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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새도 울던 명봉鳴鳳역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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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5호] 승인 2023.05.29  02:2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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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봉황이 울었다는 이름의 역에 아버지를 그리는 소녀 고정희는 울었다. 서러움이 밀려오고, 그리움이 밀려오고, 아쉬움이 남을 때는 누구라도 안 울 재간이 없다. 그것은 삭막한 사막과 같은 마음이 아니라, 감정의 샘물이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보를 넘고 둑을 넘어 흘러내리는 것이 울음이다. 특히 그리움이 클 때 더 그렇다. 그런 그리움을 가진 여인 박라연 시인 역시도 명봉역에서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역사의 느티나무도 조금,
6·25와 여순사건과 애주 사이에 놓친
역 근처의 양조장도 조금,
인사 올 역장도
아버지를 기억할 역원도 없는데
호주머니 속 깊숙이 차표 감추시고
나가시려다 실랑이 벌이시던
시공(時空)도 조금,

산나물 장수 방물장수들의 노동을
통째로 사주시던
자네 밥 아직 안 먹었지? 내밀던
아버지 밥도 조금,
내 몫까지 함부로 인심을 써?
복(福) 한번 고파봐라, 신이 몸소
아버지 밥 다 가져가버린 것 같다는
어머니 세계관도 조금,
위치며 자태가
어진 아내 미안한 남편이어서
아버지 산소도 조금,
명봉역이다

명봉역을 MBC 베스트 극장에서
만난 날
화면 속의 느티나무더러
아버지! 불러본다
 
(박라연 시 〈명봉역〉 전문)

명봉역에서 두 시인이 아버지를 그리는 애절한 마음에 나 역시도 덜컥 아버지가 그립다. 그 그리움에 앞서 꽃이 먼저 생각난다. 대부분의 순수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꽃 중에서도 유독 마음이 가는 꽃이 있을 터. 가령 향기가 좋아서, 색상이 좋아서, 또는 우아해 보이거나 수수해 보여서 등 저마다의 취향에 따라 인생을 살면서 깊은 사연 하나쯤은 가지고 있듯, 그러한 꽃을 만나면 마치 그리운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울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꽃은 담장을 아름답게 감싸는 넝쿨장미, 바람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동박새를 부르는 붉은 선홍의 동백, 장독대 주변의 맨드라미나 가을 들녘의 국화도 좋지만, 더 좋아하는 꽃은 산길이나 강변에서 흔히 만나는 풀꽃이다. 주인 잘 만난 온실 속의 따뜻한 화초가 아니라, 세찬 바람이 불면 뿌리 체 뽑혀버릴 것 같아도 다시 일어서는 풀꽃, 그중에서도 이름도 서러운 흰빛 분홍의 며느리밑씻개나 고마리, 흰빛에 푸른색이 감도는 꽃마리는 어찌 그리도 예쁜지.

작은 꽃들을 볼라치면 많은 것을 요구한다. 무릎을 꿇어라, 허리를 굽혀라, 고개를 숙여라 등 그래도 군소리 없이 꿇고 굽히고 숙여서 다가가면 연한 빛이 감도는, 앙증맞을 정도로 작은 꽃잎을 그제야 보여준다. 정말이지 예술이다 싶을 정도다. 너희네 무지한 인간들이 네 몸에 무심코 라도 손만 대지 않는다면 하는 으름장은 아니지만, 그것이 바로 자연이고 예술이라고 가르쳐주는 것만 같다.

실제로 자연의 나무는 혹독한 추위를 견디면서 내적 성장을 하고 무더운 더위를 견뎌내면서 결실이라 할 수 있는 열매를 맺는다. 심지어 가녀린 풀 한 포기도 가혹하리만큼 모진 비바람을 견뎌내면서 자연의 질서에 순응한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다. 다만, 눈앞의 이익에 길들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훼손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달리 양심에 반한 행동을 하고도 나만 편하면 된다는 사고에 안주해 있다.

아무튼, 지난날 어릴 적부터 살았던 고향 집에는 정원이 있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의 왼쪽이 큰 정원, 오른쪽이 중간정원, 마당 가운데 작은 정원 있었고 집 모퉁이와 뒤란으로 이어지는 터에는 감나무, 밤나무, 매화나무, 무화과나무, 앵두나무, 자두나무 등 각종 유실수가 식재되어 있었다. 정원에는 여러 종의 장미나 영산홍, 천리향, 작약, 백합 같이 꽃이 화려하거나 꽃 향이 진한 나무들이 주종을 이루었다.

이러한 나무들은 정원석 안에 있었고, 정원석 사이마다 철쭉이, 정원석 밖 언저리에 소외된 자처럼 외톨박이로 자라는 꽃이 있었는데 수수하다 못해 촌스러움마저 드는 그의 이름은 옥잠화다. 옥잠화는 백합과에 여러해살이 초로 중국이 원산인데 언제 어떻게 입국했는지는 몰라도 노란색의 서양민들레처럼 지금은 우리나라에 널리 분포된 일종의 귀화식물인 셈이다. 주로 7월에서 9월까지 꽃이 핀다. -계속-

 

   
▲ 김채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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