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한국농어촌관광학회 수석 부학회장 허북구

독일에서 가장 잘 보존된 중세도시 중심지 중 하나는 튀링겐 주도(州都) 에르푸르트(Erfurt)의 구시가지이다. 인구 21만 5천 6백명(2023년 12월 기준)의 에르푸르트는 나주와 닮은 점이 많다. 나주에는 영산강이 있듯이 에르푸르트에는 게라강(Gera River)이 있다.

게라강은 라틴어로 “진흙, 진흙탕물”이라는 뜻을 가진 에르페스 강(Erphes River)에서 유래되었으며, 에르푸르트는 “에르페스 강의 여울(ford at Erphes River)”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었다.

에르푸르트는 그만큼 강과 밀접한 도시이며, 과거 쪽(인디고)으로 명성을 떨쳤다는 점에서 영산강이 있고, 쪽 염색으로 유명한 나주와 닮았다.

에르푸르트의 중세 역사는 유럽의 쪽(대청, Isatis tinctoria)을 빼놓고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에르푸르트는 중부 및 동유럽의 지역을 연결하는 주요 무역로이자 청금(靑金)으로 불리었던 쪽 염료 산지로 무역 중심지가 되었다.

에르푸르트에서 생산된 쪽 염료는 독일뿐만 아니라 영국, 이탈리아 등지에까지 판매되면서 에르푸르트에 막대를 부과 정치 권력을 가져왔다. 쪽 염료 무역을 통해 돈을 많이 번 쪽 재배 농민과 상인들은 지역의 교육 발전에도 투자했다.

대표적인 것이 1379년에 시민들에 의해 설립된 에르푸르트 대학교이다. 이 대학은 독일에서 세 번째로 설립된 대학으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와 같은 저명한 사상가를 배출했다. 에르푸르트 대학은 15세기에 가장 저명한 고등 교육 기관 중 하나였고, 16세기에는 에르푸르트가 인본주의와 스콜라주의의 중심지가 되는 역할을 했다.

쪽 염료의 생산과 판매로 인해 중세 무역 중심도시로 발전했던 에르푸르트는 17세기 이후 저렴한 인도산 쪽 염료의 수입과 합성 인디고 염료의 발명으로 인해 발전의 동력을 잃게 되었다.

에르푸르트는 시대 변화에 따라 요구되었던 재프로파일링(reprofiling)을 통해 이에 대응했다. 수백 년 동안 쪽 염료를 생산하면서 발전했던 육종과 재배기술을 활용하여 원예 중심지로 변신했다.

18세기에 에르푸르트는 현대 상업 원예의 시발지가 되었고 포도 재배 등 독일 원예의 중심지가 되었다. 1865년에 국제정원박람회를 통해 원예용 씨앗, 자재의 공급지뿐만 아니라 “꽃의 도시”라는 명성을 얻었다. 이 명성은 쪽 염료 무역을 통해 번영했던 시기에 건립된 수많은 중세 건물과 함께 관광의 이미지가 형성되어 관광명소가 되었다.

에르푸르트는 재프로파일링 이후 상업 원예로 전환하여 급속하게 발전하던 중 두 번의 세계 대전과 사회주의 공화국(동독) 등장으로 원예 중심도시, 꽃과 관광도시라는 이미지가 훼손되었다.

그런 가운데 원예는 경제생활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었기 때문에 동독 정부에서는 이를 발전시켰다. 또한 1885년에 녹지로 지정해 두었던 치리아크 산성(현재의 에가파크)을 상설정원박람회장으로 쓰기 위해 1949년부터 공원 재조성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1950년에는 에가파크(egapark)에서 “꽃피는 에르푸르트”라는 모토하에 수백 개의 원예, 조경업체가 참가한 정원박람회를 개최했다.

1961년에는 제1회 사회주의 정원박람회를 개최했는데, 6개월간의 개최 기간 중 3백 5십만 명이 방문했다. 이후 에르푸르트에서는 정원조성과 박람회를 통해 도시기반시설 재건, 노후 공원 재생, 원예 및 조경 관련 산업 발전, 세계적인 육종과 종묘산업 도시로 성장, 기후 위기 대응까지 시대 변화에 맞게 발전적으로 대응해 오고 있다. 잦은 홍수로 시민들을 괴롭혔던 게라 강변 또한 조경이 잘되어 시민들의 휴식처로 활용되고 있다.

한편, 에르푸르트처럼 쪽 염색으로 유명했던 나주는 전라도 정명 1000년 만에 광주·전남 공동(나주 빛가람) 혁신도시를 통해 재프로파일링이 진행 중이다. 쪽, 무, 채소, 뽕나무, 대마 등을 심었던 영상강 포전(浦田)에는 국가정원 지정을 최종 목표로 정원이 조성 중이다.

조성 중인 정원의 인근은 국내 최대 쪽 염료 생산지였다. 나주 쪽 염색은 국가무형문화유산 제115호로 지정되어 있고, 기능보유자와 전수관이 있다. 쪽 염료의 생산 노하우가 에르푸르트의 재프로파일링의 바탕이 되었듯이 영산강 정원에도 포전(浦田)의 역사성과 나주 쪽의 정체성이 반영되고, 이것이 나주 발전에 유용하게 활용되길 바란다.

▲ 독일 에르푸르트의 특산이었던 인디고 식물 대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