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용식 수필가·공학박사

“작업을 중단해야 할 때도 있지?”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평균풍속 15m/s 이상이거나 안개로 시야 확보가 어려울 때, 눈이나 비가 3mm 이상일 때는 작업을 중단합니다. 신호수가 제대로 배치되지 않거나 크레인 작업 반경 내 안전관리 상태가 미흡할 때도 중지합니다. 이 부분은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이럴 때 크레인 조종사에게 작업중지 권한을 주었어요. 그런데 정부는 이를 자기 직업에 대한 성실의무 위반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만들어 작업중지권을 박탈해 버렸습니다. 작업자 안전을 위한 조치인데 공기가 촉박한 시공사의 약점을 이용해 조종사가 태업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던 거죠. 이를 위반한 조종사를 면허 정지, 취소시키겠다며 징계위를 열었으나 전원 무혐의 처분을 받았어요.” 목소리에 열기가 느껴지는 걸 보니 정부 처사에 상당히 억울해하는 것 같았다.

“네 삶을 바꾼 특별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활동한 것입니다. 크레인 조종사는 특별한 기술자인 것 같지만 흔한 말로 그냥 ‘노가다’일 뿐입니다. 정해진 휴일도 없고 비가 와야만 쉴 수 있었습니다. 급여도 고용주 마음대로 결정하고 몇 달씩 밀려도 항의조차 못 했지요. 다음 현장 배정받기 위해 크레인 임대회사 관리자를 만나 술 접대하고 택시비까지 챙겨줘야 했습니다.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 지쳐 업계를 잠시 떠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노동운동을 알게 되었고 노조에 가입하고서야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지요. 노조에 가입한 지 17년 됐습니다.” 퇴근 시간이 지나 문상객들이 많아지자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크레인 조종사는 기업노조가 아닌 산업별 노조나 직종별 노조에 가입합니다. 조합원 자격으로 장비임대회사와 현장별로 근로계약을 맺습니다. 한 현장의 착공에서 준공까지 기간제 근로자인 셈이죠. 현장이 끝나면 계약이 종료됩니다. 다시 대기 순번을 받고 기다리고 있으면 그 순번에 의해 채용되는 구조입니다.”

“언론에서 크레인 조종사를 ‘월례비’나 받는 부도덕한 건폭 집단으로 보도했던데….”

“크레인 조종사는 조립 철근을 슬래브에 올려 주거나, 형틀공과 협업으로 거푸집을 해체하고 다음 층에서 다시 조립하는 일을 주로 합니다. 그러면서 작업 효율을 높여주거나 초과 근무를 해주면 업체들이 돈을 더 많이 벌게 되지요. 그럴 때 성과급 성격으로 받은 돈이 월례비 입니다. 정부는 이 돈을 받는 노조원을 갑질하고 공갈치는 건폭(건설업계의 폭력배라는 의미)으로 매도하는 것입니다. 정당한 대가를 받은 약속 대련이었는데 우리의 뺨만 때린 격이죠.”

“크레인 조종사 일을 하면서 생각나는 에피소드 같은 일은 없었니?”

“에피소드라기는 그렇고 집에서 아이를 돌봐주던 장모님이 아이를 업고 밖에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첫 손주를 보고 그렇게 좋아하면서 자청해 애를 돌봐주셨는데 어쩌다가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연락은 받았지만, 현장을 멈출 수 없어 퇴근 후에야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장모님은 팔이 부러지고 돌 지난 아이는 두개골에 금이 갔다고 했습니다. 집안이 순간 엉클어졌어요. 피부샵 분점을 낼까 고민할 정도로 실력 있는 아내가 별수 없어 전업주부로 돌아서야 했습니다.”

“요즘 건설업계 사정이 어려운 것 같은데?”

“지금이 최악입니다. 작년부터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크레인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저가 수주에 나서다 보니 그 영향이 고스란히 우리에게 미치고 있지요. 단체협약 조건으로는 채용이 안 되고 임금 깎아주면 채용해주겠다고 합니다. 노동력을 흥정해야 하는 상황이 20년 전으로 회귀한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럼 요즘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니?”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친 아들이 3년여 치료 끝에 이상 없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제일 큰 걱정거리였는데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내가 맞벌이를 포기하여 수입이 줄어 넉넉하진 않지만, 아이들이 좋아하고 저도 편한 부분이 있어 괜찮아요. 나를 믿고 따라준 아내와 배려심이 돋보이는 6학년 아들, 장난꾸러기 2학년 딸과 그냥 잘살고 있습니다. 아빠 직업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이들에게도 고맙고요. 단지 지금 일이 없어 쉬고 있는데 건설 경기가 빨리 풀렸으면 좋겠네요.”

조카의 카톡에 저장된 107장의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지나온 삶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아 놨다. 아이들 사진과 가족여행, 여가 생활 등이 대부분이다. 삶의 고비마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는 가족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녀석의 가족사랑이 부러울 정도다. 어렸을 때 소년조선일보에서 받은 최우수상과 노조 활동 하며 받은 상장도 보인다. 라이딩하는 사진이 보여 의외다 싶어 전화했더니 노조 활동에 필요해 소형 오토바이를 샀는데 점점 여가용으로 발전했단다. 가끔 군대 생활을 했던 화천이나 강원도 일대가 좋아하는 코스라고 했다.

금수저와 흙수저. 과학적으로 정돈된 개념은 아니지만, 조카는 흙수저가 분명하다. 스스로 현실을 인식했고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걷고 있다. 인생의 절반은 즐겁고 절반은 힘든 것이라고 어디서 읽은 기억이 있지만 아마도 힘든 시절이 더 많지 않았을까 싶다.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자칫 그 답을 찾으면서 안정적인 삶의 균형추가 흐트러질까 두려웠다. 날마다 크레인을 오르내리는 직업만 다를 뿐 대한민국의 여느 40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의 건강한 삶을 응원하고 싶다. 이 글을 마칠 즈음 다시 일자리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