있을 터이지만 상복을 입은 최부로서는 언감생심이다. 상자(喪子)의 몸으로 술은 먹어서는 안 된다. 손효자가 나서서 골고루 나눴다.
 
"아무리 불구대천지 원수라 하더라도 같은 배를 탔으니 모두가 한 몸이고 한마음이다. 더욱이 우리 모두는 한나라 한 지방 사람들로 같은 골육의 친근한 사람들이 아니더냐.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할 것이다."
 
물을 마시지 못해 갈증이 극에 달한 시점에서 막걸리 한 방울은 그야말로 생명수나 마찬가지였다. 식수 고갈로 물을 마시지 못한 자들 중에 성질이 대체로 급한 사람들은 침이 말라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술을 물처럼 골고루 마시도록 하라."
 
 최부의 말이 떨어지자 손효자는 우선 급한 사람부터 찾아다니며 술을 떠 먹였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자들은 목구멍을 억지로 벌려 한 방울씩 입안에 떠 넣었다.

입술이 타고 목이 말라 부르튼 자부터 마시게 했다. 입술이 부르트고 딱지가 진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말도 하지 못한다. 많이 부족했지만 급한 대로 위급한 갈증은 해소할 수 있었다.
 
불타 가는 혀만 적신 꼴이다. 하루가 지나자 힘들게 모아둔 빗물도 떨어졌다. 배고프고 목마른 갈증은 풀어갈 방법이 없었다. 짜디짠 바닷물은 식수로 쓸 수 없다.

만약 바닷물을 마시면 더 갈증을 불러내고 결국에는 죽게 되기 때문에 마실 수 없는 것이다.

 - 다음호에 계속

나주투데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더불어민주당 나주·화순 국회의원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
2
학교 공간을 생각한다
3
공무원들에게 고향사랑기부금 강요한 나주시
4
30. 봉황면 철야마을
5
직원들과 소통이 필요한 ‘더 큰 나주 아카데미’
6
아무런 변화 없는 민선 8기 나주시
7
나주시 총무과장은 민원 해결사(?)
8
뇌물 사회학
9
영산동 관내 5개 통 통장들 뿔났다
10
나주시 인사발령 2023.9.25.자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전남 나주시 빛가람로 685 비전타워 206호 나주투데이  |  대표전화 : 061)334-1102~3  |  팩스 : 061)334-1104
등록번호 : 전남 다00334   |  발행인 : 윤창화  |  편집인 : 이철웅  |  e-mail : njt2001@hanmail.net
Copyright © 2013 나주투데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