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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읍성과 나주목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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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1호] 승인 2024.06.23  22: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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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순(전 나주시청 문화예술과장, 학예연구관)

나주읍성 내에 존재했던 각종 건물들은 조선시대로 들어오면서 읍성의 중심부에 위치한 객사 금성관을 중심으로 재편되어 갔다. 이러한 사실은 성내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법륜사와 금륜사의 폐찰과 더불어 이러한 절터에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섰던 것으로 추측된다. ‘서문안석등이 있었다고 추정되는 서성문 안쪽 도로는 천여년 동안 기능하면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동헌을 중심으로 각종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도시경관이 구축되었다. 이유인(李有仁) 목사(14741478)는 객사인 금성관과 정문인 망화루를 신축하고, 김춘경(金春卿) 목사(14791481)는 객관의 동헌인 벽오헌(碧梧軒)을 건립하였다. 이후 김성일(金誠一) 목사(15831586)는 지금은 메워버린 옛 나주5일 장터에 있었던 인덕지(仁德池)를 개착하여 읍성 내 배수시설 설치와 더불어 나주읍성의 경관을 조성하였다.

당시의 나주읍성 내 지명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1425년의 나씨형제 절부(節婦)에 대한 기록으로 보아 현재의 나주천주교회 일대가 조선초기에는 북장리라 불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절부리 동쪽 옛 나주오일 시장 부근은 동작리(東作里)로 불렀다. 이곳에는 인덕지란 큰 연못이 있었다. 훗날 이곳은 나주의 동사정(東射亭)인 인덕정이 있었다가 현재 인덕지는 없어지고 나주오일 시장터로 변했다.

2012년 금계매일시장과 오일시장을 인근에 만들면서 현재는 빈터로 남아있다. 인덕정은 남산시민공원으로 이전하여 현재까지 맥을 잇고 있다. 이외에도 고려 조선시대의 나주목 관아를 중심으로 전해지고 있는 보물 제364호 나주서문안석등에는 중흥리(中興里)란 지명이 보인다. 건립 당시인 1093(선종10)의 지명으로 석등이 있었던 서내동과 인근지역이 중흥리가 아닌가 한다.

이상과 같이 나주목의 치소 구축은 금성관을 중심으로 인접 지역에 각종 관아 건물들이 건립되었다. 현재의 금계동·과원동 지역이 해당된다. 읍성 안에서 생활하는 향리와 백성들은 성의 서쪽과 북쪽에 살았다.

이와 같이 조선 초기 나주읍성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경관의 형성은 국가의 지배체제 구축이나 지방행정의 집행을 위한 공간의 구축에 있었다면, 조선 후기의 도시형성은 새로운 건물의 건립보다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터의 조성이나 사람이 살지 않던 곳으로의 새로운 거주지 형성 등을 볼 수 있다.

먼저 관아 건물의 신축을 보면 우복룡(禹伏龍) 목사(16021604)가 동헌(제금헌)의 정문인 정수루의 건립이 있었으며, 정치호(鄭之虎) 현감(16501654)에 의해 사마교비가 개수 되었다. 윤흡(尹潝) 목사(17401743)는 금성관의 개수와 망화루를 중건하였다. 민백남(閔百南) 목사(17531755)는 정수루를 보수하고 이명중(李明中) 목사(17751776)는 금성관 및 성지를 개수하였다. 관아건물의 개보수와 함께 나주읍성 내에는 현재의 금성동 지역에 나주읍내장이 남문밖에는 남문외장이 들어서면서 상업의 발달을 가져온다. 이러한 읍성내의 새로운 지역 개발은 기존의 중심축을 유지하면서 여전히 서북쪽에 사람들이 밀집하여 살고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1423)에 나타나는 나주목의 호구수는 1,089호에 4,026명이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물론 이 숫자가 당시 나주목의 전체인구를 말하는 것이지만 360여년 후인 1789(정조13)에 작성된 호구총수에 나타나는 나주읍성이 포함되는 동부면과 서부면의 현황을 보면 동부면은 1,356호에 2815명이, 서부면은 800호에 2,823명으로 5,638명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동부면·서부면이 호수와 관할 리의 범위는 다르지만 인구수는 비슷함을 볼 수 있다.

동부면의 리를 살펴보면 토계촌·우변리·내도청리·좌변리·외도청리·허문리 남산촌·지점리·동수촌·후청리·루하촌·중촌·북문리·고동촌·과원촌·창촌 등 16리이다. 서부면은 박정리·명당리·서문내·주사장동·천변·금계동·수구촌·교촌·서원촌·영촌·성저·대안·칠전·율정·마재·연화·연수·석현·신기·천암·장흥·유산·보현·제룡 등 24개 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동·서부면의 40개의 리 가운데 읍성을 중심으로 편재된 리를 보면 서부면의 리가 동부면의 리보다 많이 차지하고 있다. 읍성내의 번화가인 관청 거리와 주거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외의 지역은 현재의 성밖 지역인 대호동과 송촌동 등 나주읍성의 북문 밖 지역으로 편재되어 있다.

동부면 지역의 리는 과원촌 창촌 남산촌 등이 성내의 지역이며, 나머지 대부분은 현재의 옛 나주역 부근과 인근의 토계리가 해당된다. 이러한 도시의 구획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서부면보다는 동부면 지역이 일인에 의해 개발되는 현상을 나타내게 된다. 일본인은 이미 조선인이 점유하고 있는 지역을 피하고 호남선 철도역 주변을 개발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나주읍성의 동점문 안쪽으로는 논이 펼쳐져 있고 서쪽인 서성문 주변과 읍성의 중심부에는 관청과 민가들이 밀집되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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