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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윤영근의 소설표해록 - 5. 끝없는 표해(漂海)32. 위기의 순간은 넘어가고
신광재 기자  |  sjs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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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호] 승인 2007.09.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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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태위태하던 수정호는 아직 유유하다. 그런 대로 잘 버티고 있는 것이다. 요동치며 흔들릴 때는 당장 뒤 짚어질 것처럼 무서웠지만 질긴 것이 사람의 명(命)이다. 최부는 큰소리로 총무에게 물었다.
 
 "배 안에 물은 얼마나 차 올랐는가?"
 
 기세 좋은 안의가 배의 밑창이 보이는 선실로 들어간 다음 한참 후에 올라오더니 대답했다.

  "물이 무릎까지 차 올랐습니다. 당장 퍼내야 갰습니다."

  새는 물에 관심이 없어진 짧은 시간에 상당한 양의 물이 찼던 것이다. 뱃바닥의 고인 물이 있는 밑창으로 내려갔다. 배 위로 뜀뛰기하듯 넘어온 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큰 파도에 흔들리는 배이지만 워낙 튼튼하게 지어진 배라서 쉽사리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다. 죽기를 각오하고 물을 퍼라. 만약에 물을 퍼내지 못하면 바다 속에 가라앉아 죽고 말 것이다."

  선언하듯 외치는 최부의 고함소리에 모두가 물을 퍼내려 했지만 물을 퍼 낼만한 그릇이 잡히지 않았다. 최거이산은 물을 퍼낼 그릇을 찾으려고 배안 여기저기를 한참동안 돌아다녔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어제 밤에 집체만한 파도가 휩쓸고 지나가 버린 후였던 것이다.
 
 답답해진 안의가 큰칼을 들고 나왔다. 창고에 걸린 북을 보자 한쪽 면을 찢어 냈다. 가죽 찢어지는 소리가 북북 나더니 그럴듯한 물그릇이 되었다.

매구 북이라고 불리는 소고도 찾아냈다. 한쪽 면을 풀어내고 물그릇으로 만들었다. 둥근바가지 같은 그릇을 여러 개 만들었더니 서로가 하나씩 차지하고 물이 고여 있는 선실바닥으로 들어갔다.
 
솜씨 좋게 물그릇을 만들어내자 최거이산과 이효지, 권송, 도종, 현산 등이 있는 힘을 다해 물을 퍼냈다.

가죽을 대어 만들어진 물바가지는 물을 머금자 탱탱하게 팽창해지면서 더 단단해져 물을 퍼내기에 이상적이다. 한사람이 퍼내다 지치면 재빠르게 교대해서 땀을 흘리며 기운껏 퍼냈다. 물을 퍼내기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아무리 퍼내도 무릎높이 아래로는 내려갈 것 같지 않았다. 손효자, 정보, 이정, 김중 등까지 모여들어 합세하자 서서히 물이 줄어들면서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퍼내자 간신히 모두 퍼냈다.

천만다행으로 물 속으로 가라앉는 최악의 경우만은 면할 수 있었다. 배가 비록 흔들리며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점은 있었지만 위기의 순간을 무사히 넘긴 것이다.
 

이번에는 사무장을 중심으로 배가 부서진 곳을 찾아내 고쳐야 했다. 수정호의 앞부분이 떨어져 나간 곳이 눈에 들어왔다. 각목을 덧대어 임시로 못질해서 고쳤다.
 

어제 고쳤던 키가 덮쳐 오른 파도에 떠밀려 없어졌으니 이제 키만 손보면 된다. 키를 움직이는 자루를 다시 맞춰 키를 끼워야 했다.

키 자루를 움직이는 막대기와 뱃머리에 붙어있는 삼판이 꺾여져 있어서 다시 만들었다. 새로 만든 키는 대패질을 해서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었다. 바다가 조금만 잠잠해 진다면 수정호의 조정이 가능해 보였다.

수정호는 황해의 중간쯤에 이르고

  소용돌이치는 파도를 바라보던 최부는 착잡한 심정을 누르며 생각에 잠겼다. 처음 배가 나주를 향해 떠날 때 별도포에서 작별인사를 해주던 정의현감(縣監) 채윤혜(蔡允惠)가 해주던 말이 떠올랐다.
 

제주노인이 이르기를 하늘이 푸른 날 한라산 꼭대기에 올라서서 멀리 서남쪽 백사장 일대처럼 바다밖에 멀리 떨어져 있는 땅이 중국대륙이고 거기까지 보인다고 했다. 이 말을 지금 생각해 보니 흰모래가 아니고 눈앞에 펼쳐진 순백처럼 하얀 백해(白海)를 이른 말이라고 생각되었다.
 

'고려도경'에서 말하는 바다의 빛깔이 현재 보고있는 바다색인 하얀색과 일치한다. 그렇다면(?)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최부는 당장 선장을 불렀다. 권산은 이곳 뱃길을 귀신처럼 자세하게 알고 있는 자였던 것이다.
 
 수정호는 수정사(水精寺)라는 절에 소속된 배 이지만 절 일이 없을 때는 수시로 제주 바다나 황해에 나가 고기를 잡아 올렸던 배였다. 선장 권산은 이곳 바다의 형편을 바늘귀 꾀듯 자잘한 것까지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
 
 "선장! 지금 바다 색이 하얗지 않소?"
  "그렇습니다. 매우 하얗습니다. 이는 필시 우리들의 배가 백수양(白水洋)의 가운데에 이르렀음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배는 제주와 남중국을 연결하는 황해 남부사단항로상에 있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수정호는 현재 황해의 중간쯤에 이르렀다고 보여 집니다. 백수는 황해바다 중간에서 볼 수 있는 곳이거든요."

  뱃길의 경험과 바다색깔로 어림잡아 추정한 위치는 정확했다. 수도 없이 여러 차례 항해해 왔던 제주바다와 황해는 선장으로서는 마치 자신의 앞마당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제주 앞 바다는 짙푸른 청색의 바다다. 조금 멀리 바다로 나갈수록 색깔이 연한 청색으로 변해간다. 화산폭발로 생성된 바위섬 제주도는 물이 깊어 검은 듯 청색의 짙은 바다다.

중국해안가에 이르면 티베트 고원에서 흘러내린 황하강의 황톳물이 그대로 흘러와 황색으로 흐려서 혼탁하다. 바다밑바닥을 식별하기도 어렵게 만든다. 이렇듯 중국본토의 연안을 갈색이나 황토색으로 물들이기 때문에 쉽게 구별할 수 있는 것이다.

  황해의 중간쯤에 나오면 짙은 청색의 바다와 흙색의 황색이 서로 부딪쳐 연해지면서 바람에 쏠려 하얀색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사방이 터진 바다에서 물결을 이루며 바람에 시달리면 하얗게 변한다. 바다의 색깔만으로 대략적인 위치를 알 수 있는 것은 노련한 제주뱃사람으로서 황해바다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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