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연재 | 수필
운명처럼 인연이 (1)
송용식 수필가  |  songys819@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879호] 승인 2024.05.27  00:55:24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 송용식 공학박사·건축기술사·수필가

버스가 자갈길을 달렸다. 열어 놓은 창문으로 부연 먼지가 들어온다. 식은땀이 나며 심한 멀미가 왔다. 등 떼밀 듯 장흥 가는 차표를 끊어준 누나를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먼 산과 낯선 들판, 여러 개의 마을을 지나며 기억조차 가뭇한 할머니와 아버지를 떠올려 봤다. 아버지가 매우 편찮으시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았다. 소년은 앞날에 대한 불안감으로 온몸이 떨려왔다. 아버지와 할머니는 마을회관 모퉁이 단칸방에서 살고 계셨다. 어린 나이였지만 여기 살림살이 형편을 눈치로 알 수 있었다.  

중풍으로 누워계신 아버지는 소년을 보자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셨다. 너 왔냐는 몸짓이다. 등 굽은 할머니는 “아이고 우리 새끼 왔냐.” 하시며 뭔가를 챙겨주시려는 듯 일어나 나가셨다.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다. 부엌 항아리 물을 바가지 체 들고 벌컥벌컥 마셨다. 담벼락 아래 검붉은 맨드라미도 여름 뙤약볕에 지쳤는지 고개가 무겁다. 여덟 살 소년이 눈앞의 현실을 오롯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렸다.
 
소년은 여수에서 2남 4녀 중 막둥이자 늦둥이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42세 되던 해였다. 18살 차이의 엄마 같은 큰누나와 14살 차이의 형님, 그리고 누나 셋이 더 있다. 고추 행상을 하던 아버지가 중풍을 맞으면서 집안이 기울었다. 아버지는 가족을 여수에 두고 할머니가 계시는 장흥으로 떠나셨다. 생계를 끌어가던 어머니조차 소년이 여섯 살 되던 해 육 남매를 남겨둔 채 갑자기 돌아가셨다. 큰누나가 엄마의 역할을 떠안았다. 천덕꾸러기가 된 소년은 입 하나라도 줄이자는 누나들의 뜻에 따라 장흥행 버스를 탄 것이다. 
 
할머니는 새벽부터 남의 집 논밭으로 날 일을 다녔다. 밤이 되면 나와 아버지가 들을세라 안으로 신음을 들이켜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듯했다. 그런 밤은 유난히 길었다. 소년은 다른 애들보다 늦은 아홉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이듬해에는 그나마 의지하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아버지와 소년만 남았다. 남은 것 모두는 소년이 감당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소년 가장이 된 것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읍사무소에 밀가루 배급을 타러 갔다. 어린애는 소년밖에 없었다. 밀가루 포대를 둘러매고 돌아오는 이십 리 길은 갈 때보다 더 멀었다. 밀가루 풋대 죽을 끓여 아버지 입에 넣어 드렸다. 반찬을 만들 줄 몰라 이집 저집 기웃거리며 김치를 얻어왔다. 마을 사람들이 조금씩 힘을 모아 주셨다. 학교 다녀오면 재 너머에서 땔감 해오고 동네 샘터에서 물 길어 오는 것이 일상이었다. 소년이 육학년 때 중풍으로 누워있던 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누나네 입 하나 줄인다고 떠나왔던 그 신작로 길. 버스는 다시 여수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사이 형과 누나들은 각자 입을 해결하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나를 기다리는 큰 누나는 이혼하고 어린 조카들을 키우며 채소 장사를 하고 있었다.
 
중학교 진학은 엄두를 못 내었다. 목사님이 운영하는 고등공민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가난한 아이들이 다니는 비정규학교였다. 운명 같은 인연의 줄을 잡았다. 이마저도 다행이라 싶어 즐겁게 학교생활을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형편이 못 되는 동기들은 검정고시에 관심이 없었다. 고등학교 갈 욕심에 열심히 공부해서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그런 나를 보고 큰누나는 철공소에나 다닐 일이지 언감생심 무슨 고등학교냐며 영 못마땅해했다. 철공소에 취직하더라도 고등학교만은 졸업하고 싶었다. 며칠간 큰누나를 졸라 실업계 고등학교 기계과에 입학했다. 간절함이 누나를 무너뜨린 것이다.
 
중학 과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힘들고 어려웠다. 1등을 해서 장학금을 받아야 했다. 고등공민학교 출신이라고 무시당하지 않으려 학교 간부를 도맡아 했다. 그동안 살아오며 가슴에 쌓여 있던 열등감이 자신도 모르게 긍정의 에너지로 나타난 것 같다. 어떤 일이든 적극적인 학생으로 변해 갔다.
 
대학교에 꼭 가고 싶었다. 성적도 좋았고 필요한 자격증도 취득했다. 입학금과 등록금이 문제였다. 내가 다닌 개척교회 목사님께서 운명처럼 길을 찾아주셨다. 서울에 가난하지만, 실력이 있으면 다닐 수 있는 국립 기술전문대학이 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 길도 그의 가능성을 눈여겨본 목사님이 나섰기 때문이리라. 등록금 5만 원인 전문대학과 인연을 맺었다. 군대 갈 때까지 형님 집에서 얹혀살 수밖에 없었다.
 
군대 제대하고 형님 집에서 다시 더부살이하며 복학을 준비했다. 형님 형편이 좋지 않다 보니 형수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서 졸업 이후 처음 여수고등공민학교 동기동창회가 있었다. 남녀 20여 명이 참석했다. 첫 모임치고는 꽤 많이 모였다. 그날 유독 내 눈에 들어오는 여자가 있었다.
 
- 다음 호에 계속 이어집니다 -
송용식 수필가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운명처럼 인연이 (2)
2
최정기 의원, 나주투데이 언급하며 동료의원 ‘프락치’ 취급
3
<속보> 김관용 시의원, 나주시의회 의원실 압수수색
4
47. 봉황면 죽석 1리 구석마을
5
부끄러움을 모르면 못 할 짓이 없다
6
김관용 시의원 압수수색 2보
7
우리 조상님들도 즐겨 먹었던 우리 음식 ‘회’
8
카페, 강물 위에 쓴 시
9
'잦은 민원' 나주혁신도시 무료 공영주차장 사라진다
10
한형철·박성은 의원 ‘악성민원 근절 위한 대책 마련 촉구’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전남 나주시 빛가람로 685 비전타워 206호 나주투데이  |  대표전화 : 061)334-1102~3  |  팩스 : 061)334-1104
등록번호 : 전남 다00334   |  발행인 : 윤창화  |  편집인 : 이철웅  |  e-mail : njt2001@hanmail.net
Copyright © 2013 나주투데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