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서해(西海)바다는 매섭기만 하다. 망망대해 서해는 사방이 수평선으로 보이는 것은 오로지 바다뿐이다.

육지라곤 어느 곳에도 없다. 섬도 보이지 않았다. 날이 흐리고 바람의 기세가 심히 험악했다. 바다는 파도가 잔잔하지 못했다. 눈 쌓인 들판처럼 하얀색이다.
 
갑판 위가 소란하다. 할 일이 없어진 격군들이 자기들끼리 떠들썩하게 지껄이더니 싸움이라도 벌린 듯 소란 벅적이다.

한쪽에서 핏대를 세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성난 눈초리로 으르렁댄다. 목소리 크기로는 초근보가 제일이다. 그는 지기 싫어하는 성격으로 말다툼을 곧잘 하곤 했다.
 
파도가 소용돌이치며 수정호가 흔들린다. 바람은 점점 더 커진다. 심한 동풍이 일었는가, 했더니 어느새 바람은 북풍으로 변해 있었다.

산더미보다 큰 파도가 수정호의 옆구리를 때릴 때면 커다란 몸집의 배가 힘없이 옆으로 밀리면서 넘어질듯 위태롭다. 한참이 지난 후 힘에 겨운 배는 뿌지직 소리를 내며 처음의 자리로 되돌아온다.
 
갈 곳을 잃어버린 배는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돛대가 시원찮으니 방향을 잡을 수 없는 것이다. 시커먼 우박구름이 하늘을 덮더니 바람의 방향이 수시로 변한다. 지금 수정호는 소용돌이치는 바다 가운데 있는 모양이다.
 
큰 물결이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치고 비와 눈이 번갈아 내린다. 종잡을 수 없는 태풍은 회오리를 치며 하얀 바다를 체질 하듯 까불어 댄다.
 
선장이나 사무장과 총무까지 지치고 힘이 빠졌다. 거의가 넉 다운의 그로키 상태다.

뱃사람들은 제법 단련된 제주어부출신들로 구성되었지만 배고픔과 높은 파도에 당할 위인은 없다. 그들은 기운껏 울부짖으며 죽음을 기다리는 지경에 빠지고 만 것이다. 관노 권송(權松)이 울며불며 최부에게 말했다.
 
“이 배는 가망이 없습니다. 하늘의 도움도 없고 닥쳐오는 것은 죽음뿐입니다. 원컨대 속장(束裝)이나 하고 기다립시다.”
 
옆에서 말을 듣고 있던 김괴산이 화를 내며 쏘아 붙였다.
  “무슨 소린가? 이대로 죽자는 말이냐!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어 썩은 송장이 되란 말이냐?”
 
그건 안 될 말이었다. 이른바 속장이라고 하는 것은 몸을 얽어매고 머리와 얼굴을 천으로 덮어서 감싸는 것으로 죽은 시신을 염습을 할 때처럼 기다란 헝겊으로 칭칭 동여 감는 것을 말한다.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라 한들 그것만은 안 될 말이었다.
 
이렇게 속장을 하는 것은 죽은 뒤에라도 머리나 얼굴에 심한 상처를 당하지 않아 쉽게 알아보기 위함이다.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권송은 아래층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 배 안에 있던 깃발을 찢었다. 그는 자기머리를 자신의 손으로 머리를 휘감아 싸며 울기 시작했다.
 
“아이고, 아이고.”

배 안은 울음바다가 되고

  스스로 삶의 끈을 잘라버린 그는 얼굴과 머리를 칭칭 감아 싸고 그 위로 다시 새끼줄을 동여맸다. 긴 붕대를 칭칭 감으며 싸맨 모습이다. 연속해서 징징 울며 얽어매는 것이었다. 이미 죽을 채비를 끝낸 것이다.

두 눈만 껌벅이는 권송을 본 뱃사람들은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더 놀라 설음에 젖어 울음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갑자기 배 안이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엉엉, 흐흐흑….”
 
 다시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생각은 위험했다.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자포자기한다면 어떻게 될까? 태풍에 의해 배가 뒤집히는 것이 아니라 배는 저절로 넘어질 것이란 자명한 사실이 두렵기만 하다.

아직은 심지가 굳은 안의가 달래듯 말했다. 출항하기 전에 별도포 삼사석(三射石) 뒷집의 용하다는 점집에서 점을 본 이야기를 꺼냈다.
 
“점집 노파는 먼저 흉(凶)하고 나중에 길(吉)할 괘(卦)라고 했다. 이제 또 남은 액운이 아직 다스려지지도 않았는데 다시 사지(死地)에 들었으니, 연후에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어째서 스스로 살아날 희망을 버리고 죽음의 길로만 빠져드느냐?”
 
이미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권송은 울먹이며 말했다. 그는 제주목사의 배를 여러 차례 운행한 경험이 있고 제주 앞 바다는 훤히 알고 있는 노련한 고참 급의 항해사였던 것이다.
 
 “저는 해로(海路)에 대해서는 익숙하게 알고 있습니다. 바다색깔이 하얗고 깊은 바다에서는 주의해서 배를 항해해도 어려운데 배 안의 모든 운항기물들이 한 가지도 남아있질 않고 전부가 망가진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바람이 없을 때도 위험한데 시도 때도 없이 불어대는 회오리는 아무리 큰배라도 당할 길이 없습니다.”
 
 보다 못한 선장이 나서서 말했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이게 무슨 짓인가!”
 
“우리배가 태풍의 눈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며 갈수록 파도가 높아지며 칼날처럼 무섭고 험악해지기 때문입니다. 이제 점점 거세진 바람은 서해바다를 뒤집고 성난 파도는 하늘에 솟구치는데 배는 여기를 빠져나갈 길이 없으니 난파되어 죽는 길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죽지 않을 도리가 있겠습니까?”
 
말을 듣고 있던 최부나 안의는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죽음의 두려움에 놀란 혼(魂)을 진정시키고 달아나 버린 마음을 가다듬어야 했다. 뱃사람들은 저절로 터진 울음에 통곡을 하고 싶었지만 소리내기가 부끄러웠는지 속으로 울먹일 뿐 조용하다.
 
속장을 한 모습을 본 현산은 놀란 나머지 손바닥으로 받아 낼만한 한 움큼의 피를 토하고 까무러쳐 정신을 잃고 말았다. 배 안의 모든 이들은 이미 저승사자에게 홀린 듯 멍한 상태의 하얀 얼굴에 벌벌 떨고 있었다. -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