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용식 수필가·공학박사

“삼촌, 오랜만에 뵙습니다.” 매형 상사喪事에 문상하러 갔다가 만난 조카의 인사였다. 건장한 40대 중년의 남자가 되어있었다. 가까운 인척이면서도 그동안 소원하게 지내다 만나게 되니 좀 머쓱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그럴 경우마다 다음에는 좀 더 자주 안부 전하며 지내야지 하다가도 돌아서면 또 마찬가지가 되고 마는 것이 우리 삶인 것 같다.

문상을 끝내고 식당 창 옆에 자리를 잡았다. 상가 전통(?) 메뉴인 육개장과 세트 반찬이 나왔다. 조카에게 소주잔을 권하려 하자 급하게 소주병을 빼앗으며 “제가 한 잔 올릴게요.”한다. 가벼운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동안 깊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어 궁금했던 것으로 화제를 돌렸다.

“너 타워크레인(이하 ‘크레인’이라 부르기로 한다)조종사일 한다고 진즉 이야기를 들었다만 흔치 않은 직업 같아서 의외였단다. 어떻게 해서 그 일을 하게 되었니?”

“전문대학 1학년 때 입영 통지를 받았습니다. 군 생활을 하면서 크레인 노동자들이 고공에서 농성하는 뉴스를 보고 그 직업에 관심을 가졌어요. 희소성이 있는 직업이잖아요. 보통 직장에서처럼 층층시하 누구의 간섭 받지 않고 자기만의 공간에서 일하는 것도 괜찮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매력 있지 않아요? 제대하고 보니 현실은 녹록지가 않데요. 하루라도 빨리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군에서 생각했던 중장비 자격 (당시는 크레인 기사 자격이 별도로 없었다) 시험을 준비했어요. 필기시험 합격하고 2차 실기시험 준비하려는데 학원비가 없어요. 그래서 생각나는 게 인력사무소였습니다. 이삿짐센터나 건설 현장 잡부 일을 했습니다. 지방에 가면 일당 만 원을 더 줬어요. 많이 돌아다녔지요. 그렇게 해서 자격증을 취득하고 원하는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되었습니다.”

“흔하지 않은 직업인데 네 일상을 소개해 볼래?”

“다른 직장인과 다를 게 없어요. 하는 일만 다를 뿐. 알람 소리 때문에 아내와 애들이 깰까 봐 스마트 워치를 마련했습니다. 새벽 다섯 시 반이면 손목에 진동이 울립니다. 간단히 씻고 가만히 집을 나옵니다. 현장에 도착하면 여섯 시 반쯤 됩니다. 초가을이나 겨울 새벽 현장은 으스스 추워요. 화장실을 다녀와 크레인 사다리를 오릅니다. 마지막 조정실에 앉아 크레인 붐 대가 잘 움직이는지, 다른 잡소리는 없는지 장비 상태를 워밍업 해 봅니다. 매일 하는 일이지만 안전을 위해 필수적인 점검 사항이지요. 신호수의 무전 연락이 오면 하루 작업을 시작합니다.” 층이 높아갈수록 사다리 수도 늘어난다. 작업장을 향해 사다리를 오를 때마다 허벅지 근육은 팽팽해질 것이다. 이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힘이 40대 남자의, 가장으로서 에너지 원천이 아닐까를 생각해 본다. 내 비어있는 잔에 술을 따라 준다. 나도 조카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열한 시 반이 되면 점심 먹으러 다시 내려갑니다. 좁은 조종실에 오래 앉아있으면 하체가 뻣뻣해지고 저림 현상이 올 때가 있어요.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일은 굳어있는 하체를 풀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점심 먹고 잠시 쉬다가 한 시에 다시 올라갑니다. FM 음악 방송이나 유튜브 음악을 듣습니다. 별도 추가 작업이 없으면 네 시 반에 작업을 끝냅니다. 친구들과 약속 있는 날에는 저녁 먹고 가볍게 술 한잔합니다. 다음 날 작업 때문에 과음은 생각지도 못합니다. 현장에 출근하면 음주 측정을 하거든요”

“공중에서 작업하는 타워크레인을 보면 궁금한 점들이 많아. 무엇부터 물어봐야 할까?”

“그럴 거예요. 우선 지상에는 자재 운반과 안전관리를 하는 신호수가 있어요. 그 신호수와 무전기나 스피커폰으로 작업 내용을 서로 주고받아요. 요즘은 타워에 카메라를 설치해 조정실 화면에서 지상의 작업 내용을 볼 수 있게 하는 추세입니다. 많이 발전했지요. 줌(Zoom)으로 인아웃이 되고 화질도 좋습니다. 안전하고 작업 능률도 좋아요.

건물 층이 올라가면 타워크레인도 그에 맞추어 올려 주는 것을 코핑(coping)이라고 합니다. 코핑 작업은 먼저 건물에 크레인을 고정하고 미리 조립된 크레인을 제일 윗단 마스트 밑에 끼워 넣습니다. 조종사가 직접 하며 세 시간 정도가 걸립니다.

근무하는 곳이 높은 고공이다 보니 화장실 다녀오려면 삼십 분 이상 걸리기도 합니다. 내가 조종실을 비우면 작업이 중단되니 화장실에 갈 수가 없죠. 혹시 배에 탈이 날까 봐 아침은 거릅니다. 500mL 생수를 다 먹고 그 생수통에 소변을 보고 대변은 비닐봉지에 처리합니다.

공기가 촉박할 땐 시간을 아끼려 도시락을 올려 줍니다. 철근을 구부린 후크(‘참 고리’라 부릅니다)에 도시락과 음료수를 걸어주면 끌어 올리는 거지요. 제일 힘든 것은, 좁은 공간에서 종일 앉아만 있으니 허벅지와 종아리가 뻐근하고 저릴 때입니다. 수시로 주무르기도 하지만 한계가 있어요.”

“타워크레인은 공사 중인 건물보다 얼마나 높아야 하는 거야?”

“보통 10m 이상 더 높아야 작업이 가능합니다. 최근에 마무리한 현장은 59층입니다. 헬기장이 있는 상부 구조물까지 200M가 넘지요. 한 달에 16M 정도씩 올라갑니다.”

허공에 홀로 떠 있는 외로운 섬. 그 섬 안에서 변해가는 멀고 가까운 풍경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200 M 상공 조종실에서 찍은 노을과 야경 사진을 보여 주며 정말 끝내줬다고 했다. 조카는 이 일을 즐기는 듯 말하지만 다른 이야기는 없을까. 말 못 할 외로움 같은 것.

건물 층이 높을수록 고용 기간이 길어져 생활 안정에 많은 도움이 된다며 다음에도 이런 현장을 만났으면 좋겠다며 빙긋이 웃는다. 간절하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해줬다. -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