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채석 기행작가

기차마을에는 비록 겉모습만 증기기관차이긴 하지만, 가정역까지 왕복 10여 km를 운행한다. 기관차에 오르면 한 시대에 남학생들의 일정 부분 외출복이기도 했던 교련복을 입은 남성이 반장이라는 완장을 차고 오징어나 음료, 주류, 과자도 판다. 추억을 판다. 매우 느리게 달리는 열차는 간간히 기적도 울려준다. 마치 경주나 강릉, 부여 등으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여기에 낭만은 덤이다.

기차마을 주변에는 신안의 1004 섬에 빗댄 1004 장미공원이 조성되었다. 1004그루의 장미를 심었다는 말인지 1004종의 장미를 심었다는지 모르겠으나 매우 아름다운 건 확실하다. 장미꽃이 피는 오월이면 향기, 사랑, 그리고 꿈이라는 주제로 세계장미축제가 열린다. 강을 따라 내려가면 호곡나루를 만나는데 예전에는 줄 배가 다녔다. 지금은 주변에 두가교가 놓여 배는 묶인 채로 옛 정취만을 더한다.

호곡나루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마천목(1358~1431년) 장군의 도깨비살이 전해오는 어살의 흔적이 있다. 어살은 마천목이 쌓은 것이 아니라 강변에서 반짝이는 돌을 하나 주워 왔는데 그날 밤 도깨비들이 나타나 마천목이 주워간 돌이 자기네 대장이라며 돌려주기를 원했다. 그러면서 소원을 들어준 것이 마천목의 원에 따라 부보님을 위한 독살이 만들어졌다. 그것도 하룻밤 사이에 방망이와 푸른 불로 조화를 부려 만들어 주었다.

더 아래로 내려가면 압록유원지다. 보성강이 섬진강과 만나는 곳으로 여기에는 섬진강에 잡은 참게에 갖은양념과 시래기를 넣고 푹 끓인 참게탕, 민물매운탕, 다슬기탕, 다슬기 수제비, 참게장, 은어회 등을 파는 맛집이 즐비하다. 특히, 살살 소금을 뿌려가며 천천히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으며 구운 은어구이에 소주라도 한잔 곁들이면 임금님 수라상은 절대로 안 부럽다. 흘러가는 강물을 내려다보며 감칠맛 나는 음식, 무엇이 더 부러우랴.

압록유원지에서 보성강의 태안교를 건너 840번 지방도를 따라 조금만 가면 독도사진박물관 지나 죽곡면 원달리 조태일 시문학 기념관에 이른다. 봉두산 자락의 태안사 입구다. 조태일 시인은 태안사에서 대처승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아침 선박〉으로 등단했다. 유신 시절 그는 저항시로 독재정권에 항거했다. 『국토』와 『가거도』 등의 시집은 저항의식과 민중의 정서를 담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시집 『식칼론』은 판금이 되기도 했다. 1969년에는 시 전문지 ‘시인’을 창간해 남도의 김지하와 김준태 등의 굵직한 시인을 발굴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광주대 문창과에서 후진 양성에 힘을 더했으나 일찍 온 병마는 세상을 등지게 했다. 이러한 조태일은 어린 나이(한국전쟁)에 광주로 피난 정착했기에 섬진강이나 보성강에 대한 시적 소재는 그리 많지는 않다. 하지만 더러 고향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는 시도 있다.

모든 소리들 죽은 듯 잠든
전남 곡성군 죽곡면 원달 1리

구산의 하나인 동리산 속
태안사의 종으로
서른다섯 나이에 열일곱 나이 처녀를 얻어
깊은 산골의 바람이나 구름
멧돼지나 노루 사슴 곰 따위
혹은 호랑이 이리 날짐승들과 함께
오순도순 놀며 살라고
칠 남매를 낳으시고
⸱⸱⸱
삼십 년을 떠돌다
고향 찾아오니 아버지의 모습이며 음성
동리산에 가득한 듯하나

눈에 들어오는 것
폐허뿐이네 적막뿐이네.

(조태일 시 〈원달리의 아버지〉 전문)

섬진강에는 공선옥의 소설이 흐르고, 보성강에는 조태일의 시가 흐른다. 이렇게 시와 소설이 압록에서 만나 구례로 흐른다. 두 강이 만나는 압록鴨綠은 오리 압鴨에 초록빛 록綠이다. 백두산에서 발원해 중국과 국경을 이루며 서해로 흘러드는 압록강의 압록과 같다. 이렇듯 곡성을 흐르는 섬진강은 요천과 만나기 전 남원 금지면과의 사이를 흐를 때는 순자강鶉子江이라 부른다, 여기에서 순은 메추라기 순鶉이다.

곡성은 호러horror스럽고, 미스터리mystery 하고, 서스펜스suspense에 오컬트occult 한 영화 ‘곡성哭聲’의 우는 소리 곡성과는 달리, 골 곡谷에 성 성城의 곡성谷城이다. 그러나 순천의 낙안읍성이나 고창의 묘양성과 같은 성은 없다. 다만 곡성읍의 동악산이나 옥과면의 설산, 오산면의 연산, 고달면의 깃대봉, 죽곡면의 봉두산, 목사동면의 삼산 등이 성이나 다름없고, 골짜기마다에서 시작한 물은 보성강으로 섬진강으로 심청이의 효심과 함께 흐르는 아름다운 고장이다. 곡성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