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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북구 (사)한국농어촌관광학회 수석 부학회장 |
나주 읍성은 오방색(五方色)을 설명하기에 좋다. 오방색은 오방정색이라고도 하며, 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의 5가지 색으로 황(黃)은 중앙, 청(靑)은 동(東), 백(白)은 서(西), 적(赤)은 남(南), 흑(黑)은 북(北)을 뜻한다.
이것을 나주 사대문에 적용해 보면 동점문은 청색, 서성문은 백색, 남고문은 적색, 북문은 흑색에 해당되며, 사대문의 중앙에 있는 금성관은 황색에 해당된다. 황색은 세계의 중심 국가(中國)라고 자칭하는 중국에서 전통적으로는 황제(黃帝)의 고귀, 광명, 희망을 상징하는 색으로 사용되어왔다.
중국에서 황색은 황제가 입었던 황룡포(黃龍袍), 명과 청 왕조의 궁궐인 자금성(紫禁城)의 황금색 기와 등 황제와 관련된 한정적인 색으로 사용되었다. 이에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왕들이 대부분 황색의 옷(黃龍袍)을 제외한 색깔의 옷을 입었다.
조선 시대까지 궁궐에서 황색 옷의 착복은 제약을 받았으나 금 장식물, 금박, 금사 등 황색은 고귀한 색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직물의 염색 또한 황색과 초록색으로 염색하기 위해 치자, 괴화, 황벽, 황금 등 황색계 염료의 염료추출과 염색 기술이 발달되었다.
황색계 염료 중에서 치자는 우리나라 전통 음식에서 황색을 내는 데 많이 사용되었다. 군량미 변질을 막기 위해 쌀을 치자 물에 담근 후 살짝 쪄서 보관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빈대떡이나 전 등 음식을 노랗게 물들이는 데도 많이 사용되어왔다. 치자는 독성이 없고, 저장성과 기호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치자는 특히 나주에서 음식에 많이 사용되었다. 과거 전국 최대의 단무지 생산지였던 나주의 치자염색 단무지는 곳곳에서 천연색소 단무지로 판매되었다. 계란이 귀하던 시절, 나주에서는 제사상에 올릴 생선전에 달걀 대신 밀가루에 치자 색소를 섞어 사용하기도 했으며, 나주 곰탕에도 사용되었다.
나주 원도심에 있는 H곰탕집은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비빔밥을 곰탕과 함께 팔았다. 이 곰탕집에서 비빔밥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곰탕보다 더 많이 팔렸다. 비빔밥의 구성은 미나리와 같은 채소와 나물류를 아래에 깔고, 소고기 육회에 계란 노른자, 고춧가루를 올려놓았다.
고추장이 아닌 고춧가루를 사용한 것이 독특했으며, 여기에 계란 흰자를 제거한 노른자만 사용한 비빔밥은 고춧가루 및 쇠고기의 빨간색과 노른자의 황색이 조화를 이루면서 특별함을 더했다. 당시 이 비빔밥은 인기가 매우 좋았으며, 그 인기만큼 계란 노른자를 사용하고 남은 흰자가 많았다.
H곰탕집에서는 다량의 계란 흰자 용처를 고민하다가 치자 색소를 첨가해 곰탕 지단에 활용했다. 지단(鷄蛋)은 달걀을 흰자와 노른자로 나누어 따로 부쳐낸 뒤 썰어낸 것으로 국이나 찜, 잡채, 냉면 등 한국음식에 고명으로 쓰이거나 김밥의 재료로도 활용되는 것인데, 노른자로 만들었을 때 눈에 더 잘 띄고 예쁘다.
H곰탕집에서 계란 흰자에 치자색소를 첨가해서 지단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예로부터 나주에서는 계란전이나 생선전에 치자를 활용한 문화가 폭넓게 확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계란 흰자를 치자로 노랗게 염색해서 나주 곰탕 지단에 사용한 사례처럼 치자는 식용이 가능한 색소이다. 천연염색에서는 치자처럼 식용이 가능한 색소가 많이 사용된다는 점에서 친환경적인 공통점이 있는 가운데, 나주는 오방색에서 동쪽을 상징하는 청색인 쪽 염색으로 유명하고, 음식은 중앙을 상징하는 황색이 사용된 전통이 있다.
이렇게 스토리를 간직한 나주의 염료와 천연염색, 색소와 음식문화가 나주 문화와 산업 발전에 다양하게 활용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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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자 색소가 사용된 생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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