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만원? 뭣이 그리 비싸?”

“대목잉께 비싸제. 추석 쇠면 내려갈겅께 그 때 담제 그래?”

“그래도 명절인디 김치는 새로 담아야제. 싼 건 없는가?”

“있는디 속이 덜해. 어쩔랑가?”

“걍 젤 좋은 놈으로 주소. 식구들 먹을 건디..”

추석 연휴 첫날인 14일 목사고을시장에서 배추를 사고 파는 모습이다. 매 4·9일 오일장이 서는 목사고을시장은 지방에 선 우리나라 최초의 오일장이다. 어린이를 위한 역사책 ‘꼴뚜기는 왜 어물전 망신을 시켰을까’(2018. 정인수 저)에 ‘조선왕조실록에 1470년(성종1년) 극심한 흉년이 들자 나주사람들이 5일에 한번 씩 모여 서로 남는 것을 교환해 극복했다고 기록돼 있다”고 한다.

“대목장 중에서 젤 큰 장이여”라며 말문을 연 강미(50세) 씨는 “같은 배추같이 보여도 속이 차고 덜 찬 차이가 있어 8kg 한상자에 3만5천원부터 8만원까지 여러 가지다”며 “대목을 맞아 들어오는 가격이 비싸서 파는 우리도 미안하기만 하고 큰 재미를 보는 것도 아니다”고 한다. 강 씨는 “열무는 한단에 1만5천원~2만5천원, 쪽파는 1만5천원, 무는 5천원에 거래된다”고 덧붙인다.

목사고을상인회장 박도철(55세) 씨는 “모종장사 15년 만에 올해처럼 배추모종 구하기 힘든 때는 처음”이라며 “날이 워낙 더워서 모종이 자리도 잡기 전에 타버려 5번이나 다시 심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모종이 딸리면 김장배추 가격이 떨어지는 게 정상인디 올해는 오히려 더 오를 것 같다”는 박 씨는 “추석 대목 장날이 이렇게 뜨거운 것도 처음”이라고 덧붙인다.

# 40년 된 초·중 친구들 모임 ‘교우회’

“가까이 사는 친구가 지각한다”고 이야기를 시작한 주영로(64세) 씨는 “초·중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들끼리 ‘얼굴이나 보고 살자’며 교우회란 이름으로 모인 지 40여년 됐다”며 “매달 둘째 토요일로 모임을 정해 놔서 특별한 일 없으면 꼬박꼬박 참석하는데, 오늘도 늦지 않으려고 목포에서 5시에 출발했더니 30분이나 빨리 도착했다”고..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목포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주 씨는 “한번 나가면 1년을 바다에서 생활해야 하는 상선을 탔는데, 대학 동기가 탄 배가 침몰해 ‘흔적도 없이 목숨을 잃은 사건’을 겪은 후 바다가 무서워져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며 “기계공구 분야에선 철저한 A/S로 목포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졌다”고 자랑한다.

# 축제에 고춧가루로 만든 ‘나주비빔밥’ 선보일 천수봉 명인

▲ 한식대가 천수봉(74세) 남도음식명인이 ‘제30회 국제남도음식문화큰잔치’에 출품할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나주의 장터비빔밥은 고추장이 아니라 고춧가루를 썼다는 옛 기록을 재연하고자 한다”는 한식대가 천수봉(74세) 남도음식명인은 “나주는 농토가 넓고 비옥한데다 영산강 물길을 통해 들어 온 풍부한 해산물로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는데 다른 지방과 달리 고춧가루를 사용해 비빔밥을 만들었다”며 “비빔밥과 함께 홍어건포와 배젤리 등 우리 지역의 특산물을 활용해 27~29일 목포에서 개최되는 ‘제30회 국제남도음식문화큰잔치’에 출품할 계획”이라고..

같은 기간 나주에서 열리는 ‘2024 나주문화유산 야행’에 ‘나주한상’을 선보일 계획인 천 명인은 “140년 전 조지 클레이튼 포크 주한미공사관 대리공사가 나주를 방문해 오리탕과 김치, 수란과 젓갈, 육전과 유자정과 등으로 식사했다는 자료를 토대로 한상차림을 준비하고 있다”며 “궁중음식과 남도음식의 정통성을 이어오고 있는 나주 음식을 기록하고 계승하는 데 더욱 정진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 도래마을 서기당 막내딸 홍현욱 씨의 추석

100년 넘은 한옥과 함께 다도면 도래마을을 지켜 온 배롱나무가 화려한 꽃을 피운 ‘서기당 홍기창 가옥’의 막내딸 홍현욱(67세) 씨는 “서울 사는 딸은 이번 명절엔 못 온다”는 아쉬움을 나타내며 “어릴 적엔 명절이면 사촌들이 우리 집에 모여 함께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녔는데 지금은 명절 쇠러 오는 자녀들이 많지 않아 썰렁함마저 든다”고 한다.

본채 한칸과 별당채를 현대식으로 개조해 펜션업을 겸하고 있는 홍 씨는 “결혼하면서 떠났다 40여년 만에 돌아와 옛집을 가꾸며 유년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고 손님들에겐 새로운 기억을 남길 수 있어 즐겁다”며 “서기당을 찾는 도시 사람들이 오래된 한옥에서 아늑하고 편안한 체험을 쌓길 바란다”는 당부를 남기며 마당의 낙엽을 쓸어 모은다. 1918년 건축한 서기당은 전라남도 민속문화유산 제9호다.

# 금안리 광곡마을 노인회장배 바둑대회

▲ 추석을 맞아 ‘제2회 광곡노인회장배 바둑대회’가 노안면 금안리 광곡마을에서 열렸다.

“‘고향을 찾는 향우들과 주민들이 수담을 나누며 마을 대소사를 공유하고 친목을 돈독히 하자’는 정연채 노인회장님의 뜻에 따라 지난 설에 이어 두번째 바둑대회를 열었다”는 노안면 금안리 광곡마을 노인회 염철현(63세) 총무는 “알까기와 탁구 등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확대함으로써 남자들만의 취미생활을 넘어 마을공동체, 나아가 노안면민들이 함께 즐기는 놀이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한다.

“대회 참가자와 흥미롭게 지켜보는 주민들이 밤 늦게까지 한데 어울려 모처럼 명절 분위기를 냈다”며 “향우들과 하동정씨 금안동문중, 노안농협 등 각계의 후원으로 ‘마을잔치’를 넘어서는 알찬 행사가 됐다”고 밝힌 염 총무가 우승의 영광을 안았고, 준우승 정국기, 3등 정찬관, 4등엔 정도기 주민이 차지했다.

# 국가민속문화유산 남파고택의 전 부치기

▲ 남파고택 종손 박진영(49세) 씨 형제와 가족들이 추석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전라남도에서 단일건물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국가민속문화유산 ‘나주남파고택’이 탯자리인 종손 박진영(49세) 씨는 “자동차로 오는 것보다 편하고 시간도 아낄 수 있어 고속열차를 이용한다”며 “섣달그믐과 정월대보름·추석·동지 전날 밤에 9대조 할아버지까지 선조들의 합동제사를 모시고 명절 당일에 성묘한다”고 말하고 “개별 제사는 열 번도 넘는다”고 귀뜸한다.

경기도 용인시에서 직장에 다니는 박 씨는 “어릴 적 본채 앞 연못에 물고기가 노닐고 감나무며 포도나무가 있었는데 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원형을 유지하기 위해 나중에 생긴 연못을 메운 게 아쉽지만 넓어진 마당에서 음악회를 여는 등 공동체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 뜻깊게 생각한다”고 덧붙이고 전을 부치는 가족들 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박 씨의 아버지는 나주문화원장을 지낸 박경중 전 전라남도의회 행정자치위원장이다.

# 다시·세지면민 노래자랑 ‘신명나는 추석’

▲ 16일 다시초등학교에서 열린 ‘제14회 다시면민 노래자랑’에 1천여명의 주민들이 함께 어우러지고 있다.

연신 ‘앵콜’을 외치는 주민들의 목소리에 흥이 차 오른다. 무대 앞으로 나와 춤을 추고 노래를 따라부르는 모습은 말 그대로 ‘신명나는 명절’을 즐기고 있다. 코로나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각 읍면동별로 열리던 노래자랑이 올해 추석엔 다시면과 세지면 두 곳에서만 열렸다. 큰 마을에선 당산나무에 모여 노래자랑도 하고 집집마다 해 온 음식을 나누던 기억마저 아련하다.

제14회 다시면민 노래자랑을 주최한 이근준(53세) 청년회장은 “30여년 전 선배들이 시작한 노래자랑을 한동안 면민의 날 행사와 함께 진행하다 작년부터 추석맞이 노래자랑으로 따로 열고 있다”며 “고향을 찾은 향우들과 주민들이 어우러지는 한마당을 위해 주민자치위와 이장단, 자율방범대, 부녀회 등 각 단체들과 협조해 함께 준비했다”고 한다. 노래자랑 대상은 정진경, 최우수상 진선희, 우수상 송문영, 인기상 이인숙·류연삼, 특별상 아사미게이코·나원율·김지우에게 돌아갔다.

# 오가는 사람들, 웃지 못하는 이들

“시댁인 서울에서 차례를 지내고 친정인 부산에 들렀다 돌아오면 딱 1천킬로미터”라는 오○○(36세) 씨는 “남편의 직장 이전으로 나주에서 10년 째 명절을 맞고 있지만, 대중교통 불편도 여전하고 인근 지자체와 비교할 때 나주만의 볼거리나 먹거리를 찾을 수 없어 아쉽다”며 “같은 나주사람인데 빛가람동 사람들을 마치 ‘외지인’처럼 대한다고 느낄 때도 많다”고 말한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18일 왕곡면 월천1리 구천마을회관에서 만난 박상회(79세) 씨는 “차례상을 차리지 않아 따로 음식을 장만하지 않고 식구들 먹을 송편과 전 등을 사서 아이들과 술 한잔 하며 보냈다”며 “4남매 중 큰아들이 오후에 제주도로 떠나면 우리 내외만 남는다”고 씁쓰레한 웃음을 짓는다.

영산동 선창에서 만난 이혜진(44세) 씨는 “공산면 금곡리 친정에 명절 쇠러 왔다가 가족들과 황포돛배 타러 나왔다”며 “고등학교 마치고 서울서 직장에 다니며 결혼해 살다가 8년 전 경기도 이천 시댁의 하우스 농장을 물려받아 부추와 상추 등을 기르고 있다”고 한다. 이씨의 세 아들은 뱃놀이가 신기한 듯 눈동자가 번뜩인다.

명절이지만 웃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나주시청 앞에 농성천막을 차린 남송(32세) 씨는 “지난 2월부터 도시과와 건축과, 공원녹지과와 협의를 통해 산림경영허가와 관련한 각종 수정과 보완을 진행했는데 인허가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느닷없는 불가 통보를 받았다”며 “불가사유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도 없이 책임회피로 일관하는 무책임한 행정에 맞설 방법이 농성 밖에 없다는 현실이 답답할 따름”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즐겁고 행복한 명절에 농성 천막을 거둘 수 없는 남 씨의 사연이 안타까움을 더한다.

다음 명절엔 좋은 일만 가득하고 노래자랑과 알까기로 행복을 만끽하며 좋은 음식을 준비하고 함께 나누며 어우러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