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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목사 이야기 24- 이몽필
신광재 기자  |  sjs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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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호] 승인 2006.04.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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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량과 회복 주장하다 나주목사로 좌천

 홍문관 응교로 재직하고 있던 이몽필(李夢弼)이 1538년 현량과(賢良科) 회복을 주장하다 당시 조정 대신들의 눈에 거슬려 나주목사로 좌천되었다. 현량과 회복을 주장하다 외방으로 밀려 나주로 내려왔지만 이몽필은 나주에서 덕행을 베풀었다.
 

이몽필이 주장했던 현량과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조선 중종 때 조광조의 건의에 따라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인재를 천거해 관리로 등용하는 현량과(賢良科)가 시행되었다. 과거시행 과정에서 여러 가지 폐단이 드러나자 기존 제도로는 참다운 인재 선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재행(才行)을 겸비한 숨은 인재를 발탁해 관리로 등용하고자 현량과를 실시한 것이다.
 

애초 현량과 실시는 신진사림파와 대립하고 있던 훈구세력에는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들은 이 제도가 전통적인 과거 법규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사림파 세력 강화에 목적이 있다고 보았다. 때문에 인재 천거에 공정을 기할 수 없다며 극력 반대하고 나섰다.
 

결국 현량과는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을 격화시켜 위훈삭제(僞勳削除) 문제와 더불어 기묘사화를 유발시킨 원인이 되었다. 결국 조광조 등 사림파가 실각하자 현량과는 폐지되고 급제자의 자격마저 박탈되었다. 그 뒤 인종 말년에 급제자의 자격은 잠시 복구되었으나 명종이 즉위하자 다시 박탈되었고, 1568년(선조 1) 10월에 이르러 완전히 회복되었다.

 현량과는 당시 시대적 성격과 급제자의 신분을 관련시켜볼 때, 지치(至治) 실현을 위한 사림파 세력 보강의 비상 대책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백성 부세와 요역 감면, 중중에게 특별한 상 받아

 중종 34년 1539년 10월26일 나주목사로 내려온 지 1년도 안 돼 이몽필은 나주 백성들을 잘 다스려 중종으로부터 특별히 상을 받게 된다. 전라도 관찰사 윤개(尹漑)가 서장을 보내 전주부윤(全州府尹) 이언적(李彦迪)과 나주목사 이몽필에게 상을 내려야 한다는 서장(書狀)을 올렸다.
관찰사 윤개가 올린 서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주부윤 이언적은 정치를 청렴하고 간략하게하고 직책을 각근(恪謹)이 받들어 부세를 적게하고 요역을 가볍게 하며 백성들이 아전들을 보기도 힘들게 해서 온 경내가 편안하다. 나주목사 이몽필은 간략하게 관직에 임하고 일을 번거롭게 하지 않으며 부지런히 백성을 어여삐 여기고 불쌍히 여겨 부세와 요역을 가볍게 하므로 백성들이 그 혜택을 입고 있습니다"

서장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보면 이몽필이 나주목사로 내려와 위엄을 부리지 않고 일을 번거롭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백성들의 부세와 요역을 간략히 해 목사로 내려온 지 몇 달 사이에 교화가 널리 베풀어져 나주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했다는 내용이다. 

이날 중종은 이언적은 이미 상소로 인하여 앞서 상을 내려주었다고 말한 뒤 이몽필에게는 가자(加資)해 주도록 명하였다.

직무수행 청렴하고 근면한 목사로 칭송
 
이몽필은 명종 28년 2월24일 숨졌다. 그에 대해 실록에서는 "사람됨이 간소(簡素)하여 번잡하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직무를 이행함에 청렴하고 근면하여 훌륭하다는 칭찬이 많았다"라고 그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몽필은 거침없이 직언(直言)을 한 인물이었다. 그가 나주목사로 내려오기 1년 전 1537년 장령으로 있을 때 여러 관원과 더불어 당시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힘을 가진 외척 윤원로와 윤원형, 김안로에게 죄줄 것을 청하기도 했었다. 시독관(侍讀官)으로 있을 때에는 첨사(僉使)와 만호(萬戶) 등이 백성들에게 침탈한 재물을 김안로에게 뇌물로 받치고 있다며  이러한 풍습을 폐단 할 것을 주장하였다.

명종 14년인 1599년 대사간이 된 그는 열 조목의 나라 다스리는 도리를 상소했다. 그는 직무를 이행함에 청렴하고 근면하여 높은 평판과 함께 청백리에 뽑히고 있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燃藜室記述, 朝鮮前期畿湖士林派硏究(李秉烋, 一潮閣, 1984), 賢良科硏究(李秉烋, 啓明史學 1, 1967), 賢良科 及第者의 性分(李秉烋, 大丘史學 12·13合輯,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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