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6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추한 말 선정위원회'는 1005년의 추한 말로 '의원 세비조정'을 뽑았다.

시민에게 해를 끼치면서 무언가를 인상할 때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조정'이란 말을 쓰는 경향이 늘고 있는 가운데 이뤄진 선택이었다.

우리 정부도 언제부턴가 세금이나 요금을 인상할 때면 '합리화'라는 말을 쓰고 있다. 또 '현실화'라는 표현도 종종 쓴다. 이들 모두 독일의 기준에 따르면 추한 말에 속한다.

국민을 속이려는 의도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이런 말도 처음 쓸 때뿐이지, 자꾸 쓰다 보면 대부분의 국민들은 숨은 뜻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아예 바로 '인상'으로 표현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일상적으로 우리가 쓰는 말에도 이런 축소나 과장이 많다. '엄벌'이 대표적인 예. 죄를 지은 만큼만 벌을 주면 될 텐데, '몹시 엄하게' 벌을 준다면 그건 법 이외의 요소가 작용한 것이고, 그렇다면 공정하게 법 집행을 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 아닌가.

'엄격하게 법 집행을 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더라도, 그렇다면 다른 사례는 엄격하게 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게다가 '시범 케이스'라는 말에서는 '한 X만 걸려라'며 이를 가는 모습이 연상돼 섬뜩하기조차 하다.

'일벌백계' 역시 비슷한 어감이어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폐기해야 할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오십보백보' 조금 낫고 못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음을 이를 때 흔히 쓰는 말이다.

그러나 오십보와 백보가 같이 처벌받는 사회는 제대로 된 사회가 아니다. 백보는 오십보의 배가 되는 양이니 오십보는 오십보만큼, 백보는 백보만큼 대가를 치르는 게 정상이다. '그 놈이 그 놈'이라는 냉소주의로는 아무것도 나아지게 할 수 없다.

(이진원의 '우리말에 대한 예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