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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의 나주이야기 - 21. 장원봉이 어디인지 아시지요
김민주 기자  |  minjukk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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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호] 승인 2007.08.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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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봉에 올라(登壯元峯)

曳前扶後鬱牙峯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부축하니 울창한 봉우리인데
頭上飛雲近紫宮  머리 위로 나는 구름 신선의 궁전에 가깝구나
身在敖盧登降外  몸은 오로가 하늘을 오르내리는 곳에 있고
眼空堅亥往來中  눈은 수해가 왕래하는 곳을 끝까지 바라보네
似乘飄若麻姑馭  수레를 타면 두둥실 마고선녀가 수레를 몰 듯하고
如御泠然列子風  바람을 몰면 사분히 열자가 바람을 몰듯하네
始識泰山天下小  비로소 태산위에서 보면 천하가 작음을 알았으니
滿前諸或望難窮  눈앞에 가득한 여러 지역을 바라보니 끝이 없구나
※ 수해 중국고대 전설상의 인물로 걷기에 능했던 사람

   
▲ 김종순 문화재관리팀장
이 시는 시서선생이 사시는 인근의 장원봉에 올라 속 시원함을 느꼈던 사실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원봉은 어디에 있는가 ? 우리들이 날마다 보는 곳입니다.

국도 1호선이 지나는 한수제 옆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는 봉우리입니다. 정상 부분에 금영정이라는 정자가 서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지금도 장원봉에 오르면 뚝트인 시야는 “나주가 나주답구나” 라는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멀리 아련히 보이는 무등산은 물론이고, 나주를 휘감아 도는 영산강과 펼쳐진 나주평야의 광활함은 역사 나주는 곡창이구나  무릎을 칠 수밖에 없습니다. 시야를 남으로 돌리면 월출산이 서쪽은 월정봉과 한수제 저수지가 펼쳐집니다. 약간 금성산 주봉쪽으로 보면 단아한 사찰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름하여 다보사 입니다.

이 시는 아마도 선생이 50대 후반에 지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 시 바로 아래에 을축년 풍년이 돌아왔다는 다른 시 구절이 있는 것으로 봐서 을축년이 1625년이기에, 장원봉이 언제부터 장원봉인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1620년대에는 장원봉이라 하였다는 것을 소리없이 알려줍니다.

   
▲ 국도 1호선이 지나는 한수제 옆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는 봉우리입니다.
장원봉 남쪽 끝자락에 나주향교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향교 뒤쪽에 있는 산봉우리의 이름은 장원봉이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왜냐구요 향교는 학교이기에 여기서 공부하는 선비들이 과거에 장원급제하기를 바라고 뒷산의 이름을 짓기 때문입니다.

과거이야기가 나왔으니 자세히 살펴보면 나주의 어르신들은 팔정승이 태어나신 곳으로 손자들에게 말씀하신다.

고려 조선시대에 2품 이상의 관직에 오르신 분들은 45분 정도입니다. 이분들 중에 조선시대 정승에 오르신 분은 박은, 신숙주, 한효원, 오겸, 박숭질, 박순,유상운,유봉휘  등 8분이다.

조선시대 과거에서 소과인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한 사람이 7백여인에 이르고 대과인 문과에 합격한 사람은 180여인에 이릅니다. 또한 무과에 급제한 사람은  370여인에 이릅니다.

이렇게 많은 과거합격자 가운데 지금까지 나주지방에 전해오는 특이한 사항은 성종때 나주향교 박성건 교수의 지도아래에서 소과에 응시한 학생 가운데 10인이 동시에 합격한 경사가 있어 금성별곡을 지어 당시의 흥분된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다시 초동에서는 중종때부터 선조대 사이에 竹潭 李惟謹, 野憂 張以吉, 滄洲 鄭詳, 寒泉 柳澍, 三洲 崔希說, 錦崖 李彦詳, 南湖 柳殷, 四村 崔四勿 8분이 연달아 문과에 급제하는 경사가 있어 세상 사람들은 이분들은 초동팔문관이라 불렀습니다.(다시 보산사에 모셔짐)

조선시대 관리가 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과거시험을 통해서입니다. 과거는 소과 문과 무과 잡과로 나뉘며, 시험보는 시기에 따라 정기시와 부정기시로 구분됩니다. 식년시(정기시)는 식년(子 卯 午 酉)에 시행되었다. 소과는 생원시와 진사시가 있는데 다같이 초시와 복시 두 단계의 시험에 의해 100인을 뽑아 생원․진사의 칭호를 주고 성균관 입학자격을 주었다.

生員試 고과과목은 四書疑 1편과 五經疑 1편(정조때 춘추의 빠짐) 進士試는 부1편, 고시 명 잠 중 1편으로 정했다. 식년시일때 시험시기는 상식년 8월하순, 복시는 식년 2월에 행하는 것이 상례였다.  소과초시는 한성시와 향시가 있으며, 전체합격자 수는 생원 진사 각각 700인이었다.(전라도는 각90인)

소과 복시는 초시에 합격한 자를 서울에 모아놓고 고시하여 생원 진사 각 100인을 뽑았다. 이때 수험생은 가례와 소학을 임문고강(臨文考講)하는 조흘강(照訖講)에 합격해야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시험성적은 1등 5인, 2등 25인 3등 70인으로 나누었다. 복시까지 합격하면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하다가 문과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오르는 것이 정상적인 길이었다.

문과는 대과 또는 동당시라고도 하였다. 식년문과는 초시 복시 전시의 3단계 시험으로 치루어졌기에 동당삼장이라고 하였으며 1일을 간격으로 시취하였다.

고시과목은 초장에서는 사서의, 오경의, 논중의 2편(뒤에는 四書疑, 義 1편, 논1편) 중장은 부 송 명 잠 기 중의 1편과 表 箋 중의 1편, 종장은 策 1편을 각각 고시하였다. 문과초시는 전국에서 240인을 뽑았으며 전라도의 정원은 25인이었다. 초시 합격자는 식년 봄에 서울에서 고시하여 33인을 뽑았다. 이를 복시 또는 회시라 하였다.

복시는 먼저 경국대전과 가례를 임문고강하는 조흘강에 합격해야만 초장에 응시할 수 있었다. 초장시험은 사서삼경의 각1대문 즉 7대문을 背誦講經하여 조(강경시험은 通 略 粗 不 4등급으로 나눔) 이상의 성적을 얻어야만 중장 종장의 수험자격이 주어졌다. 훗날 이를 중장 종장시험과 구별하기 위해 강경시라 하였다.

초장을 통과한 수험생은 회시라 불린 중장 종장 시험에 응하여 첫날 부 송 명 잠 기 중의 1편, 표 전 중의 1편을 고시하고 하루 지난 뒤 종장인 책 1편을 고시하였다. 그리하여 초 중 종장의 시험성적을 합산하여 33인을 합격시켰다. 이들은 다시 전시라는 종장시험을 통과하면 갑과 3인, 을과 7인, 병과 23인으로 등급을 나누었다.

전시는 회시에서 뽑은 33인의 등급을 정하는 시험이기에 부정이 없는 한 떨어뜨리는 일은 없었다. 갑과 1등은 종6품, 2,3인은 정7품, 을과에게는 정8품, 병과에게는 9품의 품계를 주었으며 갑과에게만 실직(實職)을 주었다. 또한 문과 급제자에게는 홍패를 주고 생원진사시 합격자는 백패를 주었다.

요즘도 고시열풍이 식지 않고 있죠  참 힘든 세상이다. 예나 지금이나 여름은 자신을 썪히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그래야 가을의 풍성함을 지나 겨울을 나고 새봄에 생명의 싹을 티울 수 있다고 합니다. 

김종순  문화재관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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