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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산포면 산제리 산제마을
김덕수 객원기자  |  najukd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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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1호] 승인 2024.06.23  22:3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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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신간회’ 지회장·초대 나주군수 김창용의 고향

식산 아래 마을 뜻하는 산저리로 불리기도교육열 높아 교육·공직자 많아
마을길·빈집·노후주택 정비로 더 행복하고 깨끗한 공동체 선도사업 선정
   
▲ 식산을 배경으로 마을 입구에 마을회관과 500년 넘은 느티나무 노거수가 평화롭게 자리하고 있다.
 
여름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내리쬐는 뙤약볕을 피해 이른 새벽 밭에 나온 주민들의 손길 덕에 고추가 제법 여물고 어린 들깨 모종도 자리를 잡았다. 담 너머 석류나무는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살이 차오르고 있다. 500년 넘은 느티나무 그늘 아래 걸음을 멈춘 노파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한 줄기 빗방울을 기다린다. 산포면 산제리 산제마을 모습이다.
 
조선시대 전국의 동·리와 인구상황을 정리한 ‘호구총수’(1789년)에 ‘식산 아래 마을’이란 뜻으로 남평현 등개면 산저리로 기록돼 있다. 1912년 간행된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 등포면 산제리로 기록된 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산포면 산제리에 속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찰공무원으로 36년을 근무하고 총경으로 퇴직한 서상준(70세) 씨는 “오래된 마을이다 보니 소방차가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골목길이 좁지만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성공적인 귀농·귀촌 선도마을을 만들고 싶다”며 “조금씩 양보하고 지혜를 모으면 모두가 더 살기 좋은 고향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의욕을 보인다. 산제마을 귀농·귀촌 선도마을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서 씨는 “주민들이 교육에 대한 열의가 높아 교육자와 공직자를 많이 배출했다”고 덧붙인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 ‘더 늦으면 결혼 못한다’는 부모님 성화에 못 이겨 26살에 결혼했다”는 최영금(72세) 씨는 “광주에서 30여년 살다 한전에서 퇴직한 남편의 탯자리로 돌아온 지 5년 째”라고 한다. 영암군 시종면이 고향인 최 씨는 “텃밭에 고추며 호박 등 키우는 일이 아직은 재미있다”며 웃는다.
 
봉황면 오림리가 고향인 김숙희(72세) 씨는 “산골짜기로 시집간다고 고향사람들 걱정이 여간 아니었는데 50년을 살다 보니 내집같이 편해졌다”며 “마을의 대밭이랑 탱자나무가 사라지고 길이 포장된 것 말고는 옛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고, 정미소가 생기기 전에 다도면 도래마을로 쌀 찧으러 다니던 일이 엊그제 같다”고 옛 일을 떠올린다.
 
   
▲ 산제정미소 맞은편 대나무밭에 청동기 시대 고인돌(동그라미)이 잡초에 묻혀 있다.
 
“할아버지가 물려주고 가신 집이랑 땅이 있으니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윤해백(36세) 씨는 “광주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살고 있지만, 퇴근하고 부모님이 농사 지으신 쌀이며 먹거리를 가지러 수시로 다녀갈 수 있어 좋다”고 한다.
 
봉황면 용전리가 고향인 이대순(94세) 씨는 “울력으로 방죽 파고 관에서 나눠준 밀가루를 받아 와 죽 쒀서 배고픔을 해결하던 때도 있었다”며 “마을에 먹는 물과 빨래하던 샘이 따로 있었는데, 언젠가 모두 메워 없어져 정확한 위치조차 가물거린다”고 아쉬움을 표한다.
 
“직장을 찾아 고향인 영광을 떠나 산제마을 사람이 됐다”는 이송재(60세) 씨는 “20여년 직원으로 일하다 인수해 직접 운영한 지 10년 됐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서 산제정미소를 운영하는 이 씨는 “일만 하며 살다 보니 결혼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며 씁스레 웃음짓는다. 
 
“나주호가 생길 때 살던 마을이 수몰돼 산제마을로 이사 온 지 50년 됐다”는 이금례(92세) 씨는 “다도면에서 산 25년을 포함해 평생 쌀농사만 지었다”며 “운동 삼아 마을 길을 다니며 사람들 만나 인사 나누는 게 유일한 낙”이라고 한다. 
 
‘고향 땅에 집 짓고 사는 게 꿈’이라는 윤계현(71세) 씨는 “초등학교부터 광주에서 다녔는데, 방학 때마다 시골집에 와서 농사일을 도왔다”며 “하루에 두 번 다니는 버스를 놓치면 남평에서 마을까지 1시간 가량 걸어오곤 했다”고 한다. “집 짓고 텃밭 일구려고 형한테 600평을 샀는데, 여러 이유로 아직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윤 씨는 옥수수가 자라는 밭에 콩을 심기 위해 땅을 고르고 있다.
 
등수리의 비닐하우스에 고추와 수박 농사를 짓는 박금문(81세) 씨는 “옛날엔 전부 손으로 일을 해야 했는데, 지금은 기계가 좋아져서 조금 편해졌다”며 “꽃을 좋아해서 집 주변을 꽃밭으로 만들어 놓은 집사람이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딸아이가 화초에 물 주러 다니고 있다”고 한다.
 
   
▲ 산제마을 초입에 태조 이성계의 4녀 의령옹주의 남편(부마) 호안공 이등의 사당을 알리는 홍살문이 당당한 위풍을 뽐내고 있다.
 
5년 전 나주시산림조합에서 상무로 퇴직한 이대호(64세) 씨는 “4학년까지 산포초등학교를 다니다 5학년 때 남초등학교가 생겼다”며 “20명 넘은 동창들과 한겨울 칼바람을 피해 물고랑으로 학교에 가고 ‘무등’이라 부르던 공터에서 공놀이하며 뛰어놀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광주광역시에서 살고 있는 이 씨는 “직장에 다니는 집사람이 퇴직하면 부모님이 남겨주신 집으로 돌아올 계획”이라고 한다.
 
1998년 목포대박물관이 펴 낸 ‘문화유적분포지도’에 따르면, 산제정미소 맞은편 대나무밭에 ‘청동기 시대 고인돌 20여기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으나 현재는 5기만 확인된다’고 기록돼 있지만 이마저도 잡초에 묻혀 방치돼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4녀인 의령옹주의 부마(남편)을 지낸 호안공 이등을 기리는 사당 ‘부조묘’를 알려주는 홍살문이 마을 입구에 있다. 
 
산제마을 출신으로 신간회 나주지회장으로 항일독립운동을 하고 산포면장과 초대 나주군수를 지낸 김창용(1893~1963)과 남평향교 전교를 지낸 서상백(88세) 씨가 있다.
 
귀농귀촌 선도마을 조성사업을 통해 마을안길과 빈집·노후주택 정비 등으로 ‘더 행복하고 깨끗하게 가꾸어진 공동체’로 다시 태어날 산제마을의 미래를 그려본다.  
 
 
   
 
인터뷰/ 김인철 산제리 이장
 
“중학 때 쌀 1되 종자돈 돼 친구들 모임 지속”
 
“올해 우리 마을이 나주시의 첫 귀농·귀촌 선도마을에 선정돼 성취감과 보람을 느낀다”는 김인철 이장(62세)은 “코로나로 중단된 ‘산제리민의 날’을 작년에 다시 시작해 앞으로 3년마다 주민과 출향민들이 함께 만나는 한마당 잔치를 할 계획”이라며 2년차 이장을 맡는 소감을 자신있게 이야기한다.
 
“중학교 다니면서 친구들이랑 쌀 1되씩 거둬 모임을 시작해 지금까지 만난다”는 김 이장은 “최근 모임에서 확인해 보니 그때 쌀이 종자돈이 돼 각종 애경사에 쓰고도 3천여만원이나 모았다”며 “열대여섯 친구들이 앞으로도 계속 매년 한번 씩 만남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한다.
 
벼농사와 함께 비닐하우스에서 고추농사를 짓는 김 이장은 “채소는 가격을 예측할 수 없어 열무를 키우다 갈아엎어야 할 때도 있었다”며 “비교적 안정적인 가격을 유지하는 고추만 재배하고 있는데, 농업과 농촌이 희망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꺼낸다. 
 
“선진지 견학으로 다른 지역에 가서 돌담과 디딜방아를 보존해 가꾸고 우물을 복원해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을 보고 느낀 바가 많다”는 김 이장은 “우리 마을엔 흙담이 많았는데 대부분 없애버렸고 우물도 모두 메워 없어져 역사가 사라졌다는 아쉬움을 갖는다”고 한다.
 
친구 소개로 화순군이 고향인 부인을 만나 1991년에 결혼한 김 이장은 “차분하고 말수 적은 집사람의 첫모습이 맘에 들었다”며 “지금까지 한결같이 성실하게 간호사로 직장생활을 하는 것만 봐도 따로 자랑이 필요 없다”고 서툰 웃음을 보인다. “사주쟁이들이 50 넘어야 자식을 볼 것이라더니 거짓말처럼 그렇게 됐다”는 김 이장은 “초등 3학년인 아들이 고기를 좋아해서인지 또래들보다 몸집도 크고 건강하게 자라줘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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