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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缺乏)이 때로는 길을 만든다 (1)
송용식 수필가  |  songys8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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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1호] 승인 2024.06.23  22: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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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용식 공학박사·건축기술사·수필가

외할아버지, 엄니가 급하게 쓸 데 있다고 5,000원만 빌려 오라 하네요.”

소년은 영암 읍내 버스터미널에서 서울행 차표를 끊었다. 호주머니에는 차표 끊고 남은 돈 3,300원과 형님집주소가 들어있었다. 집안 몰래 거짓말하고 서울로 도망가는 길이었다. 소년이 탄 버스는 오늘처럼 낯선 곳을 향했다. 3년 전 부산 가는 버스에 오를 때도 그랬다.

아버지는 성격이 강하고 포악스러웠다. 시도 때도 없는 폭언과 행패는 집안의 공포였다. 사소한 흠을 찾아 닦달하셨다. 한 걸음 떨어져 있는 것이 상책이었다. 체벌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6.25 사변 때 포병으로 참전해 5년을 복무했는데 전쟁 중 극한적인 상황을 자주 겪어 생긴 영향이 아닐까도 생각해 봤다. “x 장군 멜 녀석이 학교는 무슨 학교냐.”며 초등학교조차 못 가게 했다. 어차피 농사나 지을 녀석이 배워서 어디다 쓰겠냐는 것이었다. 그래도 초등학교는 마쳐야 한다는 어머니의 간절함이 졸업은 하게 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아버지 손에 이끌려 부산 국제시장에서 한복집 하던 이모 집으로 보내졌다. 아버지에게서 벗어난다는 홀가분함과 도시 생활의 불안감에 잠이 오지 않았다. 이모는 어린 그를 데리고 있기가 부담스러웠던지 진해 공군관사 매점 심부름꾼으로 보냈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남자 식모살이 같은 일이었다. 몇 개월간 그런 생활을 계속하다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다. 왜 다시 부산으로 왔는지는 기억이 없다. 어렸으니까.

이모가 다시 이발소 일을 소개해 주었다. 손님 머리 감겨주고 수건 빨아 볕에 말리는 일들이었다. 이발 기술을 배우고 싶었지만, 가위나 이발 기계는 잡지 못하게 했다. 이발소 옆 중국집으로 옮겼다. 손님이 먹고 간 테이블을 치우거나 주방에서 그릇 닦는 일을 했다. 가끔 배달도 나갔다. 주방에 달린 방에서 쪽잠을 잤다. 매점과 이발소, 중국집을 거치면서 했던 것은 허드렛일이었다. 제때 월급이 있을 리 없고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라는 시절이었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시골뜨기에 대한 대접이었다. 2년 남짓 지나 이마저도 여의찮아 다시 영암 고향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무서운 얼굴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변하지 않았다. 어떡하던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큰아들 형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공장에 다닌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차비와 당분간의 용돈이 필요했다. 훔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뿐이었다. 생활이 넉넉했던 외갓집 생각이 났다. 다행히 외할아버지가 별 의심 없이 날 믿어준 것이다. 어린 나이의 의도된 가출이었다.

동대문터미널에 내렸다. 버스 노선을 몰라 두리번거리던 그에게 어떤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어디 가느냐고 묻길래 형님 주소를 내밀었다. 자기가 가르쳐 준다며 따라오라고 했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별 의심 없이 뒤를 따랐다. 형님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서울 같은 큰 도시에서는 가출 청소년을 상대로 나쁜 짓 하는 어른들이 많다는데 참 고마운 분을 만난 것이다. 자기를 그냥 창신동 아줌마라고 부르라 했다. 4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는 얼굴이다.

형은 인형공장 재단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 인형공장에서 인형에 솜을 채워 넣는 일을 하도록 해주었다. 형은 형제가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불편했던지 다른 인형공장으로 옮겨주었다. 거기서 살뜰히 챙겨주던 누나를 만났다. “남자 하기엔 장래성이 없으니, 기술을 배워라.”라며 프레스 공장을 소개해 주었다. 규모도 작고 일감이 없어 시계 부속 공장으로 옮겼다.

그는 자동차 운전을 하면 안정적인 생활을 할 것 같았다. 열여덟에 1종 면허를 취득했다. 막상 면허를 따놓고 보니 위험한 운전보다 내 기술을 갖는 것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자동차 정비 기술을 생각했다. 앞으로 차는 계속 늘어나고 그만큼 수리할 차도 많아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정비사 자격을 취득하니 누군가가 귀띔을 해주었다. 폐차장에서 차를 분해해 다시 쓸만한 중고 부속을 골라내고 나머지를 고철로 처리한다고. 그래서 자동차 정비 기술을 배우려면 폐차장이 제일이라고. 자동차 작동 원리와 각 부품을 체험으로 배웠다.

그는 또래 아이들이 가방 메고 학교 가는 모습이 가장 부러웠다. 기름때 묻은 작업복과 장갑을 내려다보며 속울음을 울었다. 흔한 말로 주경야독을 시작했다. 2년 만에 중,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가능성에 희망이 생겼다.

규모가 있는 정비공장에 취업했다. 사장은 공장 운영이 어려워지자, 엔진, 판금, 도장 등 자동차 부문별로 임대료만 내고 독립적으로 운영하라고 했다. 그는 자동차의 핵심이랄 수 있는 엔진과 배터리 분야를 맡았다. 돈을 벌었다. 정비소에서 가까운 땅 200평을 임대해서 독립했다. 27세 때였다.

종업원에서 사업주가 되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7시부터 공장 문을 열었다. 수리 차량이 밀려 제때 밥을 먹지 못하거나 건너뛸 때가 많았다. 불규칙한 식사로 위장병을 달고 살았다. 내 사업으로 돈을 번다는 즐거움에 소소한 병치레는 무시하고 지나갔다.

어느덧 나이 서른, 결혼해서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주변 사람들 중매로 선을 보기 시작했다.

-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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