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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도 바람도 죄다 쉬어가는 추풍령秋風嶺역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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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9호] 승인 2024.05.27  01: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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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채석 기행작가

한마디로 독재의 어둠을 탈피한 민주화에 따른 강력한 자기주장이랄까. 명암의 대비가 확연히 극명했다. 억압과 압제 속의 앞 세대는 어떤 열망 속에서도 박인환의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하며, ‘세월이 가면’으로 귀결되는 명동의 샹송과 같은 감성과 낭만을 노래했다면, 지금의 뒤 세대는 뛰고 열광하고 환호하며 즐거움과 쾌락만을 추구하는 것 같았다. 음악의 양극화다.

흐르는 물처럼 음악도 음악이지만 의류나 장신구도 메이커나 명품, 영화도 블록버스터, 전화기도 그저 걸고 받는 정도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 뇌의 일정 부분을 지배하는 등 생활 속의 문화는 물결이 굽이치는 것처럼이나 다양성으로 흐른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강점기와 전쟁, 경제개발의 환경 속에 한 줄 노래로 시련과 애환을 달래던 시절 어른들의 마음에 포크송이나 보컬그룹의 사운드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알았다. 급속히 변해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않고, 언제나 변방에서 우는 새처럼 홀로 독야청정하고 고고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하여 고대로부터 처음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품위를 지키는 클래식의 마음을 견지는 하되 나름 즐거워서 부르는 노래에 흥을 더하지는 못할망정 깨지는 않고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만 함께 물리거나 껴서 돌아가는 세상의 일원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품위의 위상만을 쫒는다면 기실 정통가요라는 트로트풍의 노래뿐이겠는가. 그렇다고 너무나 유행만을 좇는 것은 온 나라가 울긋불긋 조각조각의 화려한 아웃도어 물결로 경박한 것 또한 사실이고, 지나칠 정도로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고 있는 것도 그다지 보기 좋은 그림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너무나 쉬운 시류에 편승하지 않으려고 애써 노력했고 정도를 분별하며 살아온 것 같다. 비록 남 보기에 꼰대 같지만.
 
길을 거닐다가 자연을 바라보면 들에는 꼭 풀만 있어야 하고, 숲에는 나무만 있어야 하는 것이 자연이라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듯 세상을 사는 일이 나만 바르고 품위 있게 산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자연의 이치와 같이 모든 것에 유연성을 담아 조화롭게 바라보는 지혜와 오케스트라의 협주처럼 여럿이서 하나가 되는 소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K 팝이라는 음악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느꼈다.
 
세월 따라 불러온 노래로 인해 즐거웠고 슬플 때 마음의 치유를 얻어 온 것은 부인할 필요조차도 없는 사실이고, 노래는 우리의 감성을 한이나 흥으로 취한 길동무와 같이 없어서는 안 되는 예술의 한 분야로 함께해 왔다. 
 
그런 노래가 이제는 듣고 느끼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변했다. 이점이 못마땅했다. 실상은 척박한 땅에서도 뛰고 즐거워하는 마사이족의 모습처럼 열정으로 환호하는 젊음의 모습이 더 부러웠다고 고백해야 옳다. 이로 정체성에 혼돈을 줄 정도로 이해하지 않으려 했던 발라드나 랩, 립싱크의 댄스음악까지도 최소한 싫어하지는 않을 것 같다. 굳이 노래가 아니더라도 함께 호흡하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는데 부족했던 내 소양을 넓히는 좋은 계기가 되었고, 잃어버린 채널 권에 대한 진정한 해방이었다. 이렇게 추풍령역과 같은 사람이 뜸한 시골 간이역에 서면 뜻하지 않은 생각들이 흐르곤 한다.
 
또 다른 생각은 지금 내 삶은 어디까지 왔나? 아니면 어디까지 왔을까? 하는 궁금증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신의 영역이겠지만, 그러함에도 늘 궁금하다. 이유는 부질없는 것에 대한 애착이나 탐착을 버리고 하나둘 정리해야 하는 마음에서 자유롭지 못한 까닭이다. 개중에서도 내 서가書架에 가득한 친구 또는 하나하나 손때가 묻은 동반자로 같이 함께해 온 冊을 어떻게 헌신짝 버리듯 하여야 하는가 하는 마음이 깊다. 
 
요즈음 세태를 보면 아이는 안 낳아도 개는 키우는 정서인지, 유행인지는 모르겠으나 오죽이나 출산율이 낮으면 유아복업체들이 강아지 옷을 제작하는 반려동물 패션사업으로 업종을 전환하고 있다니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그러나 개의 입장에서는 씩 웃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AI가 인간의 능력을 조롱하는 가운데 앞으로의 미래는 아이 울음은 사라지고 견犬의 세상이 되는 건 아닐는지.
 
예전에 박완서 선생의 작품 중에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낸 자전적 소설이다. 유년으로부터 대학생이 될 때까지의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그려낸 소설로 일제 강점기가 저물고 해방을 거쳐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우리 현대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여기에서 도무지 풍족하지 않았던 시대에 ‘그 많던’이라는 언어가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동안 삶을 살아오면서 내 마음의 풍요는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돌이켜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웃자란 벼가 고개 숙여 자신을 키워준 줄기를 내려다보듯 지난한 삶을 되돌아보는 일도 때론 필요한 것 같다. 그것은 거울에 육신의 얼굴이 아닌 내 영혼의 마음을 보는 것으로 고마움과 부끄러움이 서로 얽혀 후회가 무진을 감싸는 안개처럼 스멀스멀 엄습해 올 때 혼자 볼은 붉은 수밀도水蜜桃가 되었다.
 
그것은 누군가를 위한 삶이 아니라, 자신만을 위한 지나친 욕심에서 비롯한 것으로 스스로를 冊먹는 하마라 칭할 정도로 冊과 독서에 대한 과욕이 앞섰다. 그러다 보니 나이 탓도 있겠지만, 어깨가 아픈 건 당연지사고 눈을 너무나 혹사시킨 것 같다. 그래서인지 주변인들이 이르기를 “이제는 冊을 좀 멀리 하고 이 풍진 세상을 한량처럼 즐기면서 편하게 살아라!” 하는 소리가 대남방송인 냥 왕왕거리며 귀가 따갑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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