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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호에서 조금 더 내려가 우회전을 하면 명옥헌으로 가는 안내 표지판이 나온다. 10분쯤 달려가자 명옥헌이 있는 후산 마을에 도착했다.
후산 마을은 단감마을로 유명하다. 집집마다 감나무가 서 있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친환경적으로 농사를 짓는다.
농약을 쓰지 않은
단감생산으로 생태를 살린 농업경영 때문에 인기리에 판매된다고 한다. 더구나 수확기에는 감을 따기만 할 뿐 팔지는 않는다고 한다. 거대한 냉동
창고를 지어놓고 시세가 맞는 비싼 가격에 출하한다.
정면으로 보이는 안산을 넘어 희미하게 보이는 조산이 바위산으로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모습이다. 화체봉에서 직접 내려다보이는 마을을, 화재로부터 지키기 위한 비보풍수로 기가 센 화마를 가려주기 위해 정성 드려 심은 마을을 지켜주는
나무들이다.
명곡 오희도(1583∼1623) 선생은 모든 학문에 두루 뛰어났으며 특히 풍수지리학에는 대가의 반열에 오른 지관이었으니 명
풍수가 살아온 마을답게 오래된 나무를 심어 마을의 집들을 화재로부터 완전하게 지켜왔다고 하겠다. 마을 입구에 있는 커다란 연못은 긴급한 화재
진압 시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웬만한 양반 촌에서는 둠벙이나 연못을 큼직하게 만들어 두곤 했던 것이다.
후산 마을은 감나무뿐이다. 뒷산 언덕도 자라던 소나무를 베어내고 감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마을연못 곁에서 감나무 전정을 하고 있던
오영희(명곡 선생의 15대 후손, (061)382-3448)씨가 쓰는 전정 칼 가위는 손잡이가 길고 날이 있는 곳은 스프링으로 되어있어서 굳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필요가 없는 전정가위다. 명옥헌에 대하여 소상히 알고 있는 그는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서향인 마을은 좌우로 벌어진
능선 따라 자리 잡아 과수목이 자라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망재, 주춧돌 4개만 쓸쓸히 남아
바람소리도 비켜가기 때문에 매우 조용했다. 마을 안길에 도착했다. 좌측으로 반듯하게 올라가면 은행나무가 보인다. 나주 금성관 뒤뜰에 서있는
은행나무보다는 조금 더 큰 나무다. 600년의 나이를 먹었다. 땅바닥에 떨어진 은행 알이 눈에 띄었다.
은행나무 옆에는 오희도께서 살았던
망제라는 집이 있었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주춧돌 4개만 쓸쓸히 남아 지나간 역사를 몸으로 증명해 주고 있었다.
망재는
1940년경에 소실되었는데 동쪽마당에는 쓰다버린 당시의 절구통에 반쯤 찬 빗물이 나그네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효심이 지극했던 명곡 오희도를
‘명곡효자’라고도 부른다.
호가 명곡인 그는 사마시에 합격했으나 이곳에 은거하며 학문에 정진했다. 노모를 항상 곁에서 보살폈는데 효심으로 말하면 옛날의 증자와
같다하여 그를 일컬어 명곡효자라고도 불렀다. 망재에서 그가 쓴 시를 보면 그의 길은 학문과 함께 고고한 인품을 엿볼 수 있다.
나에게 이 망재가 있으니
나의 문정(門定)이라고 하기 마땅하다.
이 망재에 거처하면서 세상을 잊고
다시 형체까지
잊었다네.
세상을 잊었는데
나라에 출세를 잊지 않을 것인가
형체를 잊었는데
마음까지 잊지 않을 손가
마음속에
무엇이 있겠는가?
일생동안 싸움터에 나간 것처럼
조심하여 얇은 얼음을 밟은 듯 깊은
못에 가까이 간 것 같이할
뿐이다.
마을을 지켜오는 오영희씨는 후산 마을의 단감자랑에 열을 올렸다. 최근에는 생태보존 마을로 지정되었고 황토 땅에서 자란 단감이라 그 맛이
꿀맛처럼 좋다고 하면서 냉동 창고의 감을 꺼내왔다.
“옛수, 하나 잡셔보슈?”
감을 받아든 나는 먹기 시작했다. 시원한 감은 나무에서
방금 따온 것처럼 싱싱하고 달콤해서 물이 많아 겨울철에 먹는 감 맛치고는 상급이다.
“와∼와, 맛있다.”
마을에서 동쪽으로 난
큰길을 따라가자 명옥헌이다. 명옥헌은 지도에는 나와 있지만 안내자가 없어서 찾는 이들이 적고 대신 관심이 있는 자들만이 찾아온다고 한다.
지금에야 원형의 훼손이 심하지만 소쇄원에 비길만한 조선시대의 원림 터이다.
소쇄원이 깊숙한 계곡 속에 은둔의 자세로 숨어들었다면 명옥헌은 마을 언덕전망이 터진 널찍한 곳에 자리 잡아 뽐내는 격이다. 높은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찾아든 오희도는 이곳에서 유유자적하며 침거할 뜻으로 만들었다. 자연을 가급적 상하지 않게 조성한 원림이 명옥헌이라 하겠다.
/ 나주 중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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