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우리 언론들은 프로야구, 프로축구, 프로농구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를 가리켜 공공연히 '용병(傭兵)'이라 부르고 있다.

사전에는 '지원한 사람에게 봉급을 주어 병역에 복무하게 함. 또는 그렇게 고용한 병사'로 나와 있으니 '용병'은 외인부대원들처럼 '돈에 팔려간 군인' 쯤으로 해석이 되겠다.

그런데 이를 확대해석해서 돈을 벌려고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 운동선수들을 '용병'이라고 하는 것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따지면 박찬호나 이승엽, 박지성과 이영표도 모두 용병이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우리 언론들,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해 활약하고 있는 이승엽을 두고는 흥분해서 「승엽, 일본 정벌 시작됐다」고 제목을 다는가 하면 한 신문은 '일본 정복'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만화 제목에서 빌려온 '남벌(南伐)'이라는 말을 즐겨 쓰는 신문도 있다. 한국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은 돈에 팔려 왔지만, 이승엽은 일본을 정벌하러 갔다고 주장하는 건 모순이나 이중성이라고 비난받을 만하다.

용병은 물론 '정벌, 정복'도 모두 피해야 할 표현이다. 아직도 팬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롯데의 호세나 두산의 우즈가 프로야구를 하러 왔지, 한국을 정벌하거나 정복하러 온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원칙대로 '공자님 말씀'을 열심히 지키려 하다가도 뉴스 한 토막에 그냥 '일본 정벌'이나 '정복'을 써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바로 이런 뉴스들.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비판과 관련. '자기 나라 전몰자에게 추도의 뜻을 표하는 것을 왜 외국인이 안 된다고 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에 이어 일본 국회의원 195명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마치무라 노부타카 외상은 이에 대해 "사적인 참배"라며 "기독교인이 교회에 가는 자유가 있는 것과 같다"고 해명했다.

(이진원의 '우리말에 대한 예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