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연재 | 소설 표해록
청산 윤영근의 소설표해록 - 5. 끝없는 표해(漂海)31. 믿는 것은 하늘뿐
신광재 기자  |  sjs22@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271호] 승인 2007.09.01  00:00:0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나주 성(城)밖에 살며 최부와 함께 여태까지 움직여왔던 최거이산이  곁으로 다가왔다. 크게 소리내어 흐느적거리던 그는 와락 최부를 껴안더니 울먹이며 말했다.
 
 "경차관님! 아무리 기다려보아도 보이는 것은 망망대해와 하늘뿐인데 죽는 길밖에 따로 없군요. 원컨대 오늘 죽더라도 혼백이나마 서로 의지하게 떨어지지 맙시다."
 
 그런 말을 들은 최부도 어찌해야 좋을지 마음은 갈가리 찢어지고 흩어져 숨이 막혀온다. 일손이 잡힐 리가 없는 그는 오장이 찢어지고 하늘이 꺼진 듯 답답해지는 가슴을 억누르고만 있었다.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은 그저 무사하기만을 바랐다.
 
멍청한 듯 전전긍긍하며 천명(天命)이 다해주기를 기다릴 뿐이다. 살고 죽는 것은 하늘이 점지 할 뿐으로 바람이 순조롭거나 그렇지 않은 것도 하늘이 주재하는 것이다.

이미 체념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하늘을 쳐다보며 위대한 하늘을 믿는 길뿐이었다. 수시로 변하는 바람 때문에 어찌해야 살아날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쉬이잉, 쉬이잉…."
 
 뼈를 갉아 낼 듯한 매서운 바람이 불어댄다. 천신만고 끝에 동풍이 불어댄다. 하늘이 수정호를 살리려고 불어주는 바람이라고 믿었다.

동풍은 바람이 약하다. 뱃사람들이 원하는 바람이기도 하다. 이제 각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게 되면 하늘이 구해 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이 꺼진 짚불처럼 살아났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어느새 바람은 동풍에서 북풍으로 변했다. 허룩하지만 아직은 쓸 수 있는 키를 키잡이가 잡고 있었다. 오후인데도 검은 구름이 하늘을 가렸다. 배 안의 것들이 식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무섭게 튀어 오른 파도가 배의 꼭대기를 덮고 물 속에 가라앉았다 다시 올라올 때는 배에 찬물이 '찌지지' 흐르며 빠지는 소리가 귀신 곡하는 소리처럼 가슴을 찌르며 들려온다.

  "줄줄 철철 쏴아."
 
 제일 높은 선장실 안에까지 파도가 들쳐온다. 시야를 가려 똑바로 앞을 볼 수없게 만들었다. 격군이나 호송군 가릴 것 없이 두려움에 떨며 울고만 있다. 존귀한 생명의 끈을 놓아버린 듯하다. 힘없이 넘어져 물속으로 사라질 수정호의 최후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죽음을

최부는 더 어렵고 힘들었다. 어찌해야 좋을지 도대체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죽음을 벗어나리라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수정호의 상태는 시간이 지나갈수록 악화일로였다. 어차피 죽을 바에야 죽은 시신이라도 찾기 좋게 해주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실로 내려간 최부는 덮고 자던 이불을 꺼냈다. 홑이불을 찢어냈다. 찢어낸 광목을 둘둘 말아 몸을 동여매고 그런 몸을 선실기둥에 꽁꽁 묶었다.

설령 배가 뒤집어지더라도 죽은 몸뚱이는 그대로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한참이 지난 후였다. 경차관을 부르면서 찾아다니는 사람들의 발자국소리가 들리더니 막금이와 최거이산이 먼저 들어왔다.
 
 "경차관님, 이게 웬일이세요? 함께 죽읍시다."
  "죽어서라도 함께 하겠습니다."
 
 뒤늦게 찾아온 안의가 최부의 몸을 어루만지며 큰소리로 울었다.
 
 "흐흐 윽윽."
 
 너무 힘들고 어려워 죽기를 각오한 최부였지만 이 또한 맘대로 되질 않았다. 그들의 손에 의해 다시 풀린 최부는 선장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한낮의 해가 구름에 가려 어둑 거릴 무렵 광주목리 정보가 엉뚱한 곳에서 소란을 피웠다.

지칠 대로 지친 그는 더 이상 버틸 기운이 떨어지고 만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지금의 막다른 고비를 넘겨보려 했지만 목을 조여 오는 공포감에서 벗어나 해방될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아무도 몰래 창고 옆에 붙어있는 공구(工具)방으로 들어갔다. 갈수록 악화되는 날씨와 조금씩 조금씩 부서지고 망가져 가는 배를 믿을 수 없었다.

차라리 죽는 길이 좋을 듯 했다. 그는 호송군(護送軍)대장의 활을 아무도 몰래 훔쳐온 다음 활줄을 조심스럽게 풀었다. 줄을 빼낸 다음 오른손에 칭칭 감아 자신의 목에 걸어 빙빙 돌려서 감기 시작했다.
 
 "짜디짠 바닷물을 마시고 죽느니 차라리 내 손으로 내가 죽어 버리겠다. 하나님! 저를 저승의 죽음으로 잡아가 주세요."

  천정에 줄을 매달고 목에 감은 줄 끝을 기운대로 당기기 시작했다.

  "으윽, 끙끙."

  정보의 두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기운을 쓰고 있던 주먹손이 풀리면서 힘이 빠지고 거의 다 죽어가는 찰나다.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질러댄 외마디소리를 들은 김중이 달려들어 활줄을 풀고 바닥에 눕혔다.
 
 "정보, 정신 차려. 죽어도 뭍에 오른 다음에 죽어야지. 이게 무슨 짓인가?"
 
 죽어가는 정보의 몸을 비비면서 전신 마사지를 해주자 풀렸던 동공이 깜박거렸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도 죽고 말 고비를 아슬아슬하게 넘긴 것이다. 죽지 않은 것을 확인한 그는 정보를 껴안았다.
 
 "이보게 혼자 죽으면 어쩌나. 죽어도 함께, 살아서도 같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출발할 당시 나주에서부터 생사를 함께 하기로 다짐했던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알듯 모를 듯 묘한 웃음을 지었다. -다음주에 계속

신광재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꽃 도둑은 도둑 아니다는 옛말"⋯호수공원 화초 싹쓸이 범인은?
2
민주당 전남도당 사무처장, 운영비 등 폭로성 글 파문
3
최명수 도의원, NH농협은행과 광주은행 ‘이자 장사’
4
이재태 도의원, “한국에너지공대 출연금 재검토 즉각 중단하라!”
5
"한전공대 출연금 시비는 생떼"⋯나주시의회, 정부·여당 규탄
6
윤병태 시장 "민생경제 신음할 때 지방재정 신속 집행해야"
7
촘촘 복지망 구축⋯나주시, 민선 8기 신규 복지시책 눈길
8
국민의힘 나주·화순당협과 보훈단체장과 간담회 개최
9
102세 이학동 화백, 나주 특별전⋯5월에 그리는 고향
10
나주시천연염색문화재단, 17~21일 공예 페스타 개최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전남 나주시 빛가람로 685 비전타워 206호 나주투데이  |  대표전화 : 061)334-1102~3  |  팩스 : 061)334-1104
등록번호 : 전남 다00334   |  발행인 : 윤창화  |  편집인 : 이철웅  |  e-mail : njt2001@hanmail.net
Copyright © 2013 나주투데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