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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도 바람도 죄다 쉬어가는 추풍령秋風嶺역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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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0호] 승인 2024.06.09  22:4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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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채석 기행작가

나만 좋다고 내 몸을 너무나 무리하게 사용한 건 아닌지 때론 미안함마저 있다. 그래서 월조도라는 둥지 없는 새가 밤새 나뭇가지에서 추위에 떨면서 날이 새면 필히 둥지를 틀겠노라 작심하지만, 동이 트고 따뜻한 햇살이 깃털 위에 내려와 부서지면 언감 둥지는 홍수에 떠내려 보내듯 흘려보내고 다시 밤이 되면 나뭇가지에서 떨어야 하는 족속이랄까. 冊을 좀 멀리해야지 하고 마음먹지만 돌아서는 순간 冊이 나도 모르게 손에 쥐여 있다. 

세간에 약물이 아니더라도 게임이나 드라마 시청도 지나치면 중독이라 하듯 취미도 너무나 빠져들면 그도 중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일었다. 허나 읽어야 할 冊이면 당장에라도 서점으로 달려가 사서 읽어야 직성이 너그러워진다. 이에 신라의 명장 김유신은 자신의 말이 천관녀의 집으로 향했다 해서 술이 깬 후 말의 목을 단칼에 베었다지만, 나는 나를 서점으로 데려다 놓은 내 신발을 도무지 내팽개칠 수가 없다.
 
그만큼 冊에 관한 욕심이 과하다. 누가 나에게 뭔가 맛있는 것을 먹었다느니 해외여행을 몇 개국 다녀왔다느니 하는 따위의 말은 귓가에 맴돌기도 전에 부서진다. 반면에 冊에 관한 이야기는 칠월에 익어가는 청포도 송이처럼 알알이 뇌리에 가득하다. 이유는 문장다운 문장을 읽을 때면 그리도 맛이 있다. 또한 어떤 그림이나 풍경에서 얻어지는 독특한 개성에 빠져들듯 오래 익은 술과 같은 맛에 취하곤 한다.
 
그런 연유 어제도 읽었고 오늘도 읽었다. 내일도 손에서 바스러지는 종이 소리와 함께 할 것이다. 이는 경박함이 아닌 지적인 호사다. 아니다. 참으로 힘든 중노동이다. 이래서 실지 년 중 冊을 한 권도 안 읽고도 재미있고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인데 나는 분명 아둔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읽고 또 읽는 것은 폐선처럼 녹슨 철길과 같이 정신이 부식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라고 기왕 남아로 태어난 건 사실이고, 여기에 다섯 수레에 실을 만큼의 冊을 읽고도 넘쳤다. 이로 조선 영조와 정조의 시대 탑골에 모여 시문과 선진 사상을 논하던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 백동수 등 백탑파白塔派 중 冊을 읽는데 만 열중하여 세상 물정에 어두워 바보라 부르던 간서치看書痴 이덕무를 존중한다. 실은 닮고 싶은 마음이다.  
 
닮고 싶은 마음도 분명 욕심일 수 있겠으나 지적 호기심을 꺾거나 말릴 수 없는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늘 나를 조정한다. 멈추거나 끝내지 말라고, 서성이거나 머뭇거리지 말라고, 사계절이 순환하고 이 행성이 자전하듯 돌고 도는 독서는 끝이 없어야 한다고 믿어왔다. 이는 한용운의 詩에서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와 같은 맥락이다. 타고나면 재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잿물로 태어나는 거와 같다.
 
잿물이 인간이 입은 옷의 때를 씻어내듯 독서는 육신의 내면에 찌든 때를 씻어내는 하나의 교양과 양식의 원천으로 지식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나’는 冊 밖에 모르는 지식인의 삶에서 벗어나 크레타 섬에서 철딱서니 없는 조르바를 통해 인생의 행복과 완벽한 자유를 구가하며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듯, 나도 나에게 묻는다.
 
굴곡진 삶의 둥글고 원만한 변곡점에서 冊도 좋고, 독서도 좋고, 교양도 좋지만 결과적으로 지식이라는 굴레에 갇혀있는 것이 과연 인간다운 삶인가? 주변인과 소통을 접어두고 혼자만 만족하면 그것도 행복이라 할 수 있는가? 라는 점에서 오죽했으면 친구들이 고지식한 샌님에게 “제발 冊을 좀 멀리 하고 이 풍진 세상을 즐기면서 편하게 살아라!” 했을까 하는 말이 자유인 조르바의 말인 양 이제야 귀담아 들려온다.
 
이렇게 시골역이며 간이역이며 도시적이지 않은 조그마한 추풍령역에서 구름도 자고 가듯 우리 가요에 대한 나의 인식과 바람도 쉬어 가듯 책과 독서에 대한 욕심을 돌아다보는 일이 중요했다. 여행은 눈에 뵈는 것만 보면서 맛있는 거 먹고, 카메라의 셔터만 눌러대는 것이 아니다. 관조觀照하듯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이 여행이다. 이렇듯 돌아보지도 않으면서 여행을 통해 마음을 비웠다느니 하는 건 흰소리에 불과할 뿐이다.
 
아무튼 흰소리 같은 이야기지만, 조선시대 선비들이 과거급제 등용을 위해 한양 길에 오를 적에 소백산 자락의 죽령을 넘으면 죽을 쑤고, 추풍령을 지나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는 속설로 인해 경사스러운 소식을 전해준다는 문경새재로만 넘었다 하니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세상은 변해 남덕유산의 육십령고개도 통영대전고속도로가 대신하듯 추풍령도 경부고속도로가 대신한다. 세상은 늘 그렇게 변한다.
 
늘 그렇게 변하는 세상에서 나만 변하지 못하는가? 하고 자문해 보는 게 여행이다. 핫 플레이스와 같이 너무나 유명 짜한 곳이나, 맛 집이나 쫓는 건 여행이 아니라 관광이라고 감히 말하며 항명륜 詩 <추풍령을 넘으며> 떠올려본다. “추풍령 고개 너머/가던 길 잠시 멈추고//숲 속의 발자국 소리/기침 소리를 듣는다//그 누가/오고 갔는지/먼 옛길의 이 흔적들.//쑥물 같은 세월 속…/그 어느 詩人의 숨소리//바위틈/돋아난 풀잎/풀잎피리 혼자 불며//한 세상/살다 간 사람들/발자국을 듣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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