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채석 기행작가

각 지방으로 간이역으로 두서없이 여행을 다니다 보면 그 지역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알 수가 있다. 전남 장성에 가보면 구장성이라는 곳이 있다. 성산리라는 마을인데 장성성산초등하교가 있고, 장성향교가 자리한 마을이 본래의 장성인데 일제가 호남선 철길을 부설하고 현재 장성역이 있는 곳이 눈부시게 발전해 장성이 되었다. 그만큼 철길과 역 하나만으로도 지역의 발전방향이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전북 익산 역시도 그렇다. 본래 익산의 지명은 솜리였는데 일제가 들어와 이리로 바뀌었고, 지금은 익산으로 불린다. 그러한 익산은 옛 마한의 도읍이었던 금마였다. 대표적으로 미륵사지와 국립익산박물관, 금마토성, 익산백제토기도요지, 화암서원, 서고도리 석불입상 등 다양한 문화유적이 산재한 곳이나 일제의 호남선과 이리역으로 익산의 중심이 판이하게 바뀐 사례라 할 수 있겠다. 그럼 강경은 어떠했을까.

강경에 논산경찰서가 자리하고 있는 게 의아했다. 강경은 행정구역이 충남 논산시 강경읍이다. 그러함에도 경찰서가 자리한다는 것은 옛 명성을 입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강경은 1930년대까지 전남 나주의 영산포와 같이 천혜의 내륙 항이었고, 금강하구에 위치한 관문으로 조선시대 평양과 대구의 서문시장과 함께 3대 시장의 명성을 얻기도 했다. 이후 군산항의 개항과 함께 호남선과 군산선의 개통으로 쇠퇴일로의 길에 들어선 케이스다.

지금은 매년 10월에 열리는 젓갈축제가 특산품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고는 하나 인구가 8천 명도 안 되는 시골에서 어찌 다 소화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이는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기우였다. 젓갈이 소화를 돕는 음식이듯이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전자 상거래의 활성화로 젓갈의 소비가 원활해 충남의 광천이나 서산이 그런대로 젓갈의 이름을 알리고 있지만, 강경이 그 명성을 잇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4일과 9일이 장날인 강경장은 강경읍 계백로를 따라 거리에 뒤죽박죽 뒤엉켜서 서는 난장亂場이다. 그래서 더 시골스럽고 더 정겹다. 축 처진 듯 느릿한 충청도 말씨에 반해 거래는 일사천리로 빨리 사고판다. 성품들이 원만하다. 길을 가다가 뭐를 하나 물으면 열을 가르쳐준다. 그만큼 자상하다. 이러한 곳에서 성장한 문학인이 박범신과 박용래, 김관식이 그들이다.

김관식은 자칭 대한민국 시인이다. 논산 구자곡면 출신이다. 지금은 연무대가 있는 연무읍이다. 어려서 한학과 동양고전을 섭렵했다. 수재였다. 강경상고를 졸업하고 도립 충남대, 고려대, 동국대 등에서 토목공학 건축공학 농학과를 다니다가 졸업에 이르지는 못했다. 중퇴 후 서울상고에서 재직했다. 재직 중 1955년 현대문학에 시 〈자하문 밖〉 〈계곡에서〉 등으로 등단했다. 미당 서정주가 추천했다.

서정주의 처재 방옥래가 부인이고 서정주와는 동서지간이다. 4⸱19 이후 종로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장면과 겨루었으나 낙마했다. 술을 너무나 좋아했다. 술에 취해 한 출판기념회에서 김군(김동리) 박군(박목월) 조군(조연현) 나오라고 소리쳤다. 괴짜였다. 중학생 때도 술에 취한 상태로 등교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37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비는 박용래 시인의 시비와 나란히 강경상고에 있다.

창밖에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
가을이던가
녹차鹿車에 가구를 싣고
가랑잎 솔솔 내리는
이끼 낀 숲길
영각소릴 쩔렁쩔렁 울리며
어디로든지
떠나고 싶다
그러나 내게는 아무도 없네
반겨 맞아 줄 고향도 집도

순채나물
노어회鱸漁膾
강동江東으로 갈거나
구양수歐陽脩
글을 읽는
이 가을밤에

(김관식 詩 <이 가을밤에> 전문)

강경상고를 졸업한 또 다른 시인 박용래. 그는 강경 홍교리에서 태어났고 상고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러나 늘 울었다. 기차를 타고 두만강을 건널 때의 소회를 『관촌수필』의 이문구에게 전할 때, “두만강을 건너는데 어찌나 눈이 쏟아지던지⸳⸳⸳⸳⸳⸳, 조선은행권을 곳간차에 가득 싣고 말야⸳⸳⸳⸳⸳⸳, 내가 조선은행에 근무할 때야, 그래, 눈은 마구 쏟아지고⸳⸳⸳⸳⸳⸳, 아⸳⸳⸳⸳⸳⸳,” 그러고선 펑펑 울었다. 얼마나 감정이 격했으면 그리도 울었을까. 싶다.

박용래 시인을 이야기할 때 눈물을 거두고서는 어떤 이야기도 할 수가 없다. 그만큼 시인은 울었다. 감꽃이 피면 피었다고 울었고, 빗물이 고이면 고였다고 울었다. 박용래 시인의 시는 시인의 울음소리다고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기차를 타고 두만강에 내리는 눈을 보고 그렇게 울었던 시인은 아마도 여물 써는 소리를 생각하면서도 울었을 것 같다. 시인의 이 같은 감성과 감각은 어디에서 분출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