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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의 유배지 소재동?
김종순  |  njt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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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8호] 승인 2024.05.13  00: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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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순 전)나주시청 문화예술과장 학예연구관

호가 삼봉인 정도전이 나주로 귀양 온 사실에 대해서 많은 분이 알고 있다. 그가 남긴 문집인 『삼봉집』의 내용의 상당 부분은 나주에서의 귀양살이 과정에서 저술된 내용이다. 복원된 나주읍성의 동문인 동점문 1층 루안에는 정도전의 ‘소재동기’와 ‘제나주동루’라는 두 편의 글이 현판으로 새겨져 걸려있다. 봉황 정씨 문중에서 동점문 복원을 축하하고 조상인 정도전의 자취를 기리기 위해 문중에서 제작하여 걸었다. 

나주의 풍속 · 형승 등에 대한 옛사람의 평가가 기록된 『동국여지승람』 나주목조를 살펴보면 “나주 사람들은 순박하여 다른 생각이 없이 농업에 힘씀을 업으로 한다.” “남방의 거진이다” “금성산은 단중하고 기위(奇偉)하여 동북에 웅거하였으니 나주의 진산이다.” 등의 평가는 모두 정도전의 글에서 나왔다고 쓰여있다. 
 
이처럼 나주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하였던 정도전의 귀양지는 어디일까? 이우성 교수가 쓴 「거평부곡에 대하여」란 논문 역시 정도전의 ‘소재동기’란 글을 가지고 쓴 논문이다. 기존의 고려시대 향소부곡이 천민집단이라는 설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한 유명한 글이다. 이처럼 고려말 나주로 귀양 와서 쓴 정도전의 많은 글은 나주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1980년 말 봉화정씨 종보 편집장을 맡아서 일하시는 분이 영산포의 한 공장의 책임자로 오게 되자 이 기회에 선조인 정도전의 발자취를 찾고자 하다는 계기가 본격적으로 소재동이 어디인지 찾게 된 단초가 되었다. 
 
소재동은 정 선생이 방문하기 전부터 필자가 관심을 갖고 찾고자 했던 동네로 어느 날 우연히 나주정씨 족보(1873년 간행)를 탐독하다가 소재동이란 지명을 발견하고 현지를 확인하여 소재동이 지금의 다시면 백동마을 좌측 나주정씨 선산이 있는 계곡이라는 것을 알았다.
 
1375년 정도전이 이인임과 의견이 상반되어 귀양 온 나주목의 속현인 회진현에 있던 거평부곡의 소재동은 현재의 나주시 다시면 운봉리에 위치한다. 회진현은 백제 때는 두힐현으로 통일신라 757년(경덕왕 16)에 회진으로 이름을 바꾸고 나주에 속해 그 후 고려 때까지 존속되다가 조선 초기에 직촌화 되었다. 회진현에 속했던 거평부곡은 현재의 나주군 문평면 일대로 삼봉 선생이 계셨던 소재동은 현재 문평면사무소에서 동쪽으로 상당히 떨어진 곳으로 1983년 나주군 다시면 소속으로 바꿔 운봉리 백동마을 서쪽 편 산고랑에 위치한다. 
 
소재동에 대한 기록은 삼봉 선생이 쓰신 소재동기가 최초이나 이곳이 어디인가를 알려주는 기록은 나주정씨 정식(1407~1467)이 지은 나결 선생의 영모정기에 나온다. “거평은 옛 현이다. 현의 동쪽 1리에 집이 있는데 나결 선생이 양성하던 곳이다. 그 남쪽으로 십리에 백산(백룡산)의 기슭에 동네가 있는데 소재동이다. 이곳은 내가 시묘한 한곳이다….” 이 글의 내용을 보면 경무공 정식이 아버지인 자신(自新)의 묘소 근처에 초막을 짓고 시묘했던 곳이 소재동이라 기록하고 있다. 
 
또한 나주정씨 족보에 “자신의 묘는 주의 서쪽 백용산 소재동에 있고, 식의 묘도 소재동에 있는데 계좌이다.”라고 적혀있다. 현재 나주정씨 세장산으로 정자신, 정식을 비롯하여 많은 분이 모셔져 있는 나주시 다시면 운봉리 나주정씨 세장산과 문답 622번지 일대가 소재동으로 확인된다.
 
정도전이 적접 쓴 ‘소재동기’에 그려져 있는 마을의 모습을 보면 “동네 주위가 모두 산인데 북동쪽에는 중첩된 봉우리와 고개들이 서로 잇달았으며, 서남쪽에는 여러 봉우리가 낮고 작아서 멀리 바라볼 만하다. 또 그 남쪽은 들판이 평평하고 숲속에 연기가 나는 초가 10여 호가 있으니 이는 바로 회진현이다.”
 
이는 현재의 운봉리 소재동의 모습과 일치하고 있는데 북동쪽으로 중첩된 봉우리는 나주의 진산인 금성산으로 연결되는 봉우리이며, 남쪽의 연기 나는 곳이 회진현이라 한것도 이곳에서 바로 회진현(지금의 회진마을)을 바라볼 수 있다. 조선후기 이후의 소재동 행정구역은 1789년 나주목의 38面 33島 169리 가운데 아계면의 16개 마을의 하나인 백산촌 일대로 추정되며, 일제때 거평면․용문면․아계면․도림면 등이 합쳐져 현재의 문평면으로 되었다가 1983년 다시면에 속해져 온다.
 
 정도전은 이곳 소재동에 적거하면서 초사를 지었다고 한다. 이곳은 현 나주정씨 선산 산중턱 약간 못 미쳐 평평한 곳이 보이는데 이곳에 초사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선생은 이곳에 적거하면서 남긴 많은 글이 「금남잡영·금남잡제」 이다. 이러한 글은 훗날 『동국여지승람』 나주목편에 다수 보인다. 이곳의 3년여의 세월은 많은 배움과 이곳 식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정도전은 이곳 소재동 황연(黃延)의 집에서 살았다. 소재동이란 이름은 이곳에 소재사(消災寺)라는 절이 있어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끝으로 초사란 시를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맺고자 한다. 
 
초사(초사는 회진 소재동에 있음) 
 
이어 끝을 아니 잘라 집 처마는 너절한데./흙을 쌍아 뜰 만드니 형세는 비틀배틀./깃든 새는 슬기로와 저 자는 곳 찾아오고,/들 사람은 놀래어 뉘 집이냐 물어보네./맑은 시내 아름답게 문을 누벼 지나고,/푸른 숲은 영롱하다 문을 향해 가렸구려./나가보면 강산은 딴 지역과 같은데,/문 닫고 들앉으면 옛 생활 그대로세. ※ 정식(1407~1467) : 선생은 정가신의 5세손이다. 자는 빙보 호는 영모정 시호 경무공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고 문장에 능함. 벼슬이 대사헌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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