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의 대가 하서 김인후(1510∼1560)는 어려서부터 성리학으로 우주, 인간, 윤리의 근본문제에 대하여 깊이 생각했다. 태인에 사는 이항과 여러 해를 두고 서로 다른 생각들을 논쟁했다. 김인후의 철학 사상은 큰 산맥을 이루고 우뚝 솟은 산이라고 할 수 있다. 김인후는 해와 달이 뜨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번갈아 바뀌어 생명이 자라고 죽는 것을 자세히 살피고 그 이치를 글로 옮겼다.
그는 24세에 성균관에서 퇴계 이황과 함께 성리학을 공부하고 31세에 과거시험에 합격한다. 인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세자시절에는 스승이 되어 글을 가르치기도 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인종이 세상을 뜨자 병을 이유로 고향 땅 장성으로 내려와 두 번 다시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다. 그는 이름난 학자들과 어울려 공부하고 성리학을 배우러온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이기 일원론의 주창자였다.

‘도학정신’ 호남유학 밑바탕

사람은 본디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몸을 움직이는 기운이 사람마다 달라서 악한 기운이 사람을 나쁘게 한다고 했다. 우리들이 항상 착한 마음을 찾기 위해서 상대를 존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인후가 보여준 도학 정신과 곧은 의리, 그리고 훌륭한 문학은 호남유학을 지켜주는 밑바탕이 되었다.
필암서원은 필봉을 진산으로 평지에 자리했다. 길옆의 홍살문이 소담하다. 이곳으로부터는 신성한 공간으로 삿된 것들의 출입을 막아준다. 20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보호수로 마당을 지키고 있었다. 우산을 펼친 듯한 잘생긴 모습이 우람하고 듬직하다. 높이가 19m나 되고 가슴둘레가 250㎝로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반갑게 맞이해 준다. 입구의 확연루는 이층으로 된 문루로서 일층은 통행 문이고 이층은 마루를 깔았다. 편액 글씨는 우암 송시열이 쓴 글씨라고 한다. 마루에 올라서자 거대한 대들보가 굽은 목재를 그대로 자연스럽게 사용했다. 네 귀퉁이에 조각된 귀공포는 고졸한 맛이 넘쳤다.
두 귀퉁이의 용머리 조각은 최근에 칠한 용이라서 금방이라도 꿈틀거리며 하늘로 날아 오를듯한 모습이다. 서원 앞으로 흐르는 계곡물이 들판을 휘돌아 흐르며 맥동 쪽에서 나오는 물과 합해져 관동천이 되어 황룡강으로 찾아 든다. 넉넉한 물은 숱한 어려움의 국난을 용케 피해오며 필암서원을 지켜왔다. 다행이 주변에는 화체봉이 없었다. 화마를 피해온 서원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지세 상으로는 당연한 귀결이다. 확연루 이층에서 내려다보면 우측으로 또 하나의 문필봉을 볼 수 있다. 그래선지 모르지만 필암서원에서 공부한 자들은 높은 학문을 쌓고 문재가 뛰어났다고 한다.
정절당은 본격적으로 학문을 탐구하는 공간으로 넓은 강당이다. 양쪽 끝에는 작은 방이 달려 있어서 언제든지 연구하고 공부할 수 있게 했다. 우암 송시열이 쓴 신도비문에서 정절이라는 당호를 따왔으며 동춘당 송준길의 글씨로 편액 했다. 지금도 겨울방학을 이용한 한자공부가 이곳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쉬지 않고 흐르는 강물처럼 학문의 맥은 연연히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우동사는 김인후 선생의 위폐를 모신 제사공간으로 주자의 글씨를 집자해서 쓴 글씨다. 장경각은 인종이 하사한 묵죽도의 판각을 보관한 곳으로 편액을 정조대왕이 직접 쓰신 어필이라고 한다. 필암서원은 옛 선인들의 뛰어난 글씨를 감상할 수 있는 서예 전시장인 셈이다.
필암서원은 입구에서부터 일자로 길게 늘어선 건물들이 격식을 갖추고 엄격한 틀 속에 권위를 지키며 서원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선현에 대한 제향의 공간과 교육 및 학문수련 공간, 그밖에 장서공간이나 지원시설 공간 등이 하나의 축에 맞추어 기본구조를 모두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서원이다.
몇 해 전에 왔을 때 보다 넓혀진 주차장으로 보아 찾는 이들이 많아진 듯하다. 확연루 옆으로 양쪽에는 두 그루의 백송이 심어져 있었다. 30년생 백송은 두 임금 섬기기를 마다하며 벼슬길에 오르지 않은 하서 선생의 지조 있는 정절과 어울릴 듯 잘 키워야할 것이다.

나주 중앙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