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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윤영근의 소설표해록 - 5. 끝없는 표해(漂海)(30) 수정호의 키는 떨어져 나가고
신광재 기자  |  sjs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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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호] 승인 2007.08.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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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죽음 앞에 당당할 자가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안이 아닌 밖에서 죽는 것을 객사(客死)라 해서 싫어한다. 시신이 살아생전의 집으로 들어오는 것조차 막는 풍습도 남아있다. 혐오(嫌惡)하는 죽음인 것이다.
 
오늘날에도 암, 치매, 당뇨 등으로 재산을 다 날리고 슬하의 자식들만 모질게 잔뜩 고생시킨 다음 세상을 떠나는 자들도 있다. 일평생 욕심한번 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지냈으나 질병과 사고로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하는 경우는 바다에 빠져죽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래서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리는 이들이 늘고 있고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려는 연구모임도 생기는 추세다.
 
편안하게 잘 죽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품위 있고 고상하게 늙어가며 죽어가는 길이다. 물론 수정호에서 죽음이 다급해진 일행들에게는 가릴 개재가 아니지만….
 
벼슬이 높아 훌륭한 직위나 많은 돈이 죽는 자의 품위를 보장해 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누릴 만큼 누렸으나 노추(老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속물들이 있는가 하면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선선한 무욕(無慾)과 깔끔한 자기관리로 보기만 해도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고상한 이도 있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렇듯 바르게 처신하며 자신을 지켜야 한다. 최근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9988234"
 
무슨 암호풀이 숫자가 아니다. 아흔 아홉 살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틀 동안 앓고 난 다음 사흘째 되는 날에 죽는 것이다. 가장 행복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인생의 열쇠풀이숫자라 하겠다.

제주사람들은 아들을 낳을 때와 딸을 났을 때가 다르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들을 낳을 때는 기뻐하며 집안의 대를 이을 것이라고 반긴다. 제주에서 난 아들은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 태어날 때부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뿐이다.
 
대부분이 바다에서 일을 하게 된 남자들은 결국 물에 빠져 죽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에는 여자가 훨씬 많다. 그런 아들을 낳았다고 반길 부모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딸을 났을 때는 온 집안 식구들이 반긴다.
 
 "와 예쁘다. 딸이 최고지. 효녀 심청이가 따로 있나!"
 
 바다에서 떠 돈지 오일 째 되는 날 아무것도 먹지 못한 이들의 눈동자가 멍해지고 오목하게 들어갔다. 모두가 파도와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을 때였다. 선미 쪽에서 무엇엔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쿵쿵 꽝꽝."
  "찌찌 찍찍."
 
 파도에 밀리던 배가 방향이 꺾이면서 힘들게 고쳤던 키가 빠져나간 것이다. 초공(梢工) 김고면은 숙달된 키잡이지만 덮쳐오는 물살에는 불가항력적이다. 배에서 방향을 정해주는 키는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그만큼 조정도 정확해야 한다.

죽음은 눈앞에 이르고

  키가 없어졌다니 이는 마치 사람에게 다리가 없는 것과 같아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것이며 결국은 뒤집어지고 말 것이다. 이빨 빠진 사냥개 신세다. 핸들이 없는 자동차와 흡사한 꼴이라 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배 안의 사공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키를 잡으며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이를 끝까지 지켜왔던 것이다.
 
없어진 키를 탓할 수도 없고 바라만 보자니 기가 막힐 지경이다. 어깨의 힘이 빠진 김고면의 처진 허리가 가없기만 하다. 키는 없고 대신 키를 꽂아야할 자리에는 늘어진 밧줄만 물결 따라 흔들거리며 갑판을 시끄럽게 때린다.
 
 "탁-탁."
 
시간이 흐른 뒤에는 선판이 부셔질 것은 뻔한 이치다. 그렇지만 행여나 떨어진 키의 조각이라도 있을까봐 선판의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이때도 조심해야 한다.
 
그칠 줄 모르는 매서운 강풍이 불어올 때는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며 상판 위에 납작하게 엎드려 엉금엉금 기면서 다녀야 바람에 휩쓸려 날라 가지 않는다. 잘못해서 바람에 쏠려 바다 물 속으로 빠졌다가는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조심조심 미끄럼조심!"
 
선실에 갇힌 사람들이 움직이지를 않는다. 공포의 회오리가 불어오면 선실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서 울부짖기만 할 뿐 일어나서 배를 구해볼 생각은 엄두도 낼 수 없다. 수정호의 모든 사람들이 시름에 젖어 허기를 달래고 있을 때였다. 귀청을 찢어내는 굉음이 들려왔다.
 
"우두둑 쾅쾅."
 
 뱃사람들은 핏기 없는 깡마른 얼굴들을 서로 쳐다보며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그들에게 생기란 찾을 수 없고 포기해버린 체념만 있을 뿐이다.
 
"부셔져 망가진 배가 또 부셔지는구나. 죽인다. 죽여!"
  "어머머, 속절없이 죽는구나."
  "아-아."
 
그들은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제주에서 서로 이웃하며 살아왔던 그들은 피차간에 잘 아는 사이로 죽음이 눈앞에 이르자 서로를 찾으며 부른 것이다. 이것은 뱃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이기도 했다. 사람마다 서로 아는 사이로 가까운 그들이 함께 모여 있으면 죽은 뒤에라도 혼백(魂魄)이나마 떨어지지 않고 의지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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