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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의 나주이야기-29.눈물이 턱에 교차하지 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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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호] 승인 2007.10.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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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해년 12월 9일 중전께서 승하하시니 위아래가 제계하고 향교의 뜰에서 거애하다
(乙亥十二月初九日 中殿昇遐 上下齋擧哀黌庭)

邦運方開泰 나라의 운세가 바야흐로 태평인데
天心未可知 하늘의 마음은 알 수가 없구나
喪慈徑幾歲 자친을 잃은지 몇 해가 지났는가
失母第三朞 모친을 잃은지 세 해가 돌았네
凶極臣民痛 흉사가 극에 달하니 신민들이 슬퍼하고
無情草木悲 무정한 초목도 슬퍼하는구나
諸生向北哭 유생들이 북쪽을 향하여 곡을 하는데
誰不涕交頤 누구라서 눈물이 턱에 교차하지 않으리 ?

 이 시는 372년전 나주향교에서 행해졌던 일들을 시로 남긴 것입니다. 시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중전이 승하하시자 각 고을마다 분향소를 설치하고 분향하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당시의 임금은 인조였습니다. 시에서 말하는 중전은 인열왕후 한씨로 병으로 정확하게 12월 9일 산실청에서 신시(15~17)에 승하하였습니다. 12월 17일에 시호를 인열이라 하고 능호는 장릉입니다. 현재 장릉은 파주시에 있습니다. 
 
   
▲ 김종순 고대문화T/F팀장
조선시대에 이렇게 나라에 큰일이 있으면 향교나 객사(금성관)에 특별한 시설을 설치하고 행사를 거행하였는데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한 시입니다. 당시 분향소를 간 시서선생의 마음이 잘드러나고 있습니다. 물론 시서 선생 뿐만 아니라 이곳을 다녀간 유생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모두들 북쪽을 향해 곡을 하는데 그냥하는 것이 아니라 눈믈을 흘리면서 하고 있습니다. 그럼 전국 제일의 규모와 역사를 자랑하는 나주향교로 떠나보겠습니다.
 
나주 향교는 고려 성종6년(987) 8월 12목에 향교를 설치할 때 창건되어 조선 태조 7년(1398)에 중수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나주향교의 위치가 어딘인지 확인할 수 없습니다. 전해오기를 고려말 조선초에 파주염씨 낙남조(廉順恭)가 살던 땅을 향교부지로 양보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어 지금의 위치는 태조7년(1397)에 향교를 다시 지을 때 정해진 위치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후 여러 차례 중건 중수를 거쳤을 것으로 추측되며 이는 대성전의 건축양식이 조선중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헌종 5년(1839)과 고종 10년(1869)에 크게 중수하였으며 이후에도 근래까지 수차 중수하였으며 최근에 동재 서재 11칸을 복원하여 장엄하기가 이를데 없습니다. 특히 성종11년(1480)에는 교생 9인이 동시에 과거에 급제하는 경사가 있어 당시 교수로 있던 박성건이 금성별곡을 짓기도 하였습니다.
 
현재 향교의 규모는 명륜당 대성전 동․서무 동․서재 내신문 외신문 교직사 총효관 보전각 하마비 등이 있으나 창건 때의 계성사 사마재 충복사 수복청 등의 건물은 1958년 훼철 되었습니다. 배치는 명륜당 대성전 내신문으로 이어진 남북자오선 축이 전묘후학이며 거의 경사가 없는 평지 건축이다. 동․서재,동․서무는 좌우 대칭이다. 다른 일반적인 전학후묘의 향교와 달리 주문인 외신문과 내신문이 문묘부에 이르는 과정적 공간을 형성하고 있음은 특이합니다. 또 명륜당 좌측에는 사각형 연못이 놓여 있고 대성전 우측에는 향교목인 은행나무가 한그루 있는데 태조 이성계가 심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대성전은 현재 보물 제394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익공형태의 소 혀모양의 첨차를 가진 주심포양식의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명륜당은 건물 양측에 익랑을 갖고 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나주향교는 다른 향교에서는 볼 수 없는 충복사란 사우가 있었습니다.

선조30년(1597) 정유재란때 당시 대성전의 수복이었던 김애남(金愛男)이 성묘(聖廟)의 위판을 안전하게 금성산으로 옮겼다가 조용해지자 다시 대성전에 모신 공을 세우자 조정에서 김애남을 복호(復戶)시키고 그가 죽자 충복사란 사우를 건립하여 제사를 지내다 사우가 오래되어 1922년 폐허되자 1924년 2월 유허비를 세워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충복사 유허비는 향교 비석군의 맨 우측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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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전은 현재 보물 제394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익공형태의 소 혀모양의 첨차를 가진 주심포양식의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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