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이 된 오늘도 날씨가 좋아질 꼬락서니는 보이지 않았다. 폭풍이 수그러들지 않고 더 심해져 간다.

어디론가 흘러 가버린 닻이 없어서 배를 새울 수도 없다. 출항한 이후 여태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 사람들의 얼굴이 누렇게 떠올랐다. 움푹 들어간 두 눈은 덥수룩한 턱수염에 쌓여 반짝거린다.

마치 굶주린 이리처럼 두 눈이 움푹 들어가고 아무렇게나 풀어진 머리와 까맣게 긴 턱수염이 사나운 짐승처럼 무섭게 보인다.

바람의 방향이 수시로 변해서 배가 어디로 가는지 종잡을 수 없다. 마른 가슴을 타 들어가게 한다.

배가 가는 방향을 안다면 좋을 텐데 답답하고 두려운 마음이 모두의 가슴을 짓누른다.

바다가 조용하기는 한순간이고 차디찬 겨울철의 강추위가 콧잔등을 칼로 도려낸 듯 매섭기만 하다. 종잡을 수 없는 바람의 방향이 자꾸 바뀌니까 날씨는 더더욱 나빠만 간다.

거칠어진 바다는 수정호를 느닷없이 흔들리게 하고 갑판까지 뒤집어쓰게 만든 바닷물은 배를 몽땅 뒤집어 덮는다.

멀쩡하게 서있던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는 순간에 뒤로 또는 앞으로 넘어지는 꼴은
술 취한 주정뱅이 갈지자 폼처럼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배 는 그냥 떠다니는 그대로 운명에 맡긴 채 내버려 둘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윙윙거리는 바람소리는 너무 시끄럽다. 갑판 위에서 서로의 말소리조차 알아들을 수도 없고 떠들어도 들리지 않는다.

더더구나 간간한 소금 끼가 송판을 매끄럽게 해서 걸어 다닐 때는 여간 조심을 해야만 한다. 배의 밑바닥 선창에서는 바닥에 차 오르는 물을 끊임없이 퍼내는 일을 계속해야만 했다.

오늘 같은 날씨에는 최소한 4사람이 물을 퍼내는데 동원되어야만 했다. 충직한 권송과 강내, 이산과 오산이 함께 물 푸는데 애를 썼다.

막금이나 만산도 번갈아 가며 밤낮으로 물을 퍼냈다. 나무바가지는 배의 밑창에 닿아 반질반질하게 길이 났다.

그런데도 바다에서 몰아치는 태풍으로 인해 들어오는 물은 그치지 않는다. 누구 할 것 없이 바람에 날리는 물보라를 뒤집어쓰기 때문에 행여나 당장에라도 배가 물 속으로 가라앉는 것은 아닌지 불안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선장[領船] 권산의 조바심은 더했다.

 '어쩌지 이 배가 가라앉는다면 큰일이다. 누구하나도 살아남을 자가 없을 것인데…'

떠도는 배

낮이 되자 바람이 더 강하게 불어왔다. 이물[船首]쪽에 붙어있던 안전망의 역할을 해주던 덧댄 판자가 떨어져 나갔다.

고물[船尾]에 붙어있던 키잡이 막대를 걸어 둘 수 있게 잇댄 장대가 순식간에 떨어져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순간의 회오리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다.

노 저을 일이 없어진 격군들이 모두 달라 들어 다시 붙여 보려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몰아치는 강풍을 이길 재간이 없었다.

행여나 바다로 떨어 질까봐 밧줄로 몸을 묶고 수정호의 끝 쪽으로 나가 키를 움직이게 하려고 했지만 이마져 안 되었다.

망가져 흔들거리는 배를 조정해보려고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지만 심하게 요동치는 뱃속에서 집채만 한 파도가 연이어 덮치는 바람에 허사였다.

선장과 사무장은 거친 바다에서 벗어날 방도를 찾으려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배의 앞부분을 새끼로 돌돌 말고 감아서 큰 파도가 밀려올 때 배의 안전을 위한 방패막이로 응급처치 하는데 그쳤다. 그만큼이라도 다행이다.

이미 없어진 돛대로 인해 심한 파도가 폭풍우와 함께 정면으로 칠 때 최악의 전복사고는 막을 수 있으리란 믿음이 생겼다.

이런 작업을 할 때도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그들의 목숨을 노리는 풍랑과 예측할 수 없는 파도에 떠밀린다면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만다.

배의 앞쪽 갑판에서 일하던 현산과 김석귀는 파도가 고물 위에 덮쳐 와서 하마터면 파도에 휩쓸려 물고기 밥이 되고 말 뻔했다. 선실에 갇힌 채 그런 모습을 보던 정보는 기도하듯 외쳤다.

 "천지신명님이시여! 이들을 지켜 구해주세요. 우리 모두 살아야 합니다. 어찌해볼 길이 없는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세요."

쏟아지는 폭우로 인해 지척도 분간하기 어렵다. 돛을 올릴 수만 있다면 멀리 잔잔한 바다로 갈 수 있으리란 믿음이 있었지만 뒤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43명의 생사여탈을 쥐고 수정호의 운명을 좌우하고 있다. 거친 파도와 심한 바람은 배가 바위로 오르건 산으로 가건 상관할 바가 아니다.

아래쪽 선실에 있던 호송군과 일부 격군들은 지친 나머지 아비규환의 비명소리가 들려와도 무딘 감정을 모른 채 하며 넘어간다. 아는 채를 해봤자 별로 도와줄 방법이 없는 그들은 두 눈을 내리 깔고 조용하다.

철썩 철썩 파도의 움직임이 수정호와 부딪치고 하얀 거품으로 부셔버리며 넘어뜨려 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풍랑, 집채처럼 크고 바윗돌 같은 물살이 몰려와 배를 집어삼키며 파도 속으로 감싸 버린다.

거칠게 몰아치는 파도는 제주에서 제일간다는 수정호를 흔들거리는 일엽편주로 만들어버린다. 도대체 언제쯤 날씨가 좋아질까?
 
커다란 몸집의 수정호도 집채만 한 파도에는 조그만 낙엽 조각처럼 맥을 못 춘다. 무섭게 일렁거리는 파도에는 한곳에 서있기도 힘들게 한다. 도대체 이 꼴이 무엇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