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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사에서 국외여행인솔자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태국으로의 첫 출장에 가슴이 설레었으니 말이다. 때는 한여름 바캉스
시즌이었고, 그래서 휴가코스로 동남아시아가 각광 받던 시절이었다. 누구에게나 그리고 어떤 경우에서든지‘처음’접하는 상황이 색다른 느낌을
가져다준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나 역시 첫 외국출장이었기에 기대와 불안이 교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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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선희
교수 |
| 다른 신참내기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타이항공에 탑승했다. 여섯 시간 정도의 비행 끝에 드디어 목적지인
태국 돈무앙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위탁수화물 회수 후 세관통과까지 무사히 마쳤고, 그리고 공항에 마중 나온 태국 현지인 가이드를 만날 때까지
더할 나위 없이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글쎄 공항에서 미팅한 이 태국 현지인 가이드가 우리 그룹을 향해 내뱉는 첫마디는‘안녕하세요’가 아니라,‘빨리빨리’이었다.
순간‘태국어도 한국어와 발음이 비슷한 단어가 있구나’하는 생각을 잠시 했을 뿐 마음에 두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날 관광을 마치고 버스에 오르는 우리 그룹을 보며 태국인 버스기사가‘빨리빨리’를 내뱉는 것이 아닌가. 사실 어제는 반신반의했지만
공항에 마중 나온 태국 현지인이 했던 말도 태국어가 아니라, 한국어‘빨리빨리’였던 것이다. 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태국의 입국심사대가 분주했고
그래서 입국심사에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현지 가이드를 늦게 미팅했기 때문에 ‘빨리빨리’ 이동하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다음 얘기도 많은 사람이 공감할 것이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일반적으로 하루 세 끼니의 식사 중 한 끼니는 현지식이 제공된다. 모든 음식이 한꺼번에 차려져 있는 상태에서 식사를
하게 되는 한식과는 다른 상차림이므로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다. 즉, 일반적으로 식사가 전식, 본식, 후식의 세 코스로 제공된다. 예를 들어,
이태리의 경우라면 전식에는 스파게티가 그리고 본식에 양고기나 송아지고기 등이, 마지막으로 후식에는 과일이나 커피가 제공된다. 식사가 이처럼
코스별로 진행되므로 서비스 속도를 아무리 빠르게 하더라도 전식과 본식 사이에 약간의 시간 간격이 발생한다.
이 때에 음식이 조금이라도 늦게 서브되면, 가이드를 붙잡고 음식이 늦게 서브된다며 불평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그들에겐 기다림의
여유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국인들의 이런 모습에 처음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어리둥절했던 이태리 종사원들도 이제는 과히 놀라지 않는 눈치이다. 여러 번의 유사한
경험을 통해 그들도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를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의 기본적인 식사시간이 2시간이라는 것을 설명해도, 그런 설명을 ‘말도 안 되는 변명’으로 일축하고 다시 ‘빨리빨리’를 외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명언이 이처럼 딱 들어맞는 경우가 또 있을까.
물론 현재 한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패키지여행 상품은 빠듯한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빨리빨리’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실제로
패키지여행의 일정을 진행하면서 나 역시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다닌 적이 많다. 가끔은 빨리 관광일정을 끝내고 숙소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에서
그랬던 적도 있지만, 대부분 짜여진 일정을 정해진 시간 내에 진행하기 위해서 바삐 움직여야 했던 경우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본 건데, 그렇게 바쁘게 재촉하고 서두르지 않아도 결국 시간 내에 모든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서두르면서
관광을 했던 것은 시간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빨리빨리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바로 그것 때문이었던 것 같다.
혹자는 ‘빨리빨리’를 외칠 수밖에 없는 이유가 타이트한 일정 때문이라고 비판의 화살을 여행사로 돌리기도 한다. 물론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건 그저 핑계일 뿐이다. 여유로움은 나 자신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유롭게 행동하라는 것이지 결코 느리게
행동하라는 뜻은 아니다.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봇물처럼 국외여행을 나선 이들이 식사시간까지 아껴(?)가면서 과연 무엇을 얼마나 보고, 느끼고 올까 하는 의문이
든다. 사실 우리가 발 내딛는 곳곳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룩한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와 삶이 배여 있고, 관광이란 그러한 삶과 문화를 배우는
것인데 주마간산 식으로 ‘빨리빨리’를 외치며 대충 훑어본 우리로선 그들의 참모습을 느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세상을 보는 지혜」의 한 구절에, 지금까지 목소리 높였던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인용하였다.
“조급하게 살지 마라. 매사를 적당히 나눌 줄 알면 그것을 즐길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인생보다 행운이 먼저 끝난다. 그들은 그
행운을 즐기기보다는 그것을 망친다. 그리고 나중에 행운이 멀리 떠난 후에야 아쉬워한다. 그들은 인생의 기쁨을 앞질러가 벌써 미래를 다
갉아먹는다. 그들은 성급하게 모든 것을 쉽게 끝장 내 버린다.…(중략)여행은 천천히, 일은 빨리 빨리."
김선희 동신대 관광학과교수
3675@d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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